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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대 총선 평가 - 흔들리는 헬조선과 흙수저 단결의 기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4. 18.

전지윤

 



엥겔스는, 선거 결과는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는 온도계와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다. 두 가지를 덧붙일 수 있는데 첫째는 그 온도계가 의식 상태의 뒤틀린 반영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온도를 높이고 낮추는 것은 건강상태이지 온도계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온도를 확인하고 안심하며 열이 약간 내릴 수는 있다. 그리고 이번 총선 결과는 일시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풀어 주었다. ‘총선에서 개헌선이나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두고 보자던 자들에게 멋지게 한방을 먹였으니 말이다. 개표방송에서 새누리 원유철의 *씹은 표정을 보면서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총선 결과는 주류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밑바닥 민심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조작해 왔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런 통계와 수치를 크게 의심하지 못하고 새누리 승리를 걱정했던 나 자신부터 자기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새누리 후보들이 공보물과 현수막에서 박근혜 지우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부터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눈치없이 진박타령과 야당 심판까지 주장하며 빨간옷을 입은 채 설쳤고 결과는 참패였다. 영남에서마저 새누리의 기반은 크게 흔들렸다.

 

물이 많이 섞여 부서지기 쉬운 콘크리트였던 셈이다. 단지 공천 파동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박근혜 3년에 대한 2030 흙수저들의 분노를 봐야 할 것이다. 헬조선을 만들고, 세월호 진실을 덮고, ‘위안부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고,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것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반박근혜 정서의 이 같은 결집에 반해, 종북몰이를 통한 우파 지지층 결집은 왜 큰 효과를 내지 못했을까? ‘반성과 사과의 큰절과 삭발 쇼까지 하고 북풍몰이와 집단탈북 공개 등의 온갖 무리수를 뒀는데도 말이다.

 

여기에는 성공의 역설이 작용한 듯하다. 좌파를 넘어선 반대파까지 너무 옥죄며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지배계급 내부의 불만이 경제 위기 해법에 대한 이견과 겹쳐지며 우파의 균열로 나타났다. 유승민, 이상돈, 진영, 김종인 등이 그것을 보여 줬다. 즉 이번 총선에서 우파는 결집이 아니라 분열했다.


여기에 종북몰이를 통한 진보당 해산 성공이 결집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민주당, 국민당은 물론 헌법 안 진보’라는 정의당도 종북으로 몰기엔 좀 애매했다. ‘운동권당이라는 새로운 표적을 세우긴 했지만 효과는 많이 떨어졌다. 여기에 공천 파동만이 아니라 몇 가지 선거전략상의 실수가 겹쳐졌다.

 

친여 주류 언론들은 야권 분열을 노리고 국민당을 너무 띄워줌으로써, 우파 지지층에게 새누리가 아니라 국민당을 찍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게 됐다. 또 우파는 지난 총선이나 대선과 달리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같은 사기성 공약을 별로 제시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동안 일방적 독주에 중독된 결과인 듯하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는 우파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 낼 충분한 명분과 동기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우파 지지층 중에서 일부는 애써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고, 일부는 종북이나 운동권이 아니니 믿을만 하다며 국민당에 투표했다.

 

반면 민주당(부분적으로 국민당)은 어떻게 반박근혜 정서를 투표로 모아내는 데 성공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민주당이 뭘 잘해서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불만과 분노를 쌓아 온 주요 쟁점들에서 민주당은 뭔가 제대로 맞서거나 대안을 보여 준 적이 없다. 이번 총선 민주당 공보물이나 주요 공약에는 세월호, 국정화, 위안부, 테러방지법, 사드배치, 노동개악 등의 쟁점이 잘 나와 있거나 강조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이나 일부 언론의 지적처럼 3억 금괴 보유자 김종인의 경제민주화가 먹혀든 것인가? 투자 유치를 위해 삼성재벌에게 조세 감면과 특혜를 주겠다는 앞뒤도 안 맞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반박근혜 정서가 너무 커서 차악론이 먹혔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민주당이 막판에 주력한 것은 우리를 안 찍으면 새누리가 된다는 협박이었다. 여기에 민주당이 장식물로 이용하고 버려 온 정청래, 김광진, 박주민 등이 일부 젊은 개혁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효과를 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정당득표는 19대 총선보다 170만표나 줄었고 국민당보다 적었다. 의석수도 19대보다 줄었다. , 반박근혜 정서가 가장 컸지만, 한심한 야당에 대한 심판 정서도 컸던 것이다. 박근혜를 내려치기 위해 민주당을 막대기로 쓴 사람들이, 민주당을 내려치기 위해선 국민당을 이용했다. 마찬가지로 그 막대기가 마음에 든 게 아니었다.

