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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5차 정치혁신 세미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11. 17.

전지윤


이번에는 5차 세미나였다. 1917년 혁명 이후 레닌주의와 당에 대한 마르셀 리브만의 글, 혁명정당과 민주주의에 대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 등을 중심으로 간략한 발제가 있었고, 발제를 바탕으로 문제제기와 토론이 진행됐다.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


(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노동조합 논쟁은 무엇이었고 ‘노동자 반대파’는 무엇을 주장한 것인가?


러시아 혁명 이후 1920년대 초에 벌어진 논쟁이었고, 러시아 노동자 국가의 국제적 고립과 내전, 산업 생산의 침체와 경제적 궁핍과 식량난이라는 조건에서 벌어진 논쟁이었다. 당시에 노동자 반대파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에 따라서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인 노동조합의 완전한 자율성과 노동자 통제 등을 주장했다. 노동자 반대파의 주요 지도자는 콜론타이와 쉴르야니코프 등이 있었다. 


반면 당시에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의 국가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협력, 노동조합 권리의 제한 등을 주장했다. 레닌은 트로츠키의 주장이 너무 과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노동자 반대파의 주장에도 비판적이었다. 전체로서 노동자 국가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자유와 권리만을 우선하는 것은 노동조합주의라는 비판이었다.


* 1917년 이후 여러 논쟁 과정에서 레닌이 ‘자유주의적’이거나 ‘우익적’인 입장에 섰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어떤 의미와 맥락인가?


크게 브레스트 - 리토프스크 조약 논쟁, 민족문제에 대한 입장, 테일러주의와 1인경영 도입에 대한 입장 때문에 이런 비판이 나왔다. 먼저 브레스트 - 리토프스크 조약에서는 사실 제국주의 국가들과 타협하지 않고 혁명전쟁을 벌이자는 입장이 가장 원칙적으로 보였다.


반면 레닌은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고 굴욕적 타협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이 위기를 피하고 혁명을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이후 독일 혁명의 발발은 레닌의 입장이 옳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민족문제에서는 레닌은 소수 민족의 자결권과 자치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민족적 분열이 아니라 계급적 단결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대한 타협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레닌이 주장한 테일러주의와 1인 경영 체제의 도입은 분명히 시장과 이윤 논리에 대한 타협으로 보였다. 


다만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고립과 극심한 경제적 침체라는 특정한 조건에서 불가피한 타협으로 이것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논쟁과 비판들은 상황의 열악함이 논쟁의 구도에 큰 제약을 가했고, 그럼에도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됐음을 보여 준다.


* 러시아는 혁명 이후에도 사회주의적 원칙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지 못했다. 이미 많은 후퇴와 형해화가 있었는데 굳이 1928년이 국가자본주의 반혁명의 기점이었다고 볼 수 있는가?


1928년을 기점으로 보는 이유는 그 시기에 바로 일국사회주의가 선언되면서 농민에 대한 강제집산화와 혁명 정책들의 결정적 후퇴가 있었고, 결국 이것이 강제수용소에 수백만 명이 수용되고, 모스크바 재판을 통해 좌익반대파를 숙청하는 것으로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조치를 통해 1917년에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숙청됐고 중앙위원에서는 오로지 스탈린만이 살아남았다. 국가와 생산에 대한 통제력이 관료 계급에게 독점되며 커다란 유혈적 테러를 수반한 이 과정을 반혁명으로 보는 것이다. ‘피의 강물이 흐르는’ 단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전부터 노동계급이 해체돼 오면서 관료들이 주도권을 쥐어왔고, 기존 국가기구의 파괴와 권력 이양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 스탈린주의와 레닌주의의 차이가 정말 근본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가?


레닌의 사상과 실천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변화해 왔다. 레닌주의의 절정기는 17년 혁명을 전후해서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레닌은 4월테제에서처럼 자신의 오류를 신속하게 교정할 줄 알았다. 또 계급의 경험과 목소리에서 배우려고 했다. 


트로츠키처럼 자신의 오랜 경쟁자이자 비판자도 서슴없이 포용하며 단결하려는 자세를 보여 줬다. 17년 혁명 이후에도 다양한 논쟁에서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며 토론하려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것은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주의는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 속에서 갈수록 후퇴했다. 사실 스탈린주의로 이어지는 몇 가지 정책과 제도는 바로 레닌의 동의 아래 지노비에프 등이 주도해서 도입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그 흔적과 잔해는 이론적인 불분명함으로도 남아있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의 고립 속에 민주주의의 제한, 강제적 조치와 적색테러나 숙청 등에 대해서 불가피한 상황의 산물로만 분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레닌주의의 절정기에 보였던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키고, 스탈린주의로 이어진 요소들을 분리해내며 불분명한 부분들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도입된 여러 가지 민주주의 제한 조치와 분파 금지, 다른 당에 대한 통제 등이 불가피했다고만 볼 수 있는가?


내전과 크론슈타트 반란으로 이어지는 엄혹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레닌은 ‘퇴각기에 대열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에는 발포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안 그러면 맨셰비키 등에게 권력이 넘어갈텐데’라는 논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조건이라는 이유로 민주주의가 제한되고 소수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면 그것이 낳을 폐해는 어떻게 방지될 수 있는가.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는 민주적으로 대중의 주도성과 자발성을 끌어내는 게 더 필요한 일 아닌가.


예컨대 스페인 내전 때 노동자 민병대는 장교도 선출했고 항상 모든 것을 민주적 토론과 투표로 결정했다. 스탈린 정부가 이런 민병대를 해체하고, 자본주의 군대식 규율을 강제한 것은 스페인 혁명의 엄혹한 상황이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었고, 혁명의 승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좌익반대파가 스탈린에 반대해서 ‘고립된 러시아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동자 민주주의와 노동계급의 주도성, 국제적 혁명에 대한 연대’라고 주장한 것도 상기할 수 있다.


* ‘다수결 원칙과 권한을 위임받은 강력한 지도부가 중요하다’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알렉스가 레닌주의 조직 원리를 이렇게 특징짓는 것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다수결 원리’는 웬만한 노동조합들도 내세운다. ‘지도부의 안이 다수결로 통과됐으니 이제 따라라’는 식을 노조 활동 속에서도 거듭 경험할 수 있다.


알렉스는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를 몇 가지로 제시한다. ‘결정 사항의 효과적 집행’, ‘투쟁의 파편화를 피하기 위하여’,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러나 경험은 이것을 논박하고 있다. ‘강력한 지도부가 다수결 결정을 내세워 충분히 동의받지 못한 정책을 밀어붙일 때’ 나타나는 효과는 결정 사항의 효과적 집행도, 투쟁의 파편화 방지도 아니었다. 게다가 교체가 불가능하고 이견을 통제하는 강력한 지도부는 ‘책임소재가 분명’하기는커녕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분파 불허’가 레닌주의라는 주장도 이상하다. 레닌의 당에서는 분파가 허용됐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분파를 허용하면 이견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형성되기보다, 분파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다양한 쟁점에서 계속 선을 긋게 될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면 영국에서 분파를 불허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격렬한 분파 투쟁과 조직 분리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고, 조직 안팎의 상황이 투명하게 공개되며, 지도부에 대한 도전과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구조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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