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새로운 좌파의 건설을 향하여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번역: 박상우

 


이 글은 캐나다의 극좌파 조직인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에서 2008년에 발표한 글이다. 어려운 조건과 상황 속에서 급진좌파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방향에 대해 고민을 담고 있다. 데이비드 맥낼리는 이 조직의 주요 활동가이고 한국에도 그의 책 ≪글로벌 슬럼프≫가 출판된 바 있다. 


출처: https://revolutionarystrategy.wordpress.com/next-new-left/


때때로 가장 깊이있는 생각은 길을 잃었을 때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또는 가려는 곳에 어떻게 도착해야할지 알지 못할 때 떠오른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나 과학 문제에 대한 연구에서나 그리고 정치 운동의 발전에서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 걸쳐서 오늘날 사회주의 좌파는 신자유주의 습격이라는 30년을 보낸 후에,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를 살아가면서 근본적으로 길을 잃은 상태다.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노조운동은 수십 년간 심각하게 쇠퇴해왔다. 사회 운동은 세계적 정의 운동의 형태로 잠깐 부활하고는 9/11 이후 생겨난 엄중한 단속이래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는 것이 전반적 경향이다.


후퇴의 시기는 특히 급진적 좌파에게 어려운 기간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에서 소박한 개선조차 만들어내기 벅차하는 시기에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의 사회 변혁과 같은 생각은 극도로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몽상가의 생각처럼 보여진다. 사회주의적 해방을 위한 운동은 정치적 삶의 변두리에서나 발견된다




거부와 회피를 넘어서


좌파들이 혼란을 겪는 시절에는, 가장 양심적인 정직함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쓰라린 진실부터 인정하자. 오늘날의 혁명적 사회주의 좌파는 지난 150년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미미하고, 노동계급 사람들의 나날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은 좌파 내부에 두가지 주요한 반응을 낳았는데, 바로 회피와 거부이다.


당연히 회피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사람들은 투쟁을 포기하고, 패배주의에 빠져들며, 세계를 병들게 하는 문제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해결책을 수용했다. 그 결과는 조직화된 사회주의 정치의 쇠퇴였다.


거부도 나을 게 없다. 자신의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아무 현실적인 딜레마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것이 괜찮고, 역사는 전진하며,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 러시아에서의 1917년 혁명이나 바르셀로나에서의 1936년 아나키스트 투쟁 으로부터 파생된 역사의 교훈을 적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사회주의자가 역사에 존재하는 풍부한 경험들로부터 가능한 모든 실용적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현상과 문제를 발생시킨다


모든 표면적인 역사적 교훈은 기껏해야 부분적일 뿐이다. 그 교훈들이 오늘 날의 새로운 도전과 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할지 알려주는 게 있기는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도전들에 대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 좌파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냉철한 이성(sober senses)”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맞서고 있는 험난한 역경과 씨름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을 끈기있게 지속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25년간 발생한 일들로 인해 사회주의적 프로젝트가 통째로 의문에 던져졌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한다.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저항의 세 가지 근본 원천은 지속되고 있다. 지구에 거주하는 대다수 인간을 향한 자본의 극심한 착취와 억압,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강력하고 감동적인 저항 운동, 그리고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향한 꿈과 투쟁.