 

따라서 안철수의 새정치도 먹혔다고 볼 수 없다. 누구도 믿기 어렵고 맘에 안 든다는 사람들의 심정은 민주당, 국민당의 후보와 정당에 대한 어지러운 교차투표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당은 앞서 봤듯이 일부 새누리 지지층의 후보·정당 교차투표마저 얻었다. 우경화 경쟁에서 민주당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당은 호남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만도 이용할 수 있었다. 국민당이 부추긴 것은 군사독재 시절의 저항적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전두환 국보위 출신 김종인의 민주당은 그것을 차단하기 어려웠다.(그 점에서 김종인이 문재인을 탓하는 것은 코미디다.)

 

특히, 간만 보다 철수한다는 간철수에서 끝까지 야권연대를 거부한 강철수로의 변화가 먹혀들었다. 민주당 오른쪽에 자리잡으며 본색을 드러낸 안철수는 비록 안철수 현상을 낳았던 젊은 개혁지지층과는 등지게 됐지만, 3지대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유럽 일부 나라에서 양당체제에 대한 환멸을 파고들며 등장한 신우파와 유사한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들에게 매우 쓰라린 교훈을 준다. 사실 양당체제에 대한 불신을 파고들어서 제 3지대를 차지한다는 것은 진보의 오랜 전략이었다. 새누리와 민주당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큰 이번 상황은 진보정당들에게 큰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분오열 속에 있는 진보정당들은 이 기회를 또 안철수에게 빼앗겼다. 통합진보당을 표적으로 한 우파의 집요한 종북몰이가 먹히면서 이런 비극이 시작됐다.

 

강제 해산된 진보당은 언론만이 아니라 진보정치 내에서도 배척·배제를 당했다. 서글프게도 헌법 안 진보를 자처하며 살아남은 정의당은 아마 원내 유일 진보정당이라는 프리미엄과 우호적 언론환경을 바탕으로 성장을 기대했을 것이다. 야권연대만 잘하면 제 3지대를 독차지할 거라고 잘못 봤을 것이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국민당, 왼쪽에서 원외 진보정당들의 등장은 이 계산을 꼬이게 했다. 진보의 단결보다 야권연대를 우선한 것은 진보의 분열을 심화시켰다. 야권연대도 잘 풀리지 않았고, 그럴수록 정의당은 민주당과 다른 대체재가 아니라 비슷한 보완재처럼 여겨졌다.

 

결국 진보정당들이 얻은 득표수와 의석수는 19대 총선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었다. 4년전에 13석에서 8석으로 줄었고, 17대 총선부터 거의 12%정도를 유지했던 진보정당들의 득표율 합계도 9% 정도로 줄었다. 총득표수는 종복몰이와 진보의 사분오열이 절정이던 2014년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약간 줄었다. 정의당은 진보당 표를 다 흡수하지도, 민주당 표를 일부 끌어오지도 못하면서 교섭단체는 물론 두자리 수 의석에도 실패했다.

 

탄압, 외면에다가 배제·분열까지 겹쳐진 원외 진보정당들의 저조한 성적은 더 쓰라리다. 기대와 달리 노동당의 치열함, 녹색당의 신선함, 민중연합당의 조직력은 거의 먹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대한 노조와 시민사회의 의존이 심해지고, 심지어 일부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새누리 후보를 지지 방문하거나 새누리와 정책협약을 맺는 비극까지 나타났다.

