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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이른바 ‘원시적(시초적) 축적'의 의미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2. 11.

이안 앵거스(Ian Angus)

번역: 두견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나온 이 핵심 개념은 널리 오해받아 왔다고 이안 앵거스ian angus는 말한다. 이 논쟁적인 문제에서 앵거스는 마르크스의 오류와 엄밀하지 못함을 지적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했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안 앵거스(Ian Angus)는 온라인 저널인 <기후와 자본주의:Climate & Capitalism>의 편집자로서,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에서 출판된 <인류세를 마주하며:Facing the Anthropocene>와 <녹색의 더 붉은 그늘: A Redder Shade of Green>을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이다. 그는 '지구적 생태사회주의자 네크워트'(Global Ecosocialist Network)의 창립 멤버이다. 한국에도 그의 글과 책들은 번역 소개돼 있다.

출처https://climateandcapitalism.com/2022/09/05/so-called-primitive-accumulation/

"이른바 원시적(시초적)primitive 축적"이라는 제목의 <자본> 8장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생활 수단에서 분리하고 부를 지주와 자본가의 손에 집중시키는 잔혹한 과정을 설명한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읽기 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그것은 또한 혼란과 논쟁의 지속적인 원천이다. 말 그대로 수십 개의 기사들이 "원시적 축적"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그것은 먼 과거에만 일어났는가, 아니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원시적"이 오역이었나? 이름이 바뀌어야 하나? "마르크스의 원시적 축적 이론"은 정확히 무엇인가?

공유지(공유지, 공통적인 것Commons)에 대한 전쟁에 관한 나의 앞으로 나올 책을 위해 쓰여진 이 기사에서, 나는 마르크스가 "원시적 축적"을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잘못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실제로 쓴 것을 이해하면 두 가지 필수적인 마르크스주의 개념에 빛을 비추게 된다: 착취와 강탈(수용expropriation). 이글은 초안이지, 내가 마지막으로 정리가 아니다. 여러분의 의견과 수정, 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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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620일과 27일에 칼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1인터내셔널) 회원들에게 두 부분으로 된 강의를 했다. 명확하고 직접적인 영어로 그는 노동가치 이론, 잉여가치, 계급투쟁, 그리고 자본의 잠식에 맞선 저항의 중심으로서의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거의 완성된 <자본> 1권에 나올 통찰력을 끌어냈다.

<자본>의 영어 번역본은 그의 사후까지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연설은 영어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저자로부터 직접 그 아이디어를 배워야 했던 유일한 기회였다. 노동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파는지 설명하면서 마르크스는 시장에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수사학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시장에서 조잡한 상태의 토지와 노동의 산물인 토지, 기계, 원자재 및 생활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일련의 구매자를 발견하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 일하는 팔, 두뇌 외에는 팔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련의 판매자들을 발견한다면, 한 무리는 이윤을 남기고 부유해지기 위해 계속 구매하고, 다른 무리는 생계를 위해 계속 판매해야 한다면? 어떻게 이런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것인가?”

완전한 답변은 그의 강의의 범위를 벗어났지만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조사는 경제학자들이 '앞서는, 또는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조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강탈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이른바 원시적 축적이 오로지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의미하며, 그 결과 노동하는 사람과 그의 노동의 도구 사이에 존재하는 원시적 조합의 분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 도구 사이의 분리가 일단 확립되면, 그러한 사물의 상태는 생산양식의 새롭고 근본적인 혁명이 그것을 다시 뒤집고 새로운 역사적 형태로 원래의 연합을 복원할 때까지, 그 자체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증가하는 규모로 재생산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항상 단어 사용에 매우 신중했다. 그는 축적을 강탈로 가볍게 대체하지 않았다. 이 전환은 특히 중요하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영어로 논의한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번역을 통해 걸러지지 않았다. <자본>에서, 이 주제는 나중에 영어 번역으로 "이른바 원시적 축적"이라고 번역된 독일어 "Die sogennteursprungliche Akkumulation"이라는 제목 부분의 8장을 차지한다. 다시 말하지만, 마르크스의 신중한 단어 사용은 중요하다.

그는 역사적 과정이 원시적이지 않고 축적도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른바"를 추가했다. 마르크스의 의미에 대한 혼란의 대부분은 여기저기서 그의 이런 역설적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반영한다. 첫 번째 단락에서 그는 'ursprüngliche' Akkumulation이 아담 스미스Adam Smith'이전(앞서의) 축적'을 번역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ursprüngliche(앞서의)라는 단어를 주의 환기의 인용부호에 넣어 이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어 번역에서 인용 부호가 생략되어 그의 아이러니가 사라진다.

1800년대에 ‘primitive’‘original’의 동의어였다. 예를 들어, ‘시초 감리교회Primitive Methodist Church’는 감리교의 원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가 1870년대에 편집한 프랑스판 <자본>ursprüngliche'원시적'으로 번역했다. 그것은 1887년 영어 번역으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시적 축적에 갇혀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전 축적의 개념을 아담과 이브가 먼 신화적 과거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는 기독교 교리와 비교함으로써 이른바와 주의 환기용 인용부호를 사용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전 축적의 지지자들은 동등한 동화를 말한다.

