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억압과 착취, 마르크스주의와 ‘상호교차성’

니스 맥빈 (Shanice McBean)

번역: 박상우

 


출처: http://rs21.org.uk/2013/08/13/what-is-intersectionality/


[억압에 저항하는 새로운 운동들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용어들이 있다. ‘상호교차성은 그 용어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개념이다영국 RS21(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의 샤니스 맥빈 (Shanice McBean)이 이 용어에 대한 이해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상호교차성이 이야기하는 세 가지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다르다. 왜냐하면 각자가 처한 억압과 착취의 물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상호교차성이 말하는 세 번째는 쉽게 잊혀지는 이야기이고, 내 생각에 억압에 대한 SWP(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이론이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취약하다. [이 글은 SWPRS21의 분리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바로, 한 형태의 억압이 다른 형태의 억압에 의해 규정되거나 또는 다른 형태의 억압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이 성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고, 또는 여성억압이 인종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현상들에서는 서로 다른 억압들을 따로 떼어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모든 억압이 자본주의에 그 물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모든 착취와 억압이 서로 얽혀있다는 주장은, 최소한 모든 억압이 동일한 사회적 구조에 근간하고 있다는 상호교차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게나마 이미 [좌파의 생각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호교차성은 더 나아가서, 예를 들면 흑인 여성이 한 편으로는 성차별주의를 경험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성차별주의와는 별개인 인종차별주의를 경험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흑인 여성이 겪는 성차별주의는 종종 그들의 피부색에 의해 규정되고, 그들이 겪는 인종주의는 그들의 성에 의해 규정된다


흑인 여성으로서 겪는 여성 억압은 백인 여성이 겪는 여성 억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배계급 여성들이 겪는 억압이 노동 계급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오늘날 존재하는 상호교차성 이론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여섯 번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억압의 경험 차이는 중요하다


, 당신이 누구인가에 따라 억압에 대한 경험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아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상호교차성 이론이 유용한 기술적 도구(descriptive tool)인가? 우리는 한 예로 영국에서의 여성운동사를 볼 수 있다. 1971년 스케그니스 (Skegness)에서 열린 여성해방운동(Women’s Liberation Movement - WLM) 전국대회에서 출산권을 주요 골자로 하는 세 번째 요구안이 통과되었다. 특히 이 요구안은 낙태와 피임에 대한 여성들의 접근권을 요구했다.


물론 이 요구안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여성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그 때까지 불법적 낙태시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노동계급 여성들이 혜택을 보았다. 피임 역시,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일하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나는 출산권 요구가 불완전했다고 주장한다. WLM은 출산권에 대한 성차별적 제한이 어떻게 인종차별화되고 섹슈얼리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지 보지 못했다. 만일 알았더라면, 그들은 레즈비언 여성들의 아동입양권도 요구했을 것이며 미국의 유색인종 여성들과 연대해 강제불임시술 반대 요구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하지 못한 것은 부분적으로 운동 내부(특히 미국)에 존재하던 동성애 혐오와 인종차별주의라는 물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완전한 이론이 불완전한 실천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WLM은 여성 억압이 특정한 여성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보지 못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사람들을 운동으로 조직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맹점이 결국 레즈비언들과 유색인종 여성들을 소외시켰고, 나는 이것이 후에 WLM이 분열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요소들과 함께).


오늘날 SWP의 여성 해방 이론은 백인의 관점에서 나왔다고 보여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여성문제에 관한 모임에서 우리는 자주 여성들이 엄마가 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싸워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나, 인종과 관련해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노예제 하에서, 미국의 흑인 여성들은 엄마가 아니라 노예번식의 수단으로 인식됐다. 마치 우리가 사육장에서 어린 동물을 엄마로부터 뺏는 것처럼, 노예 주인들이 아이들을 노예 엄마로부터 빼앗아서 다시 노예로 파는 일은 흔했다.


오늘날에도 흑인 모성을 인식할 때 이런 병적인 잔재가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 흑인 여성들은 엄마가 되기에 부적합한 존재로 여겨지고, 통상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도록 권유를 받는다. 유색인종 여성들이 불임시술의 가장 주된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엄마로서 적합하다고 인식되기 위해서 싸워왔다. 오늘날 영국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볼 수 있다. 무슬림 엄마들이 아이를 너무 많이 낳고, 복지를 축낸다며 어떤 비난을 받는지를 보자.


이것은 흑인 여성에게서 여성성과 모성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노예제 폐지 직후에는, 흑인 여성들이 자주 백인 중산층의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부로 고용되었었다 (이것이 흑인유모라는 고정관념(“Mammy” stereotype)[각주:1]을 낳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흑인 여성에게 영향을 끼친 성차별주의가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흑인여성이 겪는 성차별주의는 인종차별화되었고 서양의 백인여성이 전형적으로 겪는 성차별주의와는 실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교차성 이론은 파편화를 낳는가?


