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대장동 게이트의 본질과 ‘불평등 OUT’을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대장동 게이트에 대해서 온갖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지만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본질과 핵심은 단순하다. 10여년 전에 누가 하나은행과 SK를 움직여서 돈줄을 대도록 했고, 누가 수원지검을 움직여서 ‘토건 하이에나’들의 뒤를 봐주었고, 누가 여기서 나온 엄청난 수익을 가져갔는지만 밝혀내면 된다.
더구나 이미 ‘50억 명단’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도 대강 드러났다. 곽상도, 전 대법관 권순일, 전 특검 박영수, 전검찰총장 김수남,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재경, 언론사주 홍모. 전관 판검사, 우파 정치인, 언론인이 모두 들어가 있는 이 명단을 보면 ‘법조기자까지 포함해서 법조4륜’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간다.
이 명단 중에서 아직 단 1명도 소환조사, 압수수색, 계좌추적도 안 받고 있는 것이 무엇을 보여주는가? 검찰은 이것을 파헤치다가 어디서 어떤 선배검사가 튀어나올지, 언론은 어디서 어떤 선배기자가 튀어나올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검찰과 언론이 모두 핵심적인 부분만 피해서 파헤치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별 근거도 없이 ‘그분=이재명’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끼어맞추고 몰아가는데 합심하고 있다. 그동안 툭하며 표적을 정해서 뭐라도 하나 나올 때까지 털고, 먼지가 안 나오면 희생양이 된 사람을 먼지로 만들어 버리던 이들이 또 이러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근거도 없이 이재명을 몸통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틀렸지만,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의 정치적 책임을 면해줄 수는 없다. 분명 문정부는 토건 하이에나들이 떼돈을 벌 수 있는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했다. 지난 5년 동안의 상황은 결과적으로 ‘빛내서 집사라는 박근혜의 말이 맞았다’는 냉소를 만들어냈다. 검언정 카르텔은 바로 그 냉소와 좌절을 기반으로 촛불 이전으로 상황을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부동산 폭등과 불평등 심화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이들이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반동을 추구하는 상황이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 실린 옥중편지에서 최서원(순실)도 “요즘 세상이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상황에 진보정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장동은 우리와 상관없는, 똑같은 놈들끼리의 진흙탕 싸움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2005년 이후 15년 동안 자산에서 실현된 양도차익, 즉 자산 기반 불로소득은 총 1375조 원이며, 전체 실현 불로소득 가운데 토지, 주택, 기타건물, 부동산으로 구성된 부동산 자산 기반 불로소득이 총 1145조 원으로 전체의 83.3%를 차지고 있다... 이차적 착취 개념을 적용하게 되면 일반 노동자와 한계 자영업자 계층, 특히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들 계층은 생산영역과 재분배 영역(생산순환과 자산순환 영역) 모두에서 이중적 부의 이전(또는 착취, 부의 탈취)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부동산 불로소득 자본주의 체제와 탈취에 바탕을 둔 축적의 특성>, 김용창)
지금 진보정치에 필요한 것은 밖에서 민주노총에 ‘쓴소리’를 하거나, '그분=이재명’이라는 프레임에 힘을 보태서, 조중동이 반가워하며 한번 더 그 목소리를 실어주면 만족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재명이나 민주당보다 더 앞장서 한국사회 기득권 체제의 핵심부인 검언정 카르텔의 문제를 지적하고 정면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들은 지금 노동운동을 공격하고 마녀사냥하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조중동은 근래 택배노조, 화물연대 마녀사냥을 계속 해 왔고, 요즘 국민의힘 대선 후보 토론은 누가 더 ‘반노조 혐오’를 잘하느냐의 경연장이 됐다. “민노총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우리나라의 ‘암’”, “긴급명령권으로 강성노조의 패악을 뿌리 뽑겠다.”
진보정치는 이 반동적인 기득권 카르텔을 정면공격하면서, 이재명의 ‘저들의 저항 때문에 민관합동 개발에 그친 것이 아쉽고, 앞으로는 100% 공공개발로 가자’는 말이 진심이라면 당장 대장동에서 민간이 거둔 초과수익을 환수하는데 앞장서라고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부동산 공공개발로는 부족하고, 독일 베를린에서처럼 주요 대기업의 부동산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현장에서 함께 힘을 모아서 그런 운동을 건설하면서, 그런 요구와 운동을 10월 20일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과 연결시켜야 한다.
