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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더러운 잠' 논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 31.

 처음부터 막나가며 저항을 부르는 트럼프


전지윤

 



여성혐오적 성폭력범, 인종차별주의자, 호전적 극우익인 트럼프가 결국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노엄 촘스키는 트럼프가 가져올 변화는 더 해롭고 악화될 방향이라고 했다. “트럼프 시대는 거대 의료회사, 월스트리트, 군수산업체, 에너지 기업들에게 매우 밝은 미래가 될 것이며 들끓는 공포와 분노를 교묘히 이용한 '친절한 파시즘'으로 세상이 이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도 트럼프를 끔찍하고, 무지막지하고, 위험한 파트타임 어릿광대이자 풀타임 소시오패스라고 평했는데,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할 것이다.

 

트럼프는 내각과 참모들도 극단적 우익들로 채우고 있다. ‘사람을 총으로 쏘면 재미있다미친개국방장관, ‘세계대전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는 안보보좌관, ‘인권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CIA 국장, 반이민·반이슬람으로 악명높은 백악관 수석전략가... 이들은 조지 부시의 네오콘보다도 더 극단적인 대안우파라 불리는 데, 사실상 파시스트로 보여진다.

 

취임식에서 군대와 국경을 강화해서 이슬람 테러집단을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라고 했던 트럼프는 초기부터 막나가고 있다. 낙태 금지 행정명령 서명, 물고문과 비밀감옥 부활, 멕시코 장벽 건설 선언, 송유관 건설 재개... 이런 막장 짓거리가 줄줄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7개국 13천만 명이 미국 입국을 차단당하게 생겼다. 미국 방문 외국인들에게 인터넷 방문기록을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나치의 유대인 등록제처럼 무슬림 등록제를 만들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미국을 위대하게만든다더니 미국을 끔찍하고 구역질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일베가 대통령이 된 나라를 보는 것 같다.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는 먼저 공산주의자들을 쳐내고, 노동조합원들을 몰아내고, 성소수자를 공격하면서 점점 유대인으로 타켓을 좁혀 갔다. 오늘날은 좌파와 노조가 이미 약화돼 있기 때문인지, 트럼프는 처음부터 무슬림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반대 운동 속에서 새로운 좌파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앞장서서 트럼프에 맞서기 시작했다. 트럼프 취임식날 미국 주요 도시와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참가한 여성행진이 벌어졌다. 무슬림 입국금지에 맞서서도 미국 30개 도시의 주요 공항들에서 강력한 반대 시위들이 벌어졌다.

 

여성행진부터 공항 시위까지, 이 운동은 다인종적이고 다양한 요구와 모순을 포괄하는 상호교차적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백인과 금발들로 가득찼다는 트럼프 취임식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우선이라는 트럼프에 맞서서 여성이 우선, 흑인이 우선, 무슬림이 우선되는 연대와 투쟁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는 한반도에도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특히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며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핵없는 세계를 말이라도 하던 오바마와 달리 핵무기와 군사력 확대 강화를 공공연히 떠든다.

 

박근혜 4년을 거치며 남북간 소통 창구는 이제 확성기밖에 없게 됐는데, 이 상황에서 트럼프가 어떤 불을 지를지 모른다. 지배자들에게 대외정책은 국내 정책의 연장인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 나라의 우파는 종북몰이와 대북압박을 긴밀히 연결시켜 왔다.

 

종복몰이를 재개해 재결집과 위기 탈출을 노리는 황교안과 우파들의 시도가 트럼프 취임과 맞물려 어떻게 발전할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에서 발전하고 있는 반트럼프 투쟁에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보낼 이유는 차고 넘친다.

 

 

 ‘더러운 잠이 박근혜 풍자에 실패한 이유

 

더러운 잠은 박근혜라는 권력자를 풍자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풍자가 된 것 같다. 권력자의 여성성을 공격하는 것, 그것은 만평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가장 게으른 풍자이기도 하다. 강자를 비판할 의도였을지 몰라도, 약자에 대한 편견에 손쉽게 올라타는 것일 수 있다.

