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 이후 : "악어의 눈물"에 대처하는 방법

서범진


"그래서,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건데?" 


애인에게 항상 혼날 때 듣던 그 말을, 내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사 산 국민과 죽은 희생자를 심판하시는 그녀에게 감히 묻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를 다 듣고나서, 난 내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싸이코패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대통령이 울었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실망했던 지지자들은 그녀의 눈물을 보고 마음을 다시 돌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눈물이 당혹스러웠다. 왜 우는 것인지, 무엇이 그녀의 눈가를 젖게 만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되뇌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그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걸까. 그녀는 그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삶을 버린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수장이, 그들이 버린 목숨더러 "희망"이라 말하고 있다. "절망"의 제공자가 "희망"을 말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백번 양보해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치자.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기회는 모든 죄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니 말이다. 그녀의 눈물이 희생자에 대한 추모, 미안함, 그리고 자기반성을 위한 눈물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녀와 함께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물에 이입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의 담화에 "목적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녀의 유체이탈 화법에는 주어가 없었다. 이제 주어가 채워진 대신 목적어가 비었다. 그녀는 오늘 자신에게 참사 수습의 "궁극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한 단계 인식 발전이다. 그렇다면 이제 응당 나와야 할 이야기는 "무엇을"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그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반성"과 뉘우침이 성립된다. 모든 반성문에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그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24분의 담화 시간 내내, 누구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대체 무얼 잘못한거지? 국민들이 어떤 점에 분노했는지는 아는건가? 그래서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본인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놀랍게도, 그녀는 그렇게 수많은 물음표를 우리 머리 속에 던져주면서도, "심판자"로서의 위엄은 오늘도 잃지 않았다. 스스로 모든 사태의 궁극적 책임이 있다던 그녀는, 곧 해경과 안행부와 해수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임지는" 자세는 바로 하급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쉬워도 이렇게 쉬운 책임지기가 또 없다.

 

그리하여, 해경은 "해체"라는 충격적 조치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일 시험을 앞두고 있던 해경 지원자들까지 패닉에 빠트렸지만, 이 조치에는 "왜"와 "무엇을"이 함께 빠져있었다. 물론, 이번 참사에서 해경의 대응과 내부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해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냥 조직 개편도 아니고 해경을 해체까지 하는 건 왜 인가? 다른 부처로 구조업무가 이월되면 정말 이런 문제는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만일 이것이 보여주기식 조치가 아니라면, 그녀는 왜 하필 "해체" 조치가 대안인지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사실 그 근거는 오로지 진실이 밝혀질 때만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진실(원인 진단)과 해법이 완전히 따로 놀 수 있는 관계인 듯하다. 공직 사회 개혁과 부처 개편이 담화를 압도했고, 진실에 대한 이야기는 자취조차 없었으며 진상조사에 대한 대책은 지나가듯이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직 드러나 않은 진실 속에 자신이 책임져야할 또 다른 것들이 묻혀져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대책을 내놓다보니 사실 타이밍도 엉뚱하고 우려스러웠다. 실종자 가족들이 타는 가슴으로 외쳤듯이, 대체 해경이 지금 여전히 일선에서 구조 작업에 한창인데 왜 하필 오늘 이런 극단적 처방을 발표를 해야했던걸까. 남은 실종자에 대한 구조 언급이 담화 속에 한 마디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실수나 우연이 아니었다. 대통령 관심의 우선순위는 다시 한번 실종자 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사실 담화에서 빠진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넘어서야 "지각사과"를 하게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왜 사고 직후에는 선장 개인만 찍어서 비난하다가, 이제와서는 해경을 전부 해체해버리는 극약처방까지 내놓게 된 것인지 그 사고의 변화 과정 또한 납득되게 설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게 그 책임을 묻는 시민과 학생들을 이틀 사이 이백명이나 연행할 수 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담화 종료 후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떨구며, 아랍에미리트로 핵발전소 수출을 기념하기 위해 홀연히 춘추관을 떠났을 뿐이다.


 


사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은 사실들 외에, 그녀가 밝힌 이야기들 중에서도 우리가 행간을 읽어 내야만 하는 대목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토록 전가의 보도처럼 그녀가 되뇌이는 국가안전처 문제다. 그 부서는 일개 "처"인 주제에, 모든 재난에 대한 구조와 방비 업무를 담당한다고 한다. 공안기능과 인사권한을 동시에 갖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효성과 효율성에 대한 전문적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집중된 힘을 가진 행정부서가 과연 권력의 편의에 따라 이용될 위험은 없는지 따져봐야만 할 일이다. 9.11 사건 이후 조지 부시가 만들어낸 국토안전보장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앞서나감일까.

 

또 이 난리통에도 경제계획 3개년을 확실히 추진하겠다는 그녀의 다짐도 마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녀 자신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더라도, 그 계획의 핵심 내용이 바로 규제완화와 민영화였다는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전이나 공공성보다 돈벌이를 중시하는 경제적 우상숭배 속에서, 그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사람이 재난관리를 말하고 있으니 정말 이런 블랙코미디가 또 있을까. 또다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이 무대의 막을 얼른 내려야만 한다. 이미 세월호 사건 직후 여기저기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들이 우리의 불안감을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진정성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진심이 나에게 전해질 때, 우리는 그 단어를 사용한다. 진심에는 사심이 없다. 어떤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도 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그것이 하고 싶어서 할 때, 우리는 곁에서 그 사람의 진정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은 30대에 접어든 내 삶에서 아마 그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대국민 담화에는 너무나 많은 목적과 꿍꿍이들이 여기저기 포진해있었다. 아마도 오늘의 "대국민 담화"는 나처럼 "미개한 국민"보다는 '집토끼' 같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위한 것이었지 싶다.

 

화가 나지만, 그래도 어떤 점에서 나는 담담하다. 그녀의 진정성 부족한 사과가 어디에서 튀어나오게 된 것인지, 그녀 자신은 몰라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 무분별할 정도로 자주 반복되는 그녀의 내용없는 사과는 바로 거리의 힘에 의해 나온 것이다. 우리의 여론이 그녀를 움직였다. 아직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토요일에도 나는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 것이다. 참사의 책임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설령 진심이 아니라고해도, 우리들의 힘이 크다면 최소한 그녀가 진심으로 이번에 한 일들을 후회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길,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을 광장에서 만나길 바라본다. 우리에게는 그녀에게는 없는 진심이 있다. 우리는 이 모순투성이 사회, 생명보다 돈인 사회, 힘 있는 사람들이 책임 지지 않는 이 사회를 반드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불의에 맞선 행동이야말로 희생자들의 넋이나마 지켜줄 수 있는, 살아남은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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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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