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마르크스주의 젠더 이론을 향하여?

헤더 브라운(Heather Brown)의 책 <마르크스와 젠더, 가족: Marx on Gender and Family>은 마르크스가 남긴 저술과 기록 등을 통해 여성억압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시도였다. 영국 RS21(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 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의 활동가 에스텔 쿠치(Estelle Cooch)가 헤더 브라운을 인터뷰했다. 비록 헤더 브라운의 책이 아직 이 나라에 출판되진 않았지만, 이 인터뷰는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과 혁신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를 전한다.

 

출처: http://rs21.org.uk/2014/11/10/towards-a-marxist-theory-of-gender/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엥겔스의 <가족, 국가, 사유재산의 기원>(이하 기원’)을 보다가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글들을 보게 되는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 변화가 왜,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본론>이 오늘날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 더 나은 기반을 제공해 준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엥겔스의 <기원>은 대부분 자본주의가 침투한 적이 없는 전자본주의 사회를 주로 다룹니다. 1960년대, 1970년대 여성운동은 이런 종류의 기원들을 실제로 다루었기 때문에 당시 여성운동에게는 이 책이 중요한 원천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서로 다른 관계들을 해명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과거로 눈을 돌렸습니다. 엥겔스는 남성이 원래부터 지배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사실 몇몇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성들이 가족 내 관계와 일터 내 관계의 변화를 위해 싸우던 시대에 이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논리적인 출발점으로 보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남성들은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여성이 남성과 서로 동등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페미니즘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조차 있습니다. 다른 이슈들도 있지만, 특히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서 높은 여성 비율과 성별 임금 격차가 온존하는 상황에서 저는 분명히 그렇게까지 너무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3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오늘날의 분위기는 굉장히 다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탐구가 더 나은 출발점으로 보입니다.

 

<자본론>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쓰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분량이 간접적으로 이 쟁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노동일에 관한 장의 거의 90페이지와 기계제 대공업에 관한 장의 거의 150페이지가 노동계급 투쟁과 특히 노동력으로서의 여성과 아동의 지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가 직접적으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생산적 노동을 이야기할 때도, 제가 보기에는 여성주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여성에게 더 적절할 수도 있는 정치경제학의 쟁점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Cinzia Arruzza가 당신의 작업과 리즈 보겔(Lise Vogel)의 작업 모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둘 모두 엥겔스의 보다 명확하게 표현된 서술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단편적인 서술에 기초해 여성억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를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얘기인가요?

 