 

그나마 울산과 창원에서 노회찬, 김종훈, 윤종오 등 민주노총 전략 후보 3명의 당선, 세월호 가족들이 그토록 염원한 박주민의 당선, 민중연합당 남수정의 38% 득표, 녹색당 변홍철의 30% 득표, 노동당 이향희의 20% 득표, 무소속 권영국의 16% 득표, 무소속 조석원의 24% 득표 등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정당 투표에서 20대가 정의당에 꽤 많은 표를 던진 것도 어떤 점에서는 급진화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부에서처럼 이 선거 결과를 노동계급의 전진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설득력이 없다. 지금은 현실을 외면하며 자기 만족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며 돌파구를 찾을 때다. 직시해야할 현실은 이번 총선에서 헬조선을 만들어 온 금수저 대표들이 패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흙수저 대표들이 승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총선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은수저 대표들은 헬조선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다. 지금 주류 언론들의 논조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흙수저들을 억누르고 이간질하며 헬조선을 유지하려는 내용은 타당하지만 방식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박근혜는 너무 일방적이고 소통이 없다. 앞으로 금수저와 은수저들 사이에서는 좀 더 서로 타협·조정하면서 권력을 공유하자. 경제 상황도 심각해지는 데 금수저들은 좀 더 소통에 힘쓰고 은수저들은 좀 더 협조에 힘쓰자.’

 

총선 끝나자마자 세월호 행사 참석을 거부한 김종인과 안철수는 이 조언을 잘 새겨들은 것 같다. 김종인은 더민주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며 나섰고, 안철수는 서비스법과 노동4법의 국회 처리를 논의하자고 나섰다. 물론 흙수저들의 표를 자신들 주머니에 챙겨놓기 위한 생색내기나 보여주기까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은수저 당에서 흙수저를 대변하려는 박주민 변호사 등에겐 많은 난관이 닥칠 것 같다.


반면 박근혜의 몸에 밴 일방적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입법부에서 약해진 개악 추진 동력을 행정부와 사법부에서 뒤집으려 할 수 있다. 검찰은 이미 울산 진보 당선자 2명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고, 행정명령을 통한 개악 추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무소속 7명 복당을 통한 제1당 회복이 추진되고 있고, 흩어져 있는 금수저들을 헤쳐모아 더 큰 금수저 당을 만드는 정계개편도 예상 가능하다. 헬조선의 한쪽에서는 불길한 노래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반대를 내세운 기독교 우파는 의회 문턱을 넘을 뻔 했고, 새누리와 민주당은 모두 동성애 혐오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좌파 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중요한 것은 사분오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와 일부 진보정당들이 제기한 방안은 매우 타당하다. 진보좌파 진영의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독자적 목소리를 인정하는 노동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비록 사기성이 컸지만 국민당의 성공은 새누리-민주 양당체제에서 독립적인 진보정당들의 단결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것은 선거 뿐 아니라 무엇보다 단결된 투쟁을 위해서 필요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울산에서 종북몰이 광풍에도 통합진보당 출신 후보들이 여유있게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정의당, 노동당까지 힘을 모은 이런 단결 덕분이었다.

 

반면 민주당과의 야권연대와 연립정부를 목적삼아 종북몰이에 타협하고 진보를 우클릭시키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주로 정의당이 앞장서 온 이 방향은 이번 선거에서도 역효과를 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의식을 무디게 만들고 투쟁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이런 단결과 투쟁의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하자. 선거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 진보정당들이 얻은 9%213만표는 작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결과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종자돈일 수 있다.

 

따라서 허탈해하는 [특히 원외] 진보정당들의 활동가와 지지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선거 결과는 아쉽지만 당신들의 주장은 의미 있었고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선거 결과를 두고 서로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 같이 손잡고 미래와 단결을 위한 토대를 놓자고.

 

병원에 누워있고, 고공에 올라가 있고, 광장에서 노숙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우리의 연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선거는 끝났지만 세월호의 진실, 노동개악 반대, 테러방지법 폐기, 국정화 저지, 위안부 합의 무효를 위한 단결과 투쟁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 싸움이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를 자꾸만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일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미래를 도입하려는 싸움이다. ‘지는 싸움계속하는사람들은 그렇게 이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계속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에,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9641.html)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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