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이번에는 2주차 세미나였고 5월 2일에 했다. 먼저 내가 첫 세미나 때 토론 내용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에 대한 기본적 관점을 발제했다. 그리고 ‘대기업 노사관계와 노동조합의 전투성’, ‘경제 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등에 대한 논문을 읽고 토론했다. 그리고 나서 지난번 세미나에서 이월된 문제제기들을 토론했고 이어서 다양한 문제제기와 토론이 있었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비정규직 방패막이론이 제기되는 근거가 없는가?:
단지 허구는 아니다. 실제로 비정규직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공격, 해고 당하는 일종의 범퍼가 된다. 그리고 노조와 노조 관료는 부문주의 때문에 이것을 수용하게 되곤 한다. 정규직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비정규직 비조합원을 방패삼는다는 것은 전형적인 부문주의이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쌍용 등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은 결국 정규직에 대한 공격의 예고편이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된 결과로, 노조가 약화되고 공격을 막기에 더 어려워졌던 것을 봐야 한다. 범퍼가 사라지면 결국 맨 몸으로 공격을 당하는 처지가 되므로, 범퍼를 지키는 게 합리적이다.
- 현대차 노동자 등이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과장 아닌가?: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에 비교한다면 과장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998년 경제 위기 때 대량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기억은 노동자들 속에서 매우 강력한 불안과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전까지 평생직장의 관념이 흔들린 것이다. 흔히 그 때를 계기로 ‘고용불안감이 노동자들의 DNA에 새겨졌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 후 노동자들 속에서 ‘언제 또 위기가 오고 내가 밀려날지 모르니 잔업과 특근을 열심히 하면서 일자리가 있을 때 벌어두어야 한다. 그런 시기에 노조가 나를 지켜 줄 거라고 믿기 어렵다’는 정서가 퍼졌다는 것이다.
- 노조는 원래 실리를 추구하는 조직이고 따라서 실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가?:
노조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자들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과 ‘실리주의’는 구분해야 한다. 개혁을 위한 투쟁은 정당하고 필요하지만 ‘개혁주의’하고는 구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혁주의’는 개혁을 위한 투쟁을 원인에 맞서는 더 큰 투쟁과 연결하지 못하고, 위로부터 협상을 통한 개혁만을 매달리면서 결국 개혁마저도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는 문제를 낳는다.
마차간지로 노조가 협소한 ‘실리주의’에 빠져서 단결과 투쟁을 외면하면 결국 노동자들의 실리마저도 제대로 얻어내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 노동운동 지도부가 보수화하고 기층 노동자들 속에서 실리주의가 확산되며 위기가 왔다는 분석을 어떻게 볼 것인가?:
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침체는 더 큰 틀에서 분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먼저 마르크스가 1840년대에는 노조가 ‘혁명의 학교’라고 했다가 1860년대에는 ‘진보의 걸림돌’이라고 했듯이 노조는 고정돼 있지 않다.
첫째, 87년 이후 노동자들에게 임금과 노동조건의 커다란 개선이 있었다는 것이 이후 사태 전개와 관련있다. 처음에 조건 개선을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은 단결과 공세적 투쟁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조건을 지키기 위해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둘째, 노사분규와 협상이 제도화되면서 노조 관료주의가 안착화됐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노조 건설마저도 직접적인 국가와의 충돌로 나아가기 쉬웠다. 그러나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지배자들은 노조를 인정하고 체제 내로 포섭하려 했으며 노사협상, 노사정위 등을 완충장치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노조 관료층의 등장과 확대가 이 과정을 가속화했다.
셋째, 이 과정에서 정경분리가 이뤄졌다. 지배자들은 더 이상 강제와 폭력 만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았다. 정치는 제도 정치권에서 해야 할 문제가 되고, 노조의 구실은 경제적 문제로 한정되며 노사 협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도록 유도된 것이다.
