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3월 6일은 삼성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투쟁을 촉발한 故 황유미 씨의 10주기이다. 그 죽음을 기리고 의미를 되새기 위해서 10년 넘게 이 투쟁에 앞장서 온 이종란 노무사의 글을 싣는다. 앞서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333)을 다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이종란 노무사님께 감사드린다.]
올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만 24조를 전망한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수익이다. 그런데 정작 반도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수익을 누리기는커녕 직업병으로 쓰러지고 있다. 지난 1월14일에는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김기철님(32)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79번째 죽음이다.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스물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기일이 오는 3월6일이면 꼭 10년이 된다. 가슴 아프게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아직도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며 싸우고 있다. 삼성의 제대로 된 공개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배제 없고 투명한 보상을 촉구하며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500일이 넘었다.
2월28일에 국회에서 처음으로 열릴 계획이었던 ‘삼성 직업병 청문회’도 잠정 연기됐다.야당 의원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더 미뤄서는 안된다고 뜻을 모았으나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그마저도 계획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삼성 대변인이 된 듯 청문회가 ‘기업 때리기’이자, ‘야당의원들이 삼성 영업비밀에 대해 과도한 자료제출을 요구한다’며 왜곡된 비판기사를 내보내기 바쁘다. 어째서 삼성직업병 청문회가 기업 때리기인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된 지 10년이 되는 동안 처음으로 열리는 청문회이고, 농성500일이 넘도록 삼성이 외면해 왔는데,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청문회가 어째서 더 미뤄져야 하는가?
오는 3월6일 고 황유미의 10주기 기일을 맞아, 2007년 우리가 경청한 진실을 다시 들춘다.
2006년 11월, 삼성 관리자들이 속초의 집까지 찾아왔다. 백혈병이 걸려 투병중인 딸 유미에게 하얀 종이에 이름만 쓰게 하여 백지사직서를 받아갔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유미가 치료받을 수 있게 산재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3베이에서 유미와 2인 1조로 세정업무를 한 이숙영 씨도 똑같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걸렸기 때문이다. 산재신청을 요구하자 삼성관리자가 묻는다. “아버님이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세요?” “나 개인이 어떻게 삼성을 이깁니까...”
회사는 유미의 병이 개인질병이니 산재처리가 안된다며 대신 치료비를 주겠다고 했다. 치료비 8천만 원 중 해결 못한 치료비 4천만 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나중에 찾아온 삼성은 단 돈 500만원을 내밀었다. “이것밖에 없으니 이 돈으로 해결하시죠.”
2007년 3월 6일, 황유미는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결심을 한다. “유미야 내가 억울함을 풀어줄게”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삼성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는가? 진실규명에 협조했는가? 황유미 이후 더 드러난 피해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삼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몇 푼의 개별 위로금으로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삼성은 화학물질과 작업환경 정보를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노동부는 철저히 삼성 편을 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안전보건공단의 엉터리 역학조사를 거쳐 산재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 오로지 변한 게 있다면 수백 명으로 늘어난 피해자 수다.
황유미씨 사연을 접하고 2007년 11월 반올림이 만들어 진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나섰다. 제보는 수원, 기흥을 넘어 천안, 군산, 화순, 영덕, 춘천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어졌다.
“우리 딸도 스물한 살에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막내딸이 24살에 난소암에 걸렸어요.”, “삼성 기흥공장에 다닌 우리 딸 혜경이가 뇌종양에 걸렸어요”, “3라인에서 숙영이랑 같이 일했어요. 저도 암이에요. 불임피해를 본 동료도 참 많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이래요. 다발성 경화증 들어보셨나요?”
질병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비슷한 점들이 많았다. 우선 너무 젊었다. 대부분 20대, 많아봤자 30~40대 초반에 암 등에 걸렸다. 이들은 시골의 가난한 집안의 맏딸이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에 들어갔다.
삼성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엔 자랑이었으나 막상 일을 시작하니 병든 닭처럼 아팠다. 고된 노동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을 견뎌야 했다. 코피와 하혈, 두통과 비염, 피부 홍반과 탈모 같은 증상들이 나타났다. 옆 베이[작업공간] 언니는 유산을 하고, 엔지니어 선배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백혈병으로, 암으로 또 누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욱이 라인에서 매일같이 취급하는 화학물질 때문이라거나 설비에서 나오는 전자파나 방사선 때문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올림 농성이 500일이 넘어서고 있다. 2015년 10월 삼성전자가 제3자 조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를 보류시킨채,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일부 피해자에게만 2015년 12월 말까지 한시적인 개별보상으로 끝내려는 것에 맞서 시작한 농성이다.
삼성은 지금도 ‘다 해결된 문제’라고 ‘언론 플레이’를 하며 대화에 임하지 않고 있다. 농성이 시작된 이후 제3자 옴부즈만(감찰관) 제도를 골자로 하는 예방대책에 대해선 다행히 2016년 1월12일로 합의를 본 바 있으나, 현재까지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절실한 진심어린 공개 사과, 배제 없고 투명한 보상 문제는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반올림은 3월 3일 수원에서, 그리고 황유미 기일인 3월6일 저녁 7시에는 강남역 8번출구 삼성본관에서 삼성전자 산재사망노동자 79명의 추모 행사를 가진다. 방진복 행진도 진행할 예정이다.
3월6일 11시에는 삼성전자에 직업병 문제해결 촉구 1만인 서명결과도 전달할 계획이다. 토요일 광화문 촛불광장과 반올림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 서명운동이 진행중이다. (서명링크: https://docs.google.com/forms/d/1PmetRpj_hZBsAzFMtowigxaiGuU362NNSc3wtCkQySw/viewform?edit_REQUESTed=true)
10년의 외침, 500일의 기다림! 삼성은 직업병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하라. 그리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기사 등록 2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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