어떤 사람들은 상호교차성 이론이 파편화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흑인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흑인이면서 동성애자이면서 장애를 가진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억압 받는 흑인이자 동성애자인 장애인인 노동계급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뭐가 문제라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처한 억압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관련지으려고 하는 건 좋은 시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경험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분열과 분리주의로 이어지는가이다.


사실 오늘날  -  예를 들면 대학 캠퍼스에서 -  상호교차성 이론이 사용되는 방식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상호교차성은 연대에 대한 호소이다. 억압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억압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편화가 아니다. 연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그러나, 물론 상호교차성이 다른 개념, 예를 들면 억압받는 사람들 자신만이 곧 억압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조직자라는 개념과 결합하면 파편화를 낳을 수 있다. 여성들을 조직하던 것이 흑인 여성들만 따로 조직하는 것이 되고, 그 다음에는 동성애 흑인 여성만의 분파를 만드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론적 명확성을 가져야 한다. 상호교차성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분리주의적 조직 사이에는 어떠한 내재적인 연관성도 없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호교차성이 주장하지 않는 입장들을 가지고 상호교차성 이론을 비난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 원리들을 스탈린주의와 결합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렇다고 그 원리들이 내재적으로 스탈린주의적이지는 않지 않은가.


계급은 상호교차성에 어떻게 들어맞는가?


어떤 이들은 상호교차성이 계급을 단순히 억압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만 보기 때문에 노동 계급을 근본에 둔 마르크스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상호교차성이 사용되는 설명적 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상호교차성이 그 자체로 무엇[착취나 억압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호교차성은 왜 억압이 존재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억압의 다양한 구조들이 혼재됨으로써 나오는 각자의 억압에 대한 미묘한 경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만일 상호교차성과 함께 사용하는 설명적 틀이 계급을 억압으로 [동일하게] 취급한다면, 상호교차성 역시 계급을 또 하나의 억압으로 취급한다. 예를 들어, 특권 이론[각주:2](previlege theory)의 틀 안에서 상호교차성을 사용한다면, 상호교차성 이론에 관한 비판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권 이론에 대한 비판과 상호교차성 이론에 대한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특권이론의 틀 안에 상호교차성을 두고는, 특권이론이 끌어낸 결론으로 상호교차성 이론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만일 마르크스주의라는 틀 안에서 상호교차성을 이용한다면, 계급의 문제는 즉시 해결된다. 마르크스주의 틀 안에서 상호교차성은 다양한 사회 관계가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잘 묘사하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지구적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특징지워진다. 계급 적대감이 주된 위치를 차지 하고, 더 많은 젊은 청년들이 상호교차성의 영향으로 계급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일보전진이다. 비록 그들이 계급 착취를 억압의 한 형태로 부르는 실수를 하더라도 말이다.


내 경험으로는, 대학 캠퍼스 내의 젊은 여성들 사이의 여성주의는 매우 상호교차적이다. 이 여성주의자들은 계급 정치에 상당히 개방적인데, 이는 WLM 시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것이다. 상호교차성은 계급 착취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론적 지형은 우리와 여성주의와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여성주의는 더 이상 계급 정치에서 벗어나는 노선이 아니고, 많은 젊은이들이 계급 정치로 나아가게 하는 첫 걸음으로 작동한다.


경험의 정치?


나는 또한 상호교차성이 경험의 정치에 기반해서 개인의 경험을 물적 현실보다 우선에 두고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거부되어야 한다고 들었다. 다시 한번 상호교차성은 경험들을 묘사할 뿐이지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겠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가 노동자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역사 유물론적으로 설명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일반화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상호교차성도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가 흑인 레즈비언의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그 경험을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사용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르크스주의가 흑인 레즈비언들에게 그들이 처한 특정한 억압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방을 위해 싸우도록 하는 해석과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상호교차성의 중요성


그래서 이것이 왜 중요한가? SWP 안에 대체 동성애자인 젊은 흑인 여성이 몇이나 되는가? 나는 나 한 명 밖에 모른다.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안에는 많이 있다. 물론 우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투쟁으로 끌어 모은다. ‘전쟁저지 연합’(Stop the War)과 반 나치동맹을 통해 당에 흑인 멤버들이 유입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얼마나 남아 있는가? 내가 당의 한 지도적 동지로부터 듣기로는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노동계급 성원들이 직면하고 있는 억압의 [구체적]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정말로 끌어들이고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성소수자 흑인 여성들로 가득찬 당을 세우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가? 토니 클리프가 말한 대로, ‘우리는 19세의 흑인 레즈비언들이 [혁명운동과 조직의] 리더로 부상하길바란다. (나는 이제 20세가 되었으므로 기회를 놓쳤다).