지금, 민주노총은 ‘불평등 OUT, 평등사회로의 대전환’이라는 구호 아래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개정/ 일자리 국가보장/ 주택·교육·의료·돌봄·교통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며 55만 명이 참가하는 하루 파업을 건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투쟁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동참하고, 더 실질적이고 강력한 파업으로 발전하고, 더 큰 사회적 지지와 응원을 받게 될 때 기득권 카르텔의 힘은 약화되고 불평등은 해소돼 나갈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파업의 요구와 정당성을 알리고 지지와 응원을 모으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며칠 전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의 분노와 목소리를 대변해 정치검사에게 '사과하라'고 불같이 호통쳤듯이 말이다.
기득권 카르텔과 족벌언론은 단지 노조혐오와 마녀사냥만 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이들은 택배노동자와 영세 대리점주를 서로 싸우도록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취업준비 청년들을 이간질하며 ‘을들의 싸움’을 부추겨 왔다. <오징어게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느낀 서글픔은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갈라지고 서로 경쟁하게 되면 우리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은 서로를 절벽으로 밀어내는데 이용될 뿐이다. 예컨대 <오징어게임>에서 평생 유리공장에서 일해온 노동자는 어떤 유리가 강화유리인지를 눈으로만 보고 판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함께 힘을 모아 살아남는데 이용하지 못한다.
게임의 규칙을 따르면서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게임의 설계자들을 몰아내버리자는 생각은 <오징어게임> 속에서 조폭 덕수의 대사(‘총을 준비해 가서 저 놈들을 다 제거하고 우리가 돈을 빼앗자’) 속에서만 잠깐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반면에 민주노총이 준비하는 ‘총파업’은 경쟁의 논리와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고 함께 살기 위한 우리 모두의 요구와 희망을 담고 있다. 지지와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10월 20일 총파업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한다. 더 많은 분들이 민주노총 유투브 ‘구독’ 등 지지와 연대에 함께하길 기대한다.
#총파업게임 #오징어게임 #민주노총
https://www.youtube.com/watch?v=oip3ORj1o1g
10.20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1000인 1000곳 집중행동✊
📮인증샷, 피켓 내려받기 https://bit.ly/powerup1020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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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총파업응원 #1000인1000곳
●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10월 15일에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의 서울 마지막 행진 일정에 함께 했다. 제주도에서 시작해 11일 동안 전국을 일주한 행진단은 국회 앞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했고, 동시에 민주당 민형배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5월 10만 동의 청원이 이제야 결실을 맺은 것이다. 상반기에 정의당 의원들의 주도로 발의된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에 이어서 두 번째이다.
21명의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무소속 의원들이 어제 발의에 동참했다.(강민정, 김남국, 김승원, 김용민, 김홍걸, 민병덕, 민형배, 박영순, 서동용, 설훈, 소병훈, 송재호, 양경숙, 양이원영, 양정숙, 윤미향, 윤영덕, 윤재갑, 이동주, 이재정, 최강욱) 다른 법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의원이고, 더구나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쳐서 본회의 통과까지는 아직도 멀었고 첩첩산중이다.
그때까지 이번 발의를 한 21명의 용기있는 의원들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방어할 것이다.(특히 엄청난 마녀사냥에 시달리고 있는 윤미향 의원이 차별금지법에 이어서 이 법안에도 또 동참한 용기는 너무 놀랍다)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국가보안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으로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들어온 기득권 카르텔의 공격, 방해와 보복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민주당 이규민 의원의 의원직 상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규민 의원은 작년 연말에 국가보안법 7조 폐지 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사실 7조 폐지는 매우 부족하고 타협적인 안이었다. 그럼에도 그것마저 미운털이 된 것이다. 지난주에 이규민 의원은 대법원에 의해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 총선 때 선거공보물에 ‘자동차전용도로’를 ‘고속도로’로 쓴 것이 허위사실 유포라는 이유였다.
