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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공감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5. 3.

전지윤

 

나는 내가 몸담았던 노동자연대가 이 나라 변혁운동에 큰 기여를 한 조직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민주노총 파업 건설이나 세월호 투쟁에서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고 지지를 보낸다(현대차 이경훈 지도부는 당장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동지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여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자연대와 관련된 성폭력 사건은 아직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나는 많은 망설임과 주저함 끝에 이 글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해법을 제시한 적이 있다.[각주:1] 그 후에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쏟아낸 수많은 글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는 별로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다만 그 수많은 글들이 보이는 모순과 난점들은 일부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피해자 동지의 고통과 상처가 해결되긴커녕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 글은 그런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글에서 나는 불가피하게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듣기 싫은 말들을 할 것이다. 거듭 밝혀왔지만, 이것은 내가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회원이었던 사람으로서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왜 억울해하는 지 전혀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피해자를 옹호하는 주장들도 다 옳지는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분명하고, 노동자연대 동지들을 위해서도 쓴 소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모든 인간과 조직은 단점과 한계가 있고, 잘못도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평가를 필요로 하고, 평가는 더 나은 발전의 동력이 된다. 따라서 내가 하려는 것은 동지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이며, 무엇보다 자기비판이다. 나는 이 사건에서 누구보다 자유롭지 않고 책임있는 1인이기 때문이다. 나의 주장에 생산적이고 무엇보다 동지적인 반응을 기대한다.[각주:2]


왜 상처는 아물지 않고 곪아오기만 했는가

 

이 글에서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궁금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관련 글을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실 언뜻보면 왜 이렇게까지 오래 끌고 곪아왔는지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다. 원사건 자체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부감을 보이는 여성에게 옳지 않게도 포르노를 보여 준 사건이었다.


물론 노동자연대 지도부처럼 고통의 상대 평가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피해자가] 1분짜리 동영상 보고 느낀 자신의 불쾌감이 착취받고 천대받는 수십만 노동자의 조건과 저항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밖에 안 되는 거[각주:3]라는 이상한 비교는 정말 당황스럽다. 고통과 상처의 정도는 남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간 이상의 성폭력 범죄와 성적으로 괴롭히는 정도의 범죄를 구분해 전자를 더 심각한 것으로, 후자는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심리적 외상은 피해 정도와 무관합니다.[각주:4]

 

그럼에도 이 사건은 초기에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피해 호소에 귀를 기울이면서, 피해자 쪽의 진상조사 요구 등에 응했다면 즉시 쉽게 해결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처음부터 소위 합리적 의심을 시작했다. 피해여성의 폭로에 뭔가 의도가 있으며 이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본 것이다.[각주:5] 의심의 내용은 계속 바뀌어 왔다. 처음에는 조직을 탈퇴한 회원의 복수심’, ‘학생팀 간부와 사귀다가 이별한 것에 대한 보복등이었다. 재판과 소송 과정에서는 짝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한 의도등이었다.


요즘은 피해자의 정신적 결함 때문이라는 대목이 더 부각되고 있다. 피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대한 합리적 의심도 비슷하다. ‘다른 사건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의도’, ‘순도 100% 종파들의 적대감’, ‘징계받고 쫓겨난 회원의 복수심등등.


이런 별로 합리적이지도 않은 의심은 노동자연대 지도부를 계속 수렁으로 빠지게 해 왔다. 출발점은 원치 않게 노골적 포르노를 봤다니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냐는 공감이어야 했다. 이 간단한 요소가 빠진 자리에 의심이 자리잡다보니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대응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식으로만 나타났다. 한때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과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의 매정하고 공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에 피해자는 더욱 좌절했을 것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을 해친 가해자와 싸우기보다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믿고 있던 사람에게 기대에 어긋난 말을 들으면 더욱 마음이 아프지요.[각주:6]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는 갈수록 커졌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피해자에 공감하며 노동자연대에 대한 반감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이것만이 왜 이 사건이 4년 동안이나 풀리지 않고 계속 악화돼 왔는지를 설명해 준다. ‘각기 다양한 동기로 노동자연대 찍어내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말이다. 그런데 노동자연대의 피해자에 대한 매도는 근래 더욱 조직적 양태로 발전했다. 그것들은 가혹한 내용일뿐 아니라 모순투성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잘못된 용어 사용이 문제였다는 설득력 없는 이중 잣대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원치 않은 포르노 시청은 성희롱일뿐인데, 피해자가 이를 처음부터 성폭력이라고 과장해서 부른 것이 사태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인 여성가족부의 해석이나 부르주아 법률보다도 뒤쳐진 관점이다.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것은 일부 법적으로도 성폭력으로 해석되고 있다.[각주:7] 민주노총의 성폭력 관련 규약도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불쾌한 성적인 언사, 몸짓, 신체적 접촉, 추행, 강간 등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변혁조직이 노동조합은 고사하고 부르주아 국가기구나 법률보다도 더 뒤쳐진 용어와 개념으로 여성 억압을 설명하려고 고집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노동자연대 자신도 확장된 성폭력 개념을 스스로 사용한 바 있는 데 말이다.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여성의 의사여야 한다. , 성폭력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동으로 정의돼야 한다.[각주:8]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성폭력이나 성폭력 (2) 가해단체같은 잘못된 용어 사용이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자연대를 강간범 비호단체인양 고의로 비쳐지게했다고 주장한다.[각주:9]


