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주의자인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과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이 미국 대선에 대해 간단히 논평한 글이다. 조나선 닐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 <두 개의 미국> 등은 국내에도 출판돼 있다. 번역에 수고해 준 '윤미래' 동지에게 감사한다.
출처: https://annebonnypirate.wordpress.com/2016/11/09/wtf/
오늘 아침 트럼프의 승리는 많은 이들에게 절망감을 줬다. 닥칠 일들에 대비를 하기 위해 계급투쟁, 인종주의, 기후 변화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이 선거는 전지구적 극우와 인종주의의 승리다. 둘째,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결과가 낳은 '계급 반란'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인종주의를 통해 계급적 분노에 호소하는 모습은 비극이자 외설이다.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는 심각하다. 이 측면에서 클린턴은 둘 중 차악이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낙태에 대한 우익의 반격을 초래할 것이고, 비무장 흑인들을 체포하고 때리고 죽일 수 있는 면허가 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정부 탄압이 잇따를 것이다. 무슬림, 이주민, 난민에 대한 박해도. 다른 이를 괴롭히고 강간하고 학대하는 자들이 살기 편해질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전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와 극우 정당들의 사기를 올릴 것이다. 그것은 세계를 더 오른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승리는 일종의 '계급 반란'이기도 하다. 지난 몇 달간 모든 주류 논평들은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40년간의 불평등 심화는 미국에서 상당한 경제적, 문화적 계급 분할을 초래했다.
한편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게이와 헤테로 모두에 말이다. 그들은 교장, 경찰서장, 펀드매니저, 사커맘[자녀를 스포츠, 음악 등 온갖 활동에 데리고 다니는 중산층 이상 여성: 역주], 대학교육을 받은 경영자와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의료보험, 가사도우미, 유모에 지출할 돈이 있다. 그들은 결혼할 확률이 더 높다. 그들은 결혼을 유지할 돈이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경쟁적이고, 오만하고, 스스로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기적이고, 외로운 인간들로 기른다.
다른 한편, 미국인의 3분의 2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평균 시급은 40년 전보다 떨어졌다. 남성과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도 200만 명의 노동자계급 성원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 전문가들은 하층민의 3분의 2를 탓한다. 그들을 ‘멍청하다’고 부른다. 지금 미국에서 ‘멍청하다’는 딱지는 하류 계급에 대한 상류 계급의 증오의 표현이다.
증오하는 이들은 아무리 특권적 위치에 있더라도 결국 증오로 되갚음 받게 될 것이다. 다수는 자신을 멍청하다고 부르고 일상적으로 면전에 대고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격렬하게 화가 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노동계급의 트럼프(그리고 샌더스)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클린턴과 그 친구들은 사태를 바로잡을 시간이 25년이나 있었음에도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의 ‘사회주의’ 캠페인은 노동계급 성원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 주제였다. 그의 캠페인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더 넓게는 더 평등하고 관용적인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향했다.
하지만 샌더스는 경선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 후 클린턴과 민주당 논평가들은 따분한 계급 분할에 대해서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멍청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많은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지키려 싸워줄 사람이 없자 트럼프에게 향했다.
흑인과 히스패닉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트럼프의 인종주의가 너무 충격적이고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 많은 이들이 그냥 집에 있었다. 투표한 사람은 4년 전의 선거에 비해 5백만 명이나 줄었다.
물론 힐러리가 선거인단을 통한 투표가 아닌 실제 전체 득표수에서는 이길 수도 있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다수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다. 유색인 노동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는 중간층, 고등학교 교육과 약간의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학위는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물론 남성과 백인에 트럼프주의자가 많았다. 물론 많은 부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었다.
하지만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계급적 분노에 호소하는 전략은 선거를 좌지우지하기에 충분한 수의 사람들을 획득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변화가 있다. 지난 몇 세대 동안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시골과 교외 지역에서 우세하면서 초기에 앞서가다가, 민주당이 나중에 도시 표를 가지고 와 따라잡아 왔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제 주로 대기업과 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의 정당이 되었다. 선거 당일 밤, 논평가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자꾸만 반복하면서 그들에 대해 경멸적으로 말했다. 하류 계급에 대한 상류 계급의 이러한 증오의 표현은 인종주의적 반동을 강화했다. 그것들이 한데 뭉쳐 몹시 나쁜 동력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보기 위해 기후변화 문제를 살펴보자. 트럼프는 석탄, 석유, 가스 생산을 목소리 높여 지지해 왔다. 그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과 세계의 모든 다른 곳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엘리트들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명목상의 목표는 미국의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노동자 계급을 위한 더 많은 일자리를 원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자 전문가들이 ‘그 일자리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화가 난다. 그 전문가들이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난다.
하지만 석유, 가스, 석탄은 일자리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일자리에 정부가 투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미국 정부는 모든 건물을 개조하고,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하고, 전기로 작동하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교통수단을 미국 전역에 보급하는 일에 600만 명의 노동자를 20년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와 같은 일자리들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지금 많은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실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브라운[아프리카계 흑인 혼혈, 서아시아·남아시아·동남아시아인, 히스패닉 등을 일컫는 인종 범주: 역주]이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광부, 유조선 운전자, 석유나 탄소 연료 채굴자들이 기후변화를 막는 부문에서 항구적으로 고용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일자리 프로그램을 진심으로 약속하고 신뢰를 얻은 미국 정치인은 서부 버지니아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하이오도. 미시간도. 텍사스도. 게다가 ‘에너지 독립성’의 레토릭은 제국주의적 프로젝트를 은폐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쓰여 온 그럴듯한 표현일 뿐이다. 바람과 태양열은 수입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중동에서 얻는 기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문제는 중국, 일본, 독일 같은 다른 나라들이 중동의 석유와 가스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중동을 지배하는 것은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길이다. 트럼프가 이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계속한다면 그의 외교정책은 그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 부시, 오바마의 그것만큼이나 해롭고 공격적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을 직시하자. 울고, 비명지르고, 술을 마시면서도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이해하자. 트럼프가 멍청하다고 말하지 마라. 그는 클린턴과 그 수행단보다 똑똑하다. 그 증거가 눈앞에 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돈과 행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모욕하지 마라.
왼쪽 편에서 이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를 보여준다고 우쭐대지 마라. 이것은 인종주의적, 성차별주의적 반동을 통한 엘리트 지배집단에 대한 거부이다. 트럼프가 나치는 아니다. 하지만 인종주의, 일자리, 그리고 엘리트들에 대한 계급적 분노의 조합은 1930년대 독일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나치즘: 역주]의 심장이었다.
하지만 기억하라 – 샌더스라면 이겼을 것이다.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에 이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집에 있었던 수백만 명을 고무했을 것이다. 힐러리가 – 힐러리조차도 – 전체 득표수에서는 이긴다는 걸 기억하라.
오큐파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샌더스 캠페인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같은 곳에서 왔다. 그 곳에서 더 많은 것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경선에서 샌더스의 득표와 지금 클린턴의 득표가 미국의 젊은 세대가 우리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기억하라.
미국인들을 경멸하지 마라. 우리는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에서 살고 있다. 헝가리, 터키,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 브라질을 보라. 이것은 전지구적 좌파의 실패다.
그러니 타격을 받았음을 인식하라. 이것은 끔찍한 패배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종주의자들과 성차별주의자들의 ‘정당한 불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한 치도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는 앞으로도 계속되고 늘어날 수 있다. 엘리트들에게 멍청하다고 모욕당하는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편에 본능적으로, 주저 없이 서는 그러한 좌파와 운동을 우리가 가질 때까지 말이다.
(기사 등록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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