“아주 오래 전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 근면하고 지적이고 무엇보다 검소한 엘리트; 다른 하나는 자기 재산 등을 낭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게으른 악당들… 그리하여 이렇게 되었나니 전자의 부류는 부를 축적하였고, 후자의 부류는 마침내 자신의 가죽 외에는 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원죄로부터 모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신 말고는 팔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대다수의 빈곤과 오랫동안 일을 멈췄음에도 끊임없이 증가하는 소수의 부의 시작이 나온다.”

이런 천박한 유치함이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날마다 설파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역사를 생각해보면 정복, 노예화, 강도, 살인, 한마디로 무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악명 높은 사실이다.” 이른바 원시적 축적의 장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그리고 그들의 생존 수단으로부터 강제로 찢겨져 자유롭고, 보호받지 못하고, 권리 없는 프롤레타리아로서 노동 시장에 던져진" 잔인한 과정을 묘사한다.

“이 새롭게 해방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모든 생산 수단과 오래된 봉건질서들이 제공하는 모든 생존 보장을 박탈당한 후에야 스스로를 판매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역사, 그들의 강탈의 역사는 인류의 연대기에 피와 불의 글자로 기록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설명은 영국에서 노동력에 대한 탈취가 가장 완벽했기 때문에 영국에서의 강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는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대량 학살, 인도의 약탈,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 "이 목가적인 과정은 원시적 축적의 주요 순간이다."

그 문장과 그와 유사한 다른 문장들은 원시적 축적에 대한 마르크스의 일관되게 냉소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그는 원시적 축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강탈의 잔혹한 현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원시적 축적"의 개념에 반하여 논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태어나고 있던 먼 과거에만 그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아담 스미스와 다른 친자본주의 작가들이 이전 축적에서 의미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그 견해를 에덴동산 신화와 비교했다. 이른바 원시적 축적에 관한 마르크스의 장들은 자본주의가 평화적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에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폭력적인 강탈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는 1840년대와 1850년대의 아편 전쟁, 스코틀랜드 자본가들의 고지대 원주민 싹쓸이, 1866년 인도 오리사에서 100만 명을 죽인 식민지가 만들어낸 기근, 호주의 토지를 인클로져하고 사유화하려던 계획도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마르크스의 일생 동안 그리고 그가 <자본>을 집필하는 동안 일어났다. 그들 중 어느 것도 자본주의 선사 시대의 일부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첫 세기에 일어난 강탈은 파괴적이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자본은 거기에 머무를 수 없으며 궁극적인 목표는 "생산 수단에서 모든 개인들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 그는 대자본가들이 소자본가들을 몰아내고 아직 박탈할 것이 남아 있는 직접 생산자들의 최종 잔여물을 강탈하는 것에 대해 썼다. 다시 말해, 강탈은 자본주의가 성숙한 후에도 계속된다.

우리는 종종 축적이라는 단어를 뭔가를 모으거나 비축한다는 것으로 느슨하게 사용하지만, 마르크스에게는 잉여가치의 추가에 의한 자본의 증가, 즉 임금 노동의 착취에서 비롯되는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특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가 "이른바 원시적 축적"에서 설명하는 예는 모두 강도, 강탈 및 몰수를 나타낸다. - 등가 교환이 없는 별개의 강탈. 축적이 아니라 몰수.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우리는 피터 라인보우Peter Linebaugh‘X2’라고 명명한 두 가지 형태의 계급적 약탈, 즉 강탈과 착취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본다. “강탈은 착취에 앞서지만 이 둘은 상호의존적이다. 강탈은 토대를 준비할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착취를 강화한다.”

강탈은 공공연한 약탈이다. 여기에는 등가 교환이 없는 강제적 인클로져, 몰수, 노예제 및 기타 형태의 절도가 포함된다. 착취는 은폐된 절도이다. 노동자는 임금의 형태로 노동에 대한 완전한 지불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고용주는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간다.

아담 스미스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근면하고 검소한 사람들에 의한 부의 점진적인 축적으로 묘사한 것은 실제로는 착취를 위한 시초적 맥락을 만들고 그 이후로 계속 확장해 온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강탈이었다.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와 브렛 클라크(Brett Clark)<자연의 절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른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그것을 추진하는 내적인 동력과 그 경계를 설정하는 외부의 객관적 조건, 그것이 영원히 변화하고 있는 관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체제의 내부적 동력은 평등한 교환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과정에 의해 지배되는 반면, 외부적 환경과의 우선적 관계는 일종의 강탈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르크스는 "원시적 축적의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이론을 내세운 정치경제학자들이 틀렸고 그것이 자본의 실제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 고안된 "동화"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자본>8장을 할애했다.

원시적 강탈" 대한 마르크스의 선호는 단지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 표현은 직접 생산자에게서 토지를 몰수하는 것, 즉 일부에게는 사적 소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지 무소유를 수반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기초"라는 그의 견해를 포착했다.

지구와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인류가 계속 분리되는 것은 평화로운 과정이 아니며 평화로운 과정이 될 수도 없었다. 그것은 피와 불의 문자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그는 "원시적 축적"이라는 단어 앞에 "이른바"를 붙였던 것이다.

(기사 등록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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