이러한 현실 때문에 사회주의 정치는 어느정도 약화되더라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록 상황에 따라 그 규모와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상호 연관된 세 가지 과제를 지속적으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 사회주의 조직은 주요한 저항과 투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알아내서 저항을 키워내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주체들의 역량을 건설해가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적 이상 -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대한 급진적인 비전 이 살아남아서 대안을 찾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발전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동주의와 사회주의 교육을 건설하는 운동에 기반한 민주적 공동체로 그들 자신을 조직하는 법을 찾아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기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선 역사적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의 측면에서 - 생각하고 행동해야할 필요가 있다. 현재를 역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 있는 곳에서 우리의 실제 가능성과 역량을 정직하게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가 쇠퇴하는 시기에 백 명으로 구성된 집단은 노동계급 투쟁의 고양기에 천 명으로 구성된 작은 당과는 매우 다른 입장에 놓인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던컨 핼라스(Duncan Hallas)는 거의 4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조직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조직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에 실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다. 조직이란 자신들에게 주어진 한정된 선택지를 가지고 진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집단이 아무 가능한 조건이 없을 때에, 자신들이 대중 투쟁을 이끌기 직전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발전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가장 가까운 자신들 조직 내의 누군가나 다른 좌파 조직을 탓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 길 끝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종파주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생각하기란, 부분적으로, 이 순간의 실제 과제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북반구 지역에서, 이는 소소한 운동을 건설하면서 사회주의자가 스스로 교육되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과정을 강조함을 의미한다.


조직화된 사회주의적 영향력의 양과 질을 증가시키면서 실제적인 저항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활동가의 공동체를 키워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미있는 사회주의자 집단은 반()자본주의 저항을 강화하고 그리고 사회주의 정치와 지속적으로 관계맺는 호소력있는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


이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 미래를 향해 역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현재 속에있는 미래의 요소들을 알아차리고, 다음 대중 투쟁의 흐름을 위해 그것들을 사회주의 정치와 통합시켜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만 과거 정치 참여의 교훈을 요약하기보다는, 발생하고 있는 투쟁의 방향을 예상하는 예측 정치’(anticipatory politics)를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19685월과 6월 초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대중 운동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1968년을 생각하기


19685월부터 6월 초에 있었던 거대한 투쟁은, 엄청난 사회적 시위들과 학생들이 장악하고 대중 집회로 운영되던 대학교들, 1000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총파업(그 중 1~2백만은 자신들의 작업장을 스스로 통제했다)으로 이루어졌었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 발생한 위대한 사회적 반란의 시기 중 하나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소규모의 급진적 조직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에서 - 를 보여 준다685월은 급진적 민주주의, 거리 시위, 노동자 권력, 대중 동원 그리고 혁명적 상상력이 폭발하던 때였다. 거리 포스터와 그래피티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출몰했다


현실적이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혁명은 역사의 엑스터시다 (Revolution is the ecstasy of history)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 (All power to the imagination!)


당시 널리 확산되었던 이와같은 슬로건들은 혁명적 상상력을 느끼게 해주고, 그 놀라웠던 몇 주간의 투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치적 상상력은 이미 수년간 소규모 좌파 집단들 안에 스며들어 있었고, 이 집단들은 다가올 투쟁의 흐름이 어떤 것일지 부분적으로나마 예상할 줄 알았다.


1968년의 급진적 감성에 특히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두 집단은, 바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 or Barbarism)’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Situationist International)’이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두 집단이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결함을 가졌음에도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B)’1950년대에 시작된, 기껏해야 수십 명되는 사람들이 간행물을 발간하던 하나의 경향에 불과했다. SB는 노동자들이 생산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자주관리)에 주된 강조점을 두었고 스탈린주의에 대항한 헝가리 노동자들의 1956년 봉기를 옹호하였다그러나 1960년 후반에 이르러, 이 집단은 완전히 기능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B의 많은 정치적 발상들은 1968년의 젊은 급진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SI) 역시 지극히 작은 집단이었고, 좀 기이하고 불편한 내부 체제를 가진 집단이었다상황주의자들은 SB에 비해서 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경험에는 덜 관심을 보였다. 대신 그들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외된 존재에 대한 강력한 비판 일상생활에 대한 비판 - 을 발전시켰다. 그 비판은 1930년대와 4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심리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 여전히 궁핍한 상태인데, 이는 그들이 직장 안팍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본과 소비 문화에 통제당하고 소외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67년 내내 학생 시위가 성장하면서, 상황주의자의 분석은 급진화된 학생들이 인용하는 문헌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1968년에는 프랑스 전 지역에서 상황주의 슬로건이 거리 낙서에 등장하고 포스터를 장식했다.