이런 종류의 사업은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다. 느긋하게 앉아서 다음 번 투쟁의 고양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투쟁의 고양기에 우리는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호민관으로 불릴만한 당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역할을 망각하고 말 수도 있다. 우리가 억압받는 자들의 경험에 대해 알리고 이야기하는 혁명가들이 되어서, 그들의 투쟁을 혁명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여성 억압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 여성을 조직으로 끌어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흑인 여성이나 성전환 여성들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그들이 SWP를 자신들을 위해 뭔가 해주는 조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억압은 노동 계급을 분열시키고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흑인이든 백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전환자이든 아니든,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모두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싸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억압에 대항하는 최고의 투사들로 보여져야 한다.


만약 우리의 정치가 정말로 전세계 노동 계급을 향한 것이라면, 우리는 전세계 노동계급의 특수성과 미묘한 차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세계 노동계급의 여성화와 인종화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국가가 승인하는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혁명가로서 우리는 어떤 쟁점이 영국에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대중 봉기를 일으킬 것인지 미리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노동자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것이 억압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운동이었음을 알려준다


조나스 리스턴 (Jonas Liston)이 블로그에 썼듯이, 1930년대 미국 공산당이 행한 반인종주의 작업들이 (흑백 노동자들) 공통의 경제 투쟁을 위해 흑인 노동자들과 백인노동자들을 같이 조직해야 할 때가 되었을때 조직에 엄청난 힘을 실어 주었다. 실천적으로 그들이 흑인들의 투쟁에 진지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다.


우리는 상호교차성이 점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특정 억압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투쟁이, 특히 젊은 활동가들 중심으로,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트랜스젠더 해방 운동에 대한 첫 논의들이 진행되고, 흑인 여성주의와 그들의 투쟁이 갈수록 현대 여성주의 안에서 가시화되고 있다는 강력한 조짐이 있다.


경제 위기 시기에, 유색인종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 비해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성전환 여성들은 홈리스가 되거나 직장에서의 부당 해고, 성적 신체적 학대, 경찰의 부당함에 노출될 위험이 제일 크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좌파들이 이런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설사 우리가 상호교차성이라는 용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더라도, 그 방법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는 언제나 모든 종류의 억압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어떤 억압을 받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교차의 방법론이 중요하다. 상호교차성은 모든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여성 억압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우리에게 그 미묘한 차이들을 논의할 수 있게 해주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가장 광범위한 집단에 연관될 수 있게 해준다. 에이몬 맥칸(Eamonn McCann)2013 맑시즘 폐막식에서 [SWP의 성폭력 논란을 겨냥해서] 말했듯이, 사회주의자 조직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경험과 진지하게 관계맺고 있을 때 그 사람들에 의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의미인가?


이 논의에서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 실천에서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정도의 경험이나 지식은 없지만, 중요한 몇 가지 제안과 질문을 던지겠다일단 우리는 여성 억압에 대한 우리의 이론을 살펴보고, “여성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상호교차성의 핵심 개념을 기억하면서 이론을 확장, 심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출판물에서 억압의 구체성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억압의 지역적 쟁점들을 가지고 더 많이 조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적인 이민국 (UK Border Agency)이 런던에서 과도하게 활동 중인데, 이것에 관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겠는가? 경찰의 무단 검문과 폭력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집회 시위의 자유 지키기 행동’ (Defend the Right to Protest)이 지역에서 이용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자주 억압 문제에 관한 정치 투쟁을 작업장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노동 조합을 억압의 문제에 관한 풀뿌리 투쟁들과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내 정치적 본능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우리를 억압받는 이들의 호민관이라 불릴 수 있는 혁명 조직으로 만들어 줄 실천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말한다. 흑인 여성과 성전환자들, 레즈비언, 장애인들  더 광범위한 노동 계급의 요소들  -  이 가득찬, 분열을 뚫고 모두가 나란히 혁명적 미래를 향해 싸우는 억압받는 이들의 호민관 말이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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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예제 직후 주로 미국 남부의 백인가정에 가정부로 고용된 흑인여성들을 묘사하는 흑인여성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의 한 예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흑인유모처럼 주로 뚱뚱한 중년의 흑인여성이 항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백인주인들에게 기꺼이 봉사한다는 이미지다. - 편집자 주 [본문으로]
  2. 피억압 민중 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차별받는 집단을 일종의 특권층으로 보는 이론으로 예를 들면, 모든 백인들이 모든 흑인들에 비해 특권을 누린다는 이론이다. 한국 사회의 정규직 노동귀족론과 유사하다. - 역주 [본문으로]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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