어떤 면에서는 정확합니다. 엥겔스가 <기원>에서 여성억압에 대한 이론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엥겔스가 현재 여성운동에서 그 이론이 지니는 중요성을 의도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엥겔스가 그저 루이스 헨리 모건을 유럽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적었을 때 어쩌면 그냥 겸손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엥겔스가 젠더 관계에 대해 온전히 완성된 전망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믿는 것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몇몇이 주장했듯이, 어쩌면 그는 베벨의 주장에 영향받은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를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분명 매우 큰 가능성이지만, 그래도 엥겔스가 운동의 정치적 쟁점에서 이기고자 젠더 문제에 대한 논문을 계획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는 이것을 매우 빨리 썼고 나중에 신판을 낼 때 다시 고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그러지는 못했지만요. 물론, <자본론> 편집 등이 그의 시간 상당 부분을 잡아먹었지만, 그래도 <기원>이 엥겔스에게 논쟁을 위한 글, 혹은 모건에 대한 입문서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젠더와 가족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은 확실히 곳곳에 흩어져 있고, 이는 어쩌면 그의 작업에서 그것들이 고작 주변적인 구실밖에 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엥겔스와 비교해 젠더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는 더 깊이 있고 다양합니다. 가장 초기의 책들부터 민속학노트까지 여성 자살, 여성들의 활동,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 등 넓은 주제에 대한 상대적으로 이차적이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엥겔스의 <기원>과 비교할 때 마르크스의 작업들은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비평하고 확장할 더 많은 주제와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반면 엥겔스는 최소한 <기원>에서는 자기가 사는 시대의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서, 이것이 과거의 억압과 관련돼 있다는 것 외에는 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엥겔스처럼 여성억압의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늘날 마르크스가 엥겔스보다 가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의 짐을 조금 덜고 마르크스가 젠더에 대해 단편적으로 쓴 글들과, 여성주의적 해석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단편적 글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마르크스가 젠더에 대해 드러내놓고 주장을 했었다면, 그의 중산층 감수성을 고려할 때, 여성운동이 여기까지 진전한 오늘날 그 주장은 어쩌면 잘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점에서,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그의 이론을 조금 더 창의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의 맥락과, 매우 견고한 사회관계에 의해 구조화된 마르크스가 한 인간으로서 가졌던 한계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않고 마음대로 갖다 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당신과 보겔 둘 다 엥겔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 같습니다. 여성에 대한 엥겔스의 저술 중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분명 저는 엥겔스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젠더 관계 이론을 정식화하는 데에서의 그의 가치에 대해 조금 회의적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가 역사적으로 했던 기여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기원>은 그 시대에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선 것이었습니다. 엥겔스는 급진적 여성주의 운동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시대에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젠더에 대해 쓴 것에서 영향을 받은 플로라 트리스탄(Flora Tristan)같은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대신, 사회주의 운동에는 명백한 여성 혐오자였고 추종자도 많았던 프루동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 엥겔스와 베벨이 과거에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에 대해 글을 썼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는 당시에 여성의 경제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더 나아가,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엥겔스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쓰면서 여성의 관점을 고려하려 노력한 남성이었습니다. 그게 충분히 성공적이진 않았더라도, 노력한 사실만으로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엥겔스가 그 책을 쓴 시점부터 1980년대까지 사회주의 운동에 미친 영향을 깎아내릴 순 없습니다. 그의 작업은 여러 면에서 그 시대 내내 여성억압을 다루는 고전적 방식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엥겔스의 작업은 당대 많은 여성주의자들과 공명했으며, 젠더와 계급 억압을 논의하는 출발점을 만들었습니다.


제 작업은 분명히, 그들이 드러낸 한계에 대한 비평뿐 아니라 이런 초기의 여성주의적 통찰력의 덕도 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주의 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이 결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작업할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완벽한 결혼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여성주의적 분석을 통합시키는 단일한 설명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어떤 장애물이 있나요?

 

어떤 이론에든 장애물과 난점은 있습니다. 이론이란 어떤 면에서 언제나 추상이고 실제 세상은 비교적 어지러우니까요. 어떤 이론이든 유연해야 하고, 실제 연구에서 과도하게 교조적이 되거나 잘 안 맞는 범주를 적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변증법과 변화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 책에서 저는 남성과 여성, 자연과 문화와 같은 범주를 이해하는 잠재력의 측면에서 이를 논하는데요. 이것들은 정적인 범주들이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면 같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는 개념도 확실히 마르크스의 시대 이래로 커다란 변화를 거쳐 왔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통합적 접근법의 주요한 장애물은 한 가지 요소가 마치 언제나 우선적인 것처럼 볼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서 계급, 인종 혹은 젠더의 우선성을 가정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론과 실제 세계에 대한 연구 사이에는 매우 변증법적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론은 질문을 절대적으로 끝까지 밀고 가야 하지만, 그 결과는 교조적으로 해석되어선 안 됩니다.

 

대신, 그 결과들은 필요할 때 이론을 더 날카롭게 다듬는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통합적 접근법은 단지 정답을 내놓기 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하고 오늘날 세계에 대한 우리의 깊이있는 이해를 돕는 답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해야 합니다.

 

그들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이런 시도를 하는 리즈 보겔이나 실비아 페데리치 같은 저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겔과 페데리치 둘 다 오늘날의 젠더 관계에 대해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저는 보겔의 작업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정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분명 의도하지 않은 잘못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은 잘못입니다.


보겔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과 클라라 체트킨을 포함한 중요한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작업들에 대한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하게 기여했습니다


보겔은 엥겔스가 [여성억압의 원인과 계급 착취의 원인을 분리하는]이원론으로 기울어져서 그 논지에 결함이 생겼다는 매우 강력한 주장을 했습니다. 보겔이 제 접근법과도 여러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통합적 접근법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기여입니다.