넷째, 경제 위기가 체제 내에서 결과에만 맞서는 노동조합의 한계와 노조 관료들의 보수성을 더욱 자극하면서 투쟁과 단결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다섯째, 지난 십여 년간 투쟁이 패배하거나, 지도부가 배신하거나 애매하게 종료되는 경우가 쌓이면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높지 않은 것이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 1997년 경제 위기와 2008년 경제 위기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1997년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본격적인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당시 동아시아발 위기에서 한국은 위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국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대기업 등에서도 대량해고 등이 벌어졌고 갈등은 격렬했다.
반면 2008년 위기는 미국발 위기였고, 상대적으로 위기의 주변부에 있었던 한국은 잠깐 위기를 겪긴 했지만 곧 중국 경제의 성장에 힘입어서 회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기업 등에서 대량 정리해고 등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 자동차 산업 등은 미국발 경제 위기 속에 틈새 시장을 노리며 큰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위기 자체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기가 불균등한 효과를 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등은 경제 위기에 피해를 입어서 공격을 자행했고, 서비스업에서는 자영업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 조합원들이 사회연대보다는 실리를 원하는 게 사실이고 그런 조합원들의 요구와 필요에 반응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일상적인 시기에 현장조합원들 보다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이 더 진보적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넓이 때문에 깊이를 잃는’ 노조의 한계 때문에 노조 지도부는 선진적인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투쟁을 발전시키기 보다 이런 조합원들의 평균적 의식을 핑계삼아 자신들의 투쟁 회피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처럼 단기적이고 협소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결국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조합원들의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봐야 한다. 더구나 조합원들의 의식은 모순적이다.
사회적 연대보다는 눈 앞의 실리를 원하지만, 동시에 연대의 중요성도 인식한다. 예컨대 금속노조 설문조사에서 금속노조의 문제점을 ‘쌍용차 투쟁 때 제대로 연대하지 않은 것’으로 뽑은 조합원이 제일 많았다.
- 조직 노동자들이 고령화하면서 단결과 투쟁이 약화됐다는 분석이 맞는가?:
1987년에 등장한 민주노조 운동이 이제 20년 넘게 지나고 신규 조합원 늘리기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합원들의 평균연령이 고령화된 것이 사실이다. 어제의 용사인 이 조합원들은 이제 자식도 있고 자신감도 예전만 못하고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보수적 태도를 취하고 한다.
반면 청년층은 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 취업난과 승진의 어려움, 고용불안, 노조 가입을 차단하는 여러 제약 들 속에서 노조에 가입하는 경우가 적다.
지금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속에서 민주노조가 어떻게 조직 확대에 성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고령화 때문에, 퇴직 후 재취업과 퇴직 연령 연장이 나타나면서 고령의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고, 서경지부의 투쟁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
- 지난 철도 파업 때 철도노조 지도부의 파업 철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전면파업을 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지도부가 배신했다는 식의 설명은 너무 단순하다. 당시 판돈은 엄청 커져있었다. 박근혜는 최장기 파업에도 꿈적않고 철도 민영화 일정을 돌이킬 수 없도록 결정해 나갔다.
이제 문제는 무엇을 막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것을 되돌리는 문제가 돼 있었고, 이것은 전면 파업과 연대 파업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만약 실패하면 엄청난 손배 가압류와 구속, 노조 파괴가 예고되고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전면파업을 선언하면 조합원들이 단결해서 그것을 따를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자회사 출범을 강행한 다음날부터 조합원 이탈 조짐이 커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철도노조 지도부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도부가 갑자기 김무성과 비공개 협상을 통해서 조합원들에게 충분히 보고와 논의하지도 않고 파업을 접은 것은 문제였다. 그렇다고 당시에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밀어붙였어야 한다는 주장도 단순해 보인다.
나는 당시 전면파업이 쉽지 않았고, 민주노총의 연대 파업도 가능하지 않았다면 최대한 조합원들의 자신감과 연대 대오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다음 투쟁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방식의 마무리가 필요했다고 본다. 당시 그 상황에서 어떠한 대안이 가능했는지는 앞으로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노동운동의 전략 전술적 혁신과 관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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