당시 다수 언론에서도 ‘고속도로’라고 혼동해 쓴 것임에도 검찰은 억지 기소를 했고, 법원은 의원직을 박탈했다. 생태탕집과 자녀 입시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도 검찰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오세훈, 박형준과 극명히 대비된다. 이규민 의원은 의원실 방을 빼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에 힘써달라는 마지막 호소 편지를 돌렸고, 족벌언론들은 ‘마지막까지 황당했다’는 식으로 이것을 보도했다.
겨우 7조 폐지를 발의한 의원까지도 이렇게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민주주의에 족쇄를 걸어놓는 게 이들의 기득권 유지에 불가결한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강력한 운동과 여론을 만들어 이 민주주의 핵심과제를 이루어야 한다. 2004년에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걸었다가 우파의 강력한 반발에 금방 꼬리를 내리며 그것이 이후에 이명박근혜 시대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됐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번에 행진을 하면서, 국가보안법과 꼭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위한 핵심 과제이면서 역시 정권 말기가 돼서야 겨우 발의가 됐고, 그 마저 기득권 카르텔의 봉쇄 속에 감감무소식인,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 30일의 도보행진'에 연대하는 인증샷도 동지들과 함께 찍었다. 올해 내로 두 법안이 꼭 통과되기를 학수고대한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폐지
#평등길1110 #평등길1110_차별금지법제정_백만보앞으로
https://equalityact1110.kr/action
● 그린뉴딜과 탈성장
최근에 그린뉴딜을 주장하는 진보경제학자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과 그린뉴딜의 한계를 지적하는 생태사회주의자 돈 피츠Don Fitz 사이에서 진행된 논쟁을 흥미롭게 읽어보게 됐다. 로버트 폴린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태양력과 풍력 등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대안에너지로 급격한 전환이 가능하고, 그것이 인류를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에서 경제성장과 기후 일자리의 확대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탄소 배출제로가 절대절명의 과제가 된 상황에서 석유, 석탄에 의존하는 기존체제와 거기서 이득을 얻으면서 에너지 전환을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의 결사적인 저항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폴린의 지적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분명히 휘발유와 경유를 태우는 내연기관차들을 대거 전기차로 교체하는 것 등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돈 피츠는 폴린의 주장의 약점과 한계를 지적하면서 시야를 확장시킨다. 피츠는 콩고의 어린이들을 전기차 배터리용 코발트 채굴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걷기 좋은 지역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과연 더 ‘생태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피츠는 배터리용 리튬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토양을 훼손하고 동식물들의 멸종이 가속화하는 경우를 보여주며 대안에너지가 과연 ‘깨끗’하기만 한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미국의 에너지 소비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전체 토지의 25~50%를 태양광, 풍력 등에 사용해야 할뿐 아니라,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갈수록 더 많은 땅과 강을 파헤쳐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대안에너지를 절대시하는 사람들이 검증돼지 않은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에 의존하는 경향도 지적한다. 예컨대 ‘대안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지금의 부수적 폐해를 줄이고 엄청난 비용 절감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은 핵발전 초기의 낙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츠는 오늘날 자본주의는 화석연료 없이 성장할 방법을 못 찾으면 멸망할 것이기에 대안에너지를 통한 성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통한 기업과 이윤의 무한성장이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대안에너지로 수단은 바뀌지만 여전히 경쟁, 성장,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자리 축소, 실업 등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저성장과 저생산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냐는 반론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지금의 성장과 생산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낮추면서도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지구환경과 후손들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냐고 되묻는다.