포르노를 보여 준 것은 성희롱이지 성폭력은 아니므로, 노동자연대 회원이 한 것은 성희롱 방조이고, 그것마저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지시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논리다. 따라서 다함께 성폭력 사건같은 잘못된 용어 사용이 오히려 노동자연대 회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비슷한 사건에서 노동자연대가 취한 태도와 모순되는 명백한 이중 잣대다. 당장 2009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때와 비교된다. 당시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을 구성했고, 나중에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백서까지 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과 진보언론까지 이 사건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라 불렀다.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결의해서 성폭력을 했다는 것이냐? 민주노총이 강간범 비호단체라는 것이냐?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가 명예를 훼손 당했다며 반박하는 것을 우선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를 지지했다. 상식적으로 봐도 밀양 성폭력 사건’, ‘고려대 성폭력 사건등의 용어를, 곧 밀양시나 고려대 학교당국이 조직적으로 결의해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


민주노총 사건을 은폐하려한 전교조 간부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지모임이 진보당 000 후보 사퇴를 요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피해자 지지모임은 000 후보를 공천한 진보당도 강력 비판했고, “도가니사건과 이것을 비교하기도 했다.


노동자연대는 이 무슨 터무니없는 비약이고 중상모략이냐며 피해자 쪽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는 모든 차별과 불의에 반대해야 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며 가장 강력하고 끈질기게 000 후보의 사퇴를 주장했었다.[각주:10]


2012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사건때도 비교할만 하다. 현대차 사측과 사법부까지 피해자의 주장말고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며 피해자를 외면했는 데, 당시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입 다물고 참고 살라는 얘기라며 현대차 사측을 규탄하고 예방과 관리감독 책임을 물었다.[각주:11]피해자의 증언만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식의 주장은 결코 없었다.


여성 억압과 성폭력에 관해 적용해 왔던 이런 민감하고 엄격한 잣대를 이제 와서 허물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적용해야 마땅하다.

 

개별 회원의 일탈이라고 책임을 피하면서 그것을 옹호·반복하기

 

피해자가 201211월 처음 이 사건을 공론화했을 때 노동자연대 학생팀 간부들의 댓글은 문제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자 학생팀장은 자살한다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시는군요. 두고 봅시다라고 했고, 학생팀 조직자[각주:12]는 피해자의 우울증과 자살 시도 등을 언급하며 연애 결별의 앙갚음이라고 비난했다.


‘2차 가해개념의 수용 여부와 무관하게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이었다. 그런데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이에 대해 회원 개인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연대에 묻고 있다며 반발한다.[각주:13] 현대차 사측에게 물었던 예방과 관리 감독 책임이 자신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 두 사람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운영위원이고 학생팀 간부였다.


그 운영위원이자 학생팀장은 이 시기에 학생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포르노를 보여 준 교지편집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지 말자. 그러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지 모른다는 지침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런 것이 문제였기에 근래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사실은 그 사람들을 내부적으로 문책· 징계했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의 간부들이 잘못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이에 대해 우리도 책임이 있고 유감이라고 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지금, 문책과 징계를 했다고 하는 그 잘못된 언행을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 “회원들이 반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각주:14], “‘자살 시도’, ‘우울증’, ‘연애 결별의 앙갚음그런 사실들은 사건과 무관하기는커녕 진상에 접근하기 위한 핵심적 실마리[각주:15]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책·징계했다는 그 잘못된 행동을 이제 테스크포스라는 이름으로 조직 기관지에서 조직적으로 하고 있다. 피해자의 개인적 SNS를 뒤져서 정신병”, “자살 시도”, “성폭행”, “성관계의 역사등을 폭로하며 피해자가 극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여 왔고 경계선 인격장애일 수 있다는 낙인찍기까지 시도했다


피해자가 “‘성폭력피해를 당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후진적인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논리까지 썼다.[각주:16]피해자가 다함께 남성 회원에게 치근덕거렸던 것은 폭로의 동기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언급도 했다.[각주:17]


상황이 이렇게 되면 왜 문책과 징계를 했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행위를 회원이 개인적으로 하면 안 되고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하면 되는 것인가?


