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십 년을 넘게 전자산업에서 일했었던 내가 일하는 내내 고민했던 것을 요약하면 요구되는 특성을 값싸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특성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싼 재료를 선택하고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공정을 개발해서 제조 공정의 불량으로 발생되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 내가 일했던 곳에서 노동은 그런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이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재료와 약품이 선택될 때, 아무리 심각한 유해물질이라도 특성이나 비용에서 유리하다면 배제되지 않는다. 아예 유해물질이라는 사실이 고려되지도 않는다.
이런 현실은 또한 노동자들의 안전에 관한 무지로 이어진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작업장의 유해물질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폐암에 안 걸리길 기대하는 흡연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결과는 잘 알려진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목숨은 추상적인 노력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전과 목숨은 절대적으로 비용의 문제이다. 이것은 곧바로 자본의 경쟁력이고, 이윤으로 직결된다. 매 번 계산되는 구체적인 이윤량의 문제이기도 하고, 결국 누군가는 도태되는 시장에서 계속해서 생존하고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지속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윤을 거스르지 않고 안전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오늘 날의 안전은 계급투쟁의 문제이다.
안전을 위해 자본의 이윤을 얼마까지 잠식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계급세력 관계의 반영이다.
세월호의 참사의 책임을 되짚어보자. 안전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오래된 선박을 수입하고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한 증축은 누가 결정한 것인가?
규정을 어긴 화물과적과 이를 위해 평형수를 줄이는 관행은 누가 만든 것인가? 이미 여러 번 발견된 심각한 결함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실제 권한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배가 침몰해가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승객의 구출보다 선박의 보험금을 걱정했던 선원들의 어긋난 우선순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요약하면 이윤동기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고 청해진 자본의 유병언이 결정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규제완화’라는 정부 정책으로 뒷받침되었다. 전투기를 사들이는 데에는 수 조원을 쓰면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줄일 생각 뿐인 국가에 의해 결정된 ‘무능력’이 참사를 키웠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빠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한 회사의 방침을 수행해 온 직원들이다. 이들의 다른 이름은 노동자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참사에서 목숨을 잃기도 한 희생자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이 끔찍한 참사의 공범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생산과정의 주요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그들의 상태, 바로 힘의 부족이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노동자 개인들은 여러 차례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지만 전혀 현실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을 충성스런 사람과 무기력한 사람들로 대체될 뿐이었다. 그들은 사악한 결정을 충실히 집행하는 사람들로 사악함의 일부가 되었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의 힘은 현실에서 무기력하고, 무기력한 노동은 타락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다수의 필요
박근혜의 담화에서도 후안무치한 청해진 자본의 대응에서도 참혹한 현실을 바꿀 가능성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지금처럼 자본의 생존이 오락가락하는 경제위기의 시기에 운좋으면 별 일 없을 지 모를 안전 따위에 비용을 들일 자본가는 찾기 힘들 것이다. 참사의 한복판에서도 규제완화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 아니다. 아니 그 이전의 민주당 정부도 바로 이런 일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한 뜻으로 움직여왔다.
대안은 노동자의 힘이다. 자본주의 절대 가치인 이윤에 도전해서 우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노동자 개인은 이윤을 위해 꽉 짜여져 있는 구조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조직으로 단결한 노동자는 다르다. 그들은 이윤에 도전할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가 아무리 자본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들 자본은 절대 노동자 모두를 제거할 수 없다. 그들이 없다면 이윤도 없기 때문이다.
생산을 멈추는 힘은 지금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안전이 없다면 이윤도 없다는 교훈을 저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안전하게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우리의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결정들을 현실에서 수행하지 않을 수 있는 힘.
세월호 참사를 만든 것이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망치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와 나머지를 연결하고 교훈을 일반화해야 한다. 철도와 지하철의 안전이 이윤 때문에 공격받는 것을 알리고 자본과 정권이 주범임을 드러내야 한다. 바로 지하철 노조에서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포스터를 역사에 부착하며 이런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의료민영화가 이윤을 위해 건강을 위협하는 것임을 계속 알리면서 이를 실제로 저지할 투쟁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건설 현장에서 조선소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을 멈춰야한다. 몇 푼의 보상금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점, 생산을 멈춰 저들의 생명인 이윤에 타격을 받게 해야 한다.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경쟁을 완화하고 교육을 내용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힘이 더 커져야한다. 격무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법원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들이 더 나오지 않게 하려면 공무원노조의 힘이 더 커져야한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우리의 힘에 달려있다.
인류가 발전시켜 온 역량이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온전히 쓰이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걸림돌인 이윤동기를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 소수의 이윤이 아니라 다수의 필요를 위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때 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압도적으로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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