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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영국 노동당 - 코빈의 승리와 몰락하는 ‘제3의 길’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9. 14.

전지윤



제레미 코빈의 승리는 마가릿 대처가 무덤에서 통곡할 일이며, 올해 최장기 재위 기록을 갱신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걱정할, 이라크 전범 토니 블레어가 한탄할 소식이다. 코빈은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3의 길을 무너뜨리며 신자유주의 말고 대안은 없다는 주장에 도전하는 국왕 폐지론자이기 때문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공개 사과하겠다고도 했다.


이로써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분출됐던 ‘NO’의 함성은 영국에서 다시 멋지게 부활했다. 지난 영국 총선 이후 밀리반드 노동당 당수가 너무 왼쪽으로 가서 선거에서 패배했다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지게 됐다. 노동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밀리반드보다 몇 배는 더 왼쪽에 있는 코빈을 압도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그런 주장을 정면반박했다.


이제 주요 산업 국유화, 무상교육, 긴축 중단, 부자 증세, 전쟁 반대, 핵무기 폐기, 이주민 환영 등은 영국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됐다. 코빈은 1995년에 블레어가 폐기했던 당헌 4’(생산, 분배, 교환 수단의 공동소유)의 부활도 약속했다.




물론 영국 노동당에서 좌파의 부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초에도 토니 벤의 도전이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당시 벤 좌파는 투쟁이 가라앉으며 거리에서 의회로 물러서는 과정에서 등장했고, 노동당 안에서 찻잔 속 태풍에 머물렀다.


반면 코빈 바람은 긴축과 전쟁에 반대하는 거리 운동의 더디지만 끈질긴 성장 속에서 노동당 밖에서부터 불어왔다. 역설적이게도 노조의 입김을 줄이고, 중산층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도입한 투표제도(3파운드만 내면 누구나 투표 가능)가 방아쇠가 됐다. 이 제도가 블레어 노선 계승자에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산산조각났다.


기존 당원 20만 명보다, 신입당원 10만 명과 이렇게 추가된 사람들 30만 명 속에서 코빈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코빈은 다양하고 광범한 풀뿌리단체들이 손 잡은 '전쟁저지연합', 반긴축 민중회의’ 등에서 함께 투쟁하며 이런 바람의 밑돌을 놓았다. 노동당 의원 232명 중에 고작 15명의 지지를 얻은 코빈이 당대표가 된 기적은 이렇게 가능했다.


이제 영국 기성사회와 보수당, 특히 노동당 내 우파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당장 코빈의 그림자 내각에부터 긴축과 전쟁 찬성론자들을 집어넣으려 할 것이다. 주요 노조들이 코빈을 지지한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노조 지도자들은 지지를 전달한 통로를 통해서 타협의 압력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코빈을 정치적으로 제거하거나 노동당을 분열시키는 것도 불사하려 할 수 있다. 코빈이 노동당 내 우파의 눈치를 보며 화합을 추구하고 의회 안에서 힘을 찾으려 한다면 이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시리자의 굴복과 쇠퇴는 그것을 보여 줬다.


이번 승리를 노동당 밖과 거리에서 힘을 찾고 키우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코빈의 승리를 위해 자원봉사를 한 2만여 명, 유권자 등록을 한 수십만 명이 집으로 돌아가 코빈을 지켜보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들이 계속 코빈이 제기한 이슈를 가지고 토론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코빈의 승리는 개혁주의의 강점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하다. 블레어 이후 노동당식 개혁주의는 끝났다는 관측이 많았고 기반과 당원도 축소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 노동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정면거부하는 것도, 순순히 수용하는 것도 아닌 절충의 길을 택하기 쉽다. 이 길은 좌절과 실망 속에서 약해졌다가 다시 살아나곤 해 왔다.


좌파는 노동당 왼쪽 밖에서 새로운 대안을 건설한다는 기존[의 대체로 옳았던] 노선에 얽매이느라 지금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 ‘코빈은 어차피 실패할 것이라는 태도보다는 코빈의 약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투쟁 속에 함께하며 그 속에서 배워야 한다. 코빈을 지지한 노동자, 청년들에게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렇게 할 때 성장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 상황에서 영국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새민련은 새누리당 따라하기 바쁘고, 진보정당들은 분열과 위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 말이다. 진보의 일부를 배제하며 기준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진보연합도 앞 길이 밝아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노동구조개악에 대한 노사정 대야합 소식은 울적한 기분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고, 노동당은 우경화하고, 독립당같은 극우익이 성장하는 반면, 노동당 밖의 좌파는 사분오열을 거듭하고 있었다. 긴축과 전쟁,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기층 민중과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잘 대변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빈의 부상과 승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도 노동구조 개악, 한반도 긴장 고조, 민주주의 공격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 헬조선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의 분노를 어떻게 하나로 모으고 터져나오게 만들지 길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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