권한 적이 없다는 소송을 정당화하는 이율배반과 드러난 사실

 

이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 호소에 가해지목인 측에서 법적 소송으로 대응한 것이야말로 심각한 오류였다. 이 소송이야말로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가했다. 이것은 피해자의 인격과 신뢰를 파탄시키기 위한 내용으로 가득 찬 소송 자료와 증인 진술서 등을 보면 명백해진다.


그래서인지 노동자연대 지도부도 자신들은 이 소송을 권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변명은 너무 궁색하다. 소송을 지시한 게 아니라 이왕 했으니 잘하라고 한 것이고, 소송을 중단하면 우리는 너를 의심할 거라고 한 것이란 것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간 노동자연대 회원에 대해서도 증인으로 나가라곤 안했지만, 나가면 이렇게 임하라고 코치했다는 주장도 비슷하게 궁색하다.


나아가 소송으로 간 것을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정아무가 결백을 밝히겠다고 소송을 제기했을 때 그것은 권리였을뿐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기회였다[각주:18]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소송을 권유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이것은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소송을 권유했고, 지도해 왔다는 피해자 대책위의 주장과 근거로 제시한 노동자연대 대의원협의회자료집에 나온 내용과도 부합한다.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이것을 반박하는 유일한 근거는 정아무 대리인의 글뿐이다. 그가 다함께 지도부는 소송을 권한 적이 없다는 글을 예전에 페이스북에 남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리인은 이 논란이 한참이던 지난해 1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형사고소를 했는데 다함께의 정**씨가 형사고소는 다함께의 뜻과 맞지 않다. 민사로 하는 것이 전과도 남기지 않고 좋지 않겠는가라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민사는 변호사 선임이 있어야 하고 돈이 든다, 누가 돈을 낼 거냐고 정**씨에게 말했고 정**씨는 모금을 할 거다는 요지의 얘기를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다함께의 최**씨가 저희 변호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운동권의 변호사를 선임하자고 해서 철수가 그 변호사를 만났는데 결과는 거절이었답니다.

 

내 기억이나 기존의 증거, 증언들과도 부합하는 이 글에 따르면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소송을 권하지 않은게 아니라 형사소송을 권하지 않은 것이다. ‘민사소송은 권한 것이다. 더구나 변호사 문제까지도 관여했다. 이제 그만 솔직해져야 한다.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

 

그 밖에도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앞뒤가 안 맞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주장과 태도를 보였다.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게 왜 마르크스주의를 져버리는 태도’, ‘계급투쟁을 뒷전에 놓는 태도’, ‘노동운동을 분열·약화시키는 것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여성도 성을 즐길 권리와 자격이 있다거나, ‘우리 단체 주요 기구에는 여성이 많다거나, ‘여성 억압에서 가족의 구실이 야동보다 중요하다는 등의 주장이 왜 나오는지도 말이다.


무엇보다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테스크포스까지 만들어서 사적인 SNS내용 등까지 들춰내며 피해자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행동을 그만둬야 한다.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얼마 전에도 <SNS의 선용과 악용>이란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터넷 상에서 모욕을 줘 이를 단죄하려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이런 시도는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곤 한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다른 이의 평판을 떨어뜨려 그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장 믿을 만한 친구나 연인에게 털어놓은 비밀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각주:19]

 

이 기사가 문제삼고 있는 내용을 바로 본인들이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모순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각주:20] 지금 노동자연대 지도부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 절대주의에 대한 경계보다 피해자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피해자가 자살을 기도하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여 왔다는 사실에서 왜 따라서 저 여성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증거만을 보는가? 왜 거기서 공감을 기대하던 고통받는 영혼을 보지 못했는가? 피해자의 SNS를 뒤지면서 왜 이런 글은 눈여겨보지 못했을까?