더불어 피츠는 경제성장이 더 나은 삶을 가져온다는 신화를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지원이 끊기고 미국의 경제봉쇄에 던져진 쿠바의 사례로 논박한다. 그 후 30년 동안 경제성장 지표상 45%나 수축됐지만, 오늘날 쿠바의 영아 사망률, 기대수명은 모두 개선돼 있고 오히려 미국보다 더 나은 수준이라는 것이다.(물론 쿠바가 모범적 대안사회일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결국 피츠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회색 자본주의냐, 대안에너지에 의존하는 녹색 자본주의냐를 넘어서서, 성장과 경쟁에 의존하며 지구를 약탈하는 체제를 유지할 것이냐 벗어날 것이냐의 문제를 고민하자고 제안하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단순히 에너지 전환만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체제 자체의 전환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지금 여기의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의 26%에서 40%로 높여 발표했다. 이에 대해 모든 곳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정의 운동진영에서는 이것이 2030년까지 50% 감축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에도 못미친다고 비판한다. 2030년까지 여전히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율이 22%에 달하고, 해외 감축 부문으로 책임을 떠넘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탄소경제와 핵발전에 의존해온 기득권 세력과 언론은 정반대 방향에서 맹공격한다. 겨우 10년만에 전기차와 태양광 설비를 지금보다 수십배나 늘리고 석탄화력발전소 대부분을 폐쇄한다는 ‘공상과학 소설’이라는 것이다. 국토의 6%를 태양광 패널로 채우고, 전력저장설비에만 1천조 원이 드는 이런 계획은 불가능하다고 난리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과 조중동같은 친자본 언론들의 논리를 보면 성장과 경쟁의 논리를 신성불가침한 고정불변의 상수로 놓고서 탄중위의 발표의 약점을 파고들며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는 매년 성장해야 하고, 에너지 소비 수준은 정해져 있다는 확고한 테두리 속에서 에너지 전환의 방법과 수준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압박 속에서 눈치를 보고 타협을 한 흔적과 결과를 탄중위의 발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지 탄중위의 타협과 부족함을 얼마나 누가 얼마나 더 세게 비판하고 압박하느냐만이 아니라, 탄소경제와 핵발전에 의존해온 기득권 세력의 논리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분쇄해 내고, 저들이 기반하고 있는 너무나 뿌리깊고 신성불가침한 성장과 경쟁의 논리를 현실과 대중적 여론 속에서 무너트려 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중차대한 과제로 남아있다.
●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와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
최근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김보화) 논문을 구해서 보고, 논문의 필자가 직접 연사로 참가한 줌토론회도 참가해서 들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조력하다가 노동자연대 지도부에게 5천만원 손배소송(일종의 ‘역고소’)을 당한 입장에서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점에서 유익하고 흥미롭고 너무 배울 것이 많은 논문과 강연이었다. 논문은 먼저 성폭력 사건이 법적 해결이라는 방향으로만 치우치면서 나타나는 역효과를 지적한다.
“성폭력이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개인들의 이익다툼으로 이해되고 법시장 안으로 소급되어가면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위험 관리의 개인화를 추동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의 치유를 산업화하고 가해자들의 보복성 역고소들을 용인하면서 법인들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탈정치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이것을 통해 수익을 얻는 세력들의 존재가 있다. “근저에는 소위 ‘성범죄 전담법인’이 있다. 이 법인들은 ‘성범죄 전담변호사’, ‘무혐의, 무죄 받아드립니다’, ‘무고 전문’, ‘미투성폭력 전문’ 등의 문구를 온/오프라인에 홍보하고) 패키지 상품과 같은 형태로 방어와 (역)고소 건수를 늘려 수임료를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법인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서 수익을 얻는다. “한 법인에서는 남자 변호사를 내세워 “억울한 가해자를 도와드립니다”라며 가해자를 유인하고, 여자 변호사를 내세워서 “피해를 구제합니다”라고 동시에 홍보하는데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성범죄 전담법인에 “돈을 갖다 바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해자 연대’가 확대되는 현실은 상당히 놀라웠다.
“(전직)경찰·검찰·판사 및 학자들, 심지어 심리상담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성폭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성범죄 전담법인들이 거두는 고수익만이 아니라, 그와 연계된 어떤 가해자 ‘정보공유 카페’는 회원이 6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과 과정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가해자와 시장화된 성범죄 전담법인, 그리고 산업화되는 전문가 그룹들은 가해자 카르텔을 구성하면서 정치적인 것으로서 성폭력은 점차 경제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는 게 논문의 분석이다.