 

얼마 전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진 존 버거는 유럽의 누드화 장르에 담긴 여성혐오를 지적했었다. 비너스 등 여신을 모델로 삼던 그런 그림들은 대부분 남성 관객의 관점과 욕망을 반영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유물과 구경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더러운 잠의 원작인 마네의 올랭피아는 이에 대한 전복적 패러디였다. 당시에 사회적 천대를 받던 성매매 여성을 모델로 삼아, 풍만한 여체가 아닌 밋밋한 여체와 물끄러미 상대를 쏘아보는 눈빛을 담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당시에 그 그림의 관객들이던, 예술을 운운하며 뒤로 성매매를 일삼던 상류층 남성들의 위선을 꼬집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더러운 잠에서는 그런 맥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 속의 박근혜가 그림 밖의 관객들의 위선을 쏘아볼 상황인가? 박근혜가 성매매 여성이라고 풍자하려고 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모독과 편견으로 더 큰 문제가 된다.

 

더구나 올랭피아와 달리 그림 속의 여체는 풍만하고 관능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정치적 악행과 부패, 비리를 관능적 여체로 표현하려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비하적 관점이 드러나 보인다. 따라서 더러운 잠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은 정당하다.

 

물론 작가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에 타협하며 감수성 부족을 드러내놓고, ‘표현의 자유뒤에 숨어서 비판에 귀를 막고 성찰을 거부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박사모와 일베는 이 그림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물리적 강제철거에 동참하거나 그것에 환호했다. 나아가 이 그림의 국회 전시를 주관한 표창원 의원의 부인과 딸의 얼굴 합성 누드화를 패러디라며 올렸다.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며 말이다.

 

이들은 여성비하와 대상화에 분노한 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여성혐오와 성적대상화에 가장 찌든 집단이 바로 이들이었으니 놀랄 것도 없다. 바로 최근까지 최순실-고영태의 사생활로 막장 드라마를 쓰던 것이 바로 박근혜 대리인단과 조선, 동아 종편이었다.

 

조윤선의 화장기 사라진 얼굴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펼쳐보이며 여성의 외모를 문제삼고 조롱하는 데 앞장선 것도 그들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와 여성성을 조롱하는 데 앞장선 자들이, 강자를 옹호하기 위해서 여성주의까지 들먹이는 이 상황은 참 아이러니한 것이다.

 

박근혜도 여성대통령이 아니면 그런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다. 여성 비하라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올라탔다. 이런 모순과 위선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더러운 잠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로 연결된다면, 외국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심각한 여성비하적 풍자물을 가져와 비교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여성혐오에 대한 타협이며 잘못된 진영 논리일 것이다.

 

 

  촛불혁명 속의 좌파 - 협력과 토론의 과제

 

촛불이 세달 가까이 타오르는 과정에 많은 좌파 단체들이 헌신해 왔다. 그 헌신과 열정에 항상 감탄하고, 날카롭고 명확한 분석과 주장에서 많이 배운다. 하지만 일부 좌파 동지들의 몇몇 주장에는 동감하기 어려운 점이 좀 있다. 예컨대 이 거대한 촛불이 조직 좌파와 노동운동이 건설해 낸 것이란 주장이 그렇다.

 

물론 앞장서 투쟁해 온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고, 그것이 자양분이 된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1000만 촛불은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보기 힘들만큼 자발성의 폭발이다. 스페인에서 분노한 자들운동이 분출했을 때, 기존 좌파가 우리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분노해 있었다며 그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을 반면교사삼아야지 않을까.

 

조직 노동자가 촛불에서 선구적 구실을 했다는 주장도 그렇다. 과연 민주노총과 총파업이 이번 촛불혁명에서 핵심 구실을 해 왔다고 볼 수 있을까? ‘노동운동의 비중을 축소하려한 온건파투쟁을 회피한 노조 관료들이 그 가능성을 차단한 것인가? 이런 단순한 평가는 지금 조직 노동운동의 상태와 과제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일부 좌파 동지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한 확신이 지나쳐, 다른 의견을 쉽게 단정짓는 것은 참 안타깝다. 이에 따르면 운동의 온건파들이 야당 선거 승리의 보조물로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좌파의 발언권을 약화시키며 거리행동을 청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야당과 공조해 운동의 요구와 투쟁 수위를 제한해, 결국 우파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위험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의 발전을 위해 함께 헌신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고민과 견해를 그런 식으로 쉽게 단정하는 것은,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며 투쟁을 더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

 

상대 의견의 합리적 핵심을 존중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위험을 지적하고 설득해야지, 상대를 의회주의’, ‘민중주의’, ‘개혁주의’, ‘스탈린주의라고 단정지으며 그들에 맞서야 한다고 한다면 과연 신뢰와 협력, 토론이 잘 될 수 있을까


(기사 등록 201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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