 

요즘은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던 게 후회가 된다. 공론화하지 않고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고 거기 나왔으면 난 지금쯤 아마 다른 사람들하고 평범하게 운동을 계속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격도 버렸고 운동도 버렸고 인생도 버렸고 건강도 버렸고 수많은 동지들과 사람들도 버렸다. 그 사실이 나를 더더욱 분노케 한다. 성폭력 피해는 선택이 아니었어도, 성폭력 공론화는 내 선택이었는데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산산조각 나버린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나는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이런 글을 보고 뒤늦게라도 가슴 아파하며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 없다. 이 모든 고통과 비극을 끝내고, 스스로도 진정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말이다.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지금의 굴레와 불명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고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또다시 누군가가 어둠 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뻔히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 고통이 끝날 수 있다.


나도, 노동자연대도 피해자를 원망할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족함을 지적하고 바꾸게 해 준 사람으로 기억하고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더 건강하고 여성 억압에 민감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 준 사람으로 말이다.[각주:21]


노동자연대 활동 속에서 나는 아무리 혁명적 조직이라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혁명조직은 오류에서 배워야 한다고 배웠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 사례라고 생각된다. 그토록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연대하던 동지들이 이런 오류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 다소 놀랍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민감하고, 풍부한 감수성으로 함께 눈물 흘릴 줄 알던 많은 동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곪아가는 상황에서, 오류를 인정하고 교정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피해자 동지를 위해서뿐 아니라 노동자연대 자신을 위해서도, 전체 진보운동의 신뢰와 단결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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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지윤 <더 늦기 전에 함께 반성하며 이 고통을 끝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17, 더 종합적인 글은, 조형석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지한 돌아보기를 위해> http://rreload.tistory.com/119 [본문으로]
  2. 나의 “복수심”과 “위선”, “교활함”, “치졸한 … 야비한 … 품성”을 지적하는 글(http://wspaper.org/article/15181)들은 더 보고 싶지 않고, 반박할 의미도 찾지 못하겠다. [본문으로]
  3. http://wspaper.org/article/15315 [본문으로]
  4. 한국성폭력상담소, ≪보통의 경험≫, 2011, 이매진, 238쪽. [본문으로]
  5. 여기에는 2008년 촛불항쟁 때 노동자연대가 부당한 인터넷 마녀사냥을 당했던 트라우마도 일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옳지 않은 반응이었다. 물론 더 근본에는 더 큰 정치적·이론적 문제가 놓여 있는 데 나는 그것을 다른 글((http://rreload.tistory.com/170)에서 다루었다. [본문으로]
  6. 한국성폭력상담소, 앞의 책, 226쪽 [본문으로]
  7. 성폭력 처벌법 제2장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절차에 관한 특례 제13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본문으로]
  8. http://wspaper.org/article/9831 [본문으로]
  9. http://wspaper.org/article/15259 이 기사에서는 심지어 대책위가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상습 집단 강간과 은폐가 있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라는 엄청난 과장도 한다. 물론 피해자 쪽의 용어 사용이 더 정확하고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나도 있는데,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단지 그것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이용해 논점을 비틀고 있다. [본문으로]
  10. http://wspaper.org/article/10945 [본문으로]
  11. http://wspaper.org/article/11557 [본문으로]
  12. 내 기억에 당시 노동자연대 학생팀 지도부는 학생팀장 1인과 조직자 2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본문으로]
  13. http://wspaper.org/article/15233 [본문으로]
  14. http://wspaper.org/article/15259 [본문으로]
  15. http://wspaper.org/article/15259 [본문으로]
  16. http://wspaper.org/article/15281 [본문으로]
  17. http://wspaper.org/article/15315 [본문으로]
  18. http://wspaper.org/article/15281 [본문으로]
  19. http://wspaper.org/article/15334 [본문으로]
  20. “자꾸 깝치면 까짓꺼 개똘아이 만랩찍어보지 뭐”, “내 발톱 드러내는 날, 갈갈이 찢어주리라”, “조만간 꼭 한번 얼굴한번 마주 봅시다”, “꿈 깨라 미친것들아”, “미친 인간 … 개소리하면 입을 가로세로로 찢어버릴지도 몰라.”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SNS에 나를 향해 이런 글을 계속 올리는 회원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이 회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나를 매도하는 일도 그만뒀으면 좋겠다. [본문으로]
  21. 최근에 나는 여성 억압에 대한 고민을 정리해서 미흡한 글을 하나 썼는데(http://rreload.tistory.com/170), 이 글은 피해자 동지의 투쟁을 보면서 자극받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를 보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