5천만원 손배소송에 시달려왔기에, 성폭력 사건 역고소가 노리는 목적과 효과에 대한 지적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의 역고소는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자 피해자 주변인들의 지지를 끊어버리면서 피해자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최악의 경우 ‘가해자는 일상으로’, ‘피해자는 감옥으로’가게 되는 역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는 문구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또한 성폭력의 법시장화가 낳은 또 하나의 효과로서 ‘피해자화’의 모순에 대한 지적도 정확하다. 재판에 대응하면서 실제 느끼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법적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강조됨으로써... 피해자들은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되고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은 사회적 연대와 투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편 줌강연에서 연사가 날카롭게 지적한 몇 가지도 충분히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가해자의 괴물화, 병리적 범죄자화와 엄벌주의에 대한 강조가 반성과 사과보다는 가해자들의 더 극렬히 저항과 피해자에 대한 공격, 그것을 이용한 법인의 기획성 보복고소를 더욱 부추기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또 지금의 법시장화와 국가 정책의 방향이, 여성단체들이 반성폭력을 ‘사회구조적 변화를 위한 정치투쟁의 과정과 여성주의적 주체화’로 접근하도록 돕는 게 아니라, ‘여성단체를 사후처리 서비스 단체로, 사회복지 시설화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논문은 반성폭력 운동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분명히 한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와 의미의 전환 속에서 가능하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법, 국가, 가족, 사회, 주변인, 때로는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고, 이때 치유와 회복은 사회변화가 동반될 때, 연대로 확장될 때 가늠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치유는 정치적인 것이고 반성폭력운동은 정치적인 페미니즘 투쟁이다.”
그런데 사실 이 논문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고 속시원한 통쾌함을 느꼈던 부분은 아래 사례였다. 내가 도와 온 피해자에게 물었더니 자신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얼마나 문제의 해결이나 치유라는 게 가능해보이지 않고 현실이 갑갑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이런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 것인가 싶다.(^^;)
“<사례 9>인 <피해자◯I>는 9세 때 삼촌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오랫동안 힘든 시간들을 거쳤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자신의 삶을 지지해주는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믿는 뒷배가” 생겼다는 힘을 얻게 되었고, 어느 날 “돌발적”으로 엄마, 남동생과 함께 가해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엄마, 남동생이 가해자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자 <사례 9>인 <피해자◯I>는 경찰이 오더라도 “제가 성폭력을 당해서 따지러 갔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하에 가해자의 멱살을 잡고 “아구창을 계속 몇십대를 가격”하기에 이른다. 본인은 평소 어떤 폭력이든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은 “너무 해방감”이 느껴졌었다고 기억한다. 이후 가해자가 쫓아오자 “내가 이제 너를 법적으로 어떻게 못하는데 도덕적으로 널 매장시킬 수 있어. 세상은 이제 그렇게 됐고”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고 그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한국사회에 미투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이 나를 돕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성폭력에 대해 공부하고 힘이 되는 공동체들을 만나면서 “치유의 시간”을 시작하고 있었다면, 가해자를 만난 것은 “치유의 완결”이었다는 것이다.”
● 미얀마 민중의 반군부 민주항쟁은 계속된다
이 뜻 깊은 연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제안해준 <한겨레21>에 깊이 감사한다.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1006.html
“언제나처럼 오늘도 아침에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미얀마 소식을 확인하고 공감을 누르고 공유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은 계속 변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대도시에서 수많은 사람이 행진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는 2016년 서울 광화문 촛불바다를 함께 행진하던 기분이 되살아났습니다. 요즘 미얀마에선 지방 소도시와 농촌 마을에서 쿠데타군이 방화하고, 사람들을 학살하고, 납치해 고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지금, 잠시 숨을 고르며 상황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자신을 비겁하다고 자책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민들의 지지, 감시, 비판이야말로 국민통합정부와 시민방위군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결국 미얀마 시민들은 길을 찾을 것이고, 단지 쿠데타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롭고 더 나은 미얀마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2016년 촛불의 불길이 잦아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용기를 줄 것이고, 그때부터는 이제 다시 미얀마 시민들이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SaveMyanmar #save_myanmarpeople #StandwithMyanmar
#StopCoup #RejectMilitary
(기사 등록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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