 

페데리치도 몇몇 중요한 기여들을 합니다. 아마도 특히 여성 농민을 포함하는 생산적 영역외부의 노동에 대한 그녀의 초점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는 그런 연구들에 대한 중요한 반론입니다


확실히 매일매일 일어나는 노동력의 재생산은 생산적 노동만큼 자본주의 기능에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페데리치는 이렇게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두 유형의 경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몇몇 흥미로운 질문들을 제기합니다.

 

억압받는 집단들의 서로 다른 경험들을 결합시키는 주장으로서 상호교차성이 부상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에 대해 그의 저작에 나와 있는 게 있나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상호교차성이 필요할까요?

 

상호교차성은 쓰는 사람 수만큼 많은 뜻이 존재하는 용어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라면 마르크스주의에 몇몇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종 경제 환원론이라는 정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젠더와 인종도 당연히 그만큼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분명 적절한 조건에서 그 나름의 목표를 위해 분열지배 전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는 미국 남북전쟁과 그것이 급성장하는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자본론>에서 비교적 직접적으로 지적합니다.

 

노예제가 공화국의 일부를 훼손하는 한, 미합중국에서 모든 독립적인 노동자 운동은 마비되었다. 검은 피부의 노동자들이 낙인찍혀 있는 곳에서는 흰 피부의 노동자들도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노예제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곧바로 태어났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미국 노동운동에 대해 피상적으로 보면서 과도한 낙관을 보여주긴 하지만, 저는 이것이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이슈에서 아주 다른 집단들이 서로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집단들이 의제와 프로그램의 시행에 대해 의견을 내도록 조직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요.

 

최근에 여성과 젠더 연구에 대한 저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여성들이 맞닥뜨린 쟁점들 때문에 특히 사회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쪽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2007년에 시작돼 끝이 안보이는 불황으로 인해 여성들은 불균등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친숙한 사례인 미국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거의 그렇겠지만, 불경기가 정부의 긴축정책과 겹쳤습니다. 이런 긴축정책은 사적 부문에서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엄청난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에서 주 정부와 지역 정부는 765,000개의 일자리를 없앴습니다. 이렇게 없어진 일자리들 중 70%가 여성이고 20%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습니다. 이런 명백한 불균형은 사적 부문보다 주 정부와 지역 정부가 이 집단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온 것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언론은 불황 이래로 여성들이 잘 헤쳐 나갔고 실제로 일자리 증가도 남성보다 컸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새로 생겨난 일자리들의 대부분은 서비스 부문이 차지합니다. 여성을 돌보는역할에 놓는 성별 분업 때문에 이런 직업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돼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많은 경우에 이런 일자리들은 저임금이며, 노동환경도 중앙집중적이지 않고 젠더화된 사회규범 때문에 노조로 조직하기가 더 힘듭니다. 더불어,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임금 인상이 별로 없기에 저임금을 받는 많은 사람들은 아동이나 노인 돌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이 밖에서 일을 하면서 거기에 더해 이런 역할들을 불평등하게 떠맡거나, 돌봄 서비스 선택 비용이 없어서 집에 머무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는 물론 남성들이 1달러를 벌 때 여성들이 77센트를 버는 미국의 성별 임금 격차와도 관련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젠더와 계급 간의 관계를 재평가할 필요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막 시작했습니다. 어떤 점에선 이번 책과 비슷하기도 한데, 마르크스주의 생태이론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마르크스 전집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루어진 매우 중요한 작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대한 온전한 철학적 관점을 제공해 주기보다는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저작의 특정 측면만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연구들은 물론 소비에트식 반생태주의의 발전에서 벗어난 마르크스주의적 생태주의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해 줍니다. 나아가 생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특정한 생태적 고려와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치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많은 것을 희생시키는 자본주의 경제의 탐욕스러운 본성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면, 우리는 인간적 억압의 다양한 형태들도 포괄하는 온전히 완성된 생태학의 철학적 관점을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저는 이런 작업이,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에 관해 오늘날에도 유용한 이론의 개요를 제공했음을 보여 주며 철학적 공백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작업 전체를 보면, 이원론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인류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지속적 강조는, 병렬적인 듯 보이는 인종 억압, 성별 억압, 그리고 계급 억압 중 어느 하나를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이들 모두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설명할 수 있는 생태학의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 ‘변혁재장전’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변혁 재장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