이 두 집단은 각각 중대하고 급진적 발상 SB의 경우에는 자주관리, 그리고 SI의 경우에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소외된 삶에 대한 전면적 비판 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주관리 및 선명한 반관료주의적 정서에 관한 그들의 많은 발상들이 학생들이 점거한 대학에서 총회 방식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틀을 제공해주었다.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자주관리를 실천하도록 도왔다.


궁극적으로는 이들 중 어느 집단도 68년 반란의 여파를 활용해, 새로운 좌파라 할만한 대규모의 지속적인 운동과 조직을 건설하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였다. 두 집단 모두 민주적이고 집단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활동과 실천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커다란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좌파 정치를 예측한 그들의 작업은 소규모 혁명적 사회주의 집단이 대면하는 주요한 과제 중 하나를 보여 준다. 바로 미래의 어떤 경향을 잡아채서 다음번 정치적 급진화의 흐름을 위해 그것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구체화시킬 창조적인 사회주의 전망을 발달시켜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1968년이 1917년이나 1936년보다 더 많은 놀라운 교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근의 투쟁들은 1968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과 유색인종 젊은이들이 그 선두에 섰었다. 1968년을 되돌아보는 목적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그것이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의 마지막 대규모 대중 반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이 소규모의 급진적 집단이 새로운 혁명적 투쟁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자유의 꿈을 위해 몇 가지 점들(결코 전부가 아님)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우리가 배운 것들은 반드시 오늘날 투쟁의 살아있는 흐름과 융합돼야 할 것이다.


오늘의 현재에서 발견하는 미래


오늘날 우리가 다가올 대중 투쟁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두가지 주요 장소는 아마 볼리비아와 브라질일 것이다.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에 주기적으로 저항이 발생했는데, 여기에서는 원주민-노동자-농민이 결합해서 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실각시키고, 한 도시에서의 수도 민영화를 중단시켰다


새로운 대규모 대중 조직을 양산했으며 석유와 가스 산업에서 다국적 기업에 맞서 대중을 동원하였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원주민 간의 새로운 논의도 발생하였고 이를 통해 활동가들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과 원주민들의 자기 결정권을 위한 운동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꽤 장기적인 기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 중 하나인, 무토지 노동자 운동(Landless Worker Movement 또는 포르투칼어 이니셜을 따서 MST라고 부름)이 발생하였고, 이 운동은 공격적인 점거를 통해 획득한 땅에 약 50만 명의 사람을 정착시켰다.


그들의 정착지에서 MST 활동가들은 계급과 젠더의 위계질서에 도전하고 반()자본주의 세계관을 양성하는 협력적 사회 관계를 건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볼리비아에서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MST는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대중 조직화의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의미있는 사회주의 베네수엘라에서 알려진 것과 같은 21세기 사회주의 는 볼리비아와 브라질의 투쟁 속에 흐르고 있는 강력한 해방적 충동으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더 철저하게 사회주의는 반인종차별주의와 여성주의를 계급 정치에 진정으로 통합시켜내야할 것이다. 또한 의미있는 사회주의는 성적 해방, 일상에서의 혁명 그리고 새로운 생태사회주의를 옹호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적인 관점은 장기적 여정을 위한 영감을 제공해주고 동시에 지금 있는 곳에서의 저항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관점 없이는 활기차고 지속가능한 사회주의 정치를 갖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사회주의 조직화는 그 대부분이 지독히 어렵고 끊임없이 반복해야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또한 행복감을 주고 승리를 기념하는 일이어야만 한다. 새로운 연대를 고취시키고 건설하는 일이어야만 한다. 요약하자면, 냉혹한 현실주의와 생생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결합시켜내야만 하는 일이다이러한 길에는 회피나 거부가 아니라, 희망이 놓여 있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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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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