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불안정 이주민들: 젠더, 인종과 세계노동계급의 사회재생산 2

수잔 퍼거슨(Susan Ferguson),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이 글은 노동력과 노동계급의 사회적 재생산(또는 사회재생산)이 작업장을 넘어서서 인종과 젠더의 교차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그것이 이주노동을 통한 국제적 과정이라는 점을 구체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본과 국가가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커다란 이익을 얻고 있는지 분석하며, 인종과 젠더 문제를 통합하는 계급투쟁의 전략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마르크스주의 혁신 시도를 보여 주는 이 논문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Socialist Register>(2014)에 처음으로 실렸었다.(Precarious Migrants: Gender, Race and the Social Reproduction of a Global Working Class)

이 글의 필자중 하나인 데이비드 맥낼리는 캐나다 극좌파 조직인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주요 활동가이면서 세계 경제, 여성 억압,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을 썼다. 한국에 출판된 그의 책으로는 글로벌 슬럼프(그린비)가 있다. 번역에 수고해 준 남수경 동지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이 논문에 달린 각주들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필요한 사람은 오프라인 글을 참고하라. 글이 다소 길어서 1, 2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이것은 2편이다.] 





[1편에서 이어짐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 세계적 강탈 (dispossession)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적인 특징은 원시적 축적의 세계화이다. 무자비한 대규모 강탈 과정은 전세계 노동예비군의 규모를 그 어느때보다 더 국제적으로 만들면서 극적으로 증가시켜 왔다. 자본은 점점 더 그런 노동예비군이 있는 곳, 즉 중국과 동아시아 전체, 멕시코, 동유럽과 다른 많은 지역들로 이동했고, 동시에 강압 속에서 수 천만의 이주노동자들을 북반구로 끌여 들였다.

 

전세계 노동계급과 세계 노동예비군을 구성하는 노동계급의 구성 요소들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물론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 계급들은 그 경계가 삶과 노동의 구조 변경과 함께 이동하는 한 시대의 역동적인 형성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경향은 통계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전세계 노동계급은 신자유주의 시대 동안 적어도 3분의 2 가량(그리고 아마도 2배로) 증가해 왔는데, 노동력 판매에 삶을 의존하는 인구가1980년에 15억 내지는 20 억 명에서 오늘날 30억 명이 넘었고, 이 중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전 세계 노동예비군을 형성한다. 이것은 생산수단의 강탈과 프롤레타리아화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성에서 가장 핵심이었다.

 

물론 자본은 사람들을 토지에서 축출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출발하지는 않는다. 생산수단의 강탈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특히 토지의 공동 또는 공공소유 또는 비자본주의적 사용(예를 들면 농민에 의해)에서 자본의 요소로의 경제적 자산의 전환,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생산수단으로의 전환이 그 목표이다.

 

신자유주의는 그런 이유로 소규모 생산자들을 축출하는 수많은 사회 과정들을 극적으로 심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전세계적 프롤레타리아화를 추진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런 과정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살펴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그 일부를 항목별로 나눠 보겠다.

 

* 수출 중심의 기업형 농업, 대규모의 채광과 석유 탐사, 그리고 바이오 연료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거대 토지 임대를 포함한 토지 수용

* 농촌 생산자들의 공동체를 대체하는 산업 발달을 위한 대형 댐과 토지 인클로저

* 농업과 목초지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전체 지역의 기후 변화로 인한 이주

* 담수원을 독점화(사유화)하거나 돈벌이가 되는 환경관광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의 토지 전용

* 공용 토지의 사유화와 신자유주의적 개혁(‘자연 재해를 빌미로 한 정부의 착취를 포함해서)으로 인한 농촌 생산자들의 축출

* 내전과 무력 분쟁을 강제 이주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위의 방법들로 인해 내부에서 이동하며 자신들이 합법적으로 속한 민족국가 내에서 생산수단을 강탈 당했다. 중국에는 적어도15천만 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했고, 그들은 살고 있던 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해 살면서 주택이나 사회 서비스 혜택, 법적 권리 등에서 체계적으로 차별받고 있다. 국내 이주민들이 이주와 관련된 억압을 겪고 있는 멕시코에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만연해 있다.

 

물론 토지에서 쫒겨난 사람들이 모두 다 북반구로 가는 것은 아니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주로 이민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2000년 대 초에 이르러서는 특히 남아시아로부터 850만 명을 수입했다. ‘신흥 산업국인 나라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2010년과 2012년 단 두 해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50% 증가했고, 칠레에서는 10년 만에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3배로 증가했다.

 

멕시코의 경우 무역 자유화와 기업형 농업으로부터의 수입품으로 인해 지역 생산자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1990년대 동안만 적어도 백만 명의 소농들이 토지에서 쫒겨났다. 그런 과정들은 점점 더 시장화, 자유화되고 있는 경제가 강탈과 극심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며 계속 되고 있다.

 

토지에서 쫒겨난 농업 생산자들의 많은 수는 임노동을 찾아 마낄라도라 구역으로 이주하고 있는데, 이 국내 이주에서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멕시코 내의 저임금 수출 산업단지의 기반을 제공하는데, 다음과 같은 네가지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노동력의 여성화. 2) 비숙련 여성 노동자들이 훨씬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극단적 노동 세분화. 3) 전체적인 실질 임금의 감소. 4) 극단적인 반노조 정책.

 

인구 이동은 또한 국경을 넘는 대규모 이주를 촉발해 왔다. 그리고 국경 보호라는 공식적인 미사여구와는 반대로 미국 자본의 추동력은 2000년과 2008년 사이에 들어 온 6백만 명의 남미 이민자를 포함해 이전 보다 더 큰 규모의 저임금 노동예비군을 미국으로 끌어 들이는 것에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항상 그러하듯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양면적이다. 자본에게는 노동이 잉여가치와 이윤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노동에게는 자본이 노동계급 가정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임금의 근원인 게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각각은 서로의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다. 비록 엄청나게 불균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이지만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회재생산의 많은 부분이 생산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 진다. 그리고 종종 국경 간 이동이 결합된 지정학적 분리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다음 장에서 논의하듯이, 그 결과는 실제 취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보다 비용이 훨씬 더 낮은 곳에서 노동력 재생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 가정의 공간적인 재정립에 있어서 국경을 넘는 임금 송금액이 중요한 중심적 구실을 한다.

 

2012년 이전 10년 동안 임금 송금은 전세계적으로 세배가 늘면서 공식 기록상의 송금액만으로도 53백억 달러에 육박했는데, 이는 세계 원조 예산의 3배 이상이다.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니카라과, 요르단, 예멘 그리고 에리트레아 같은 나라에서는 송금된 임금 덕분에 국민총생산이 1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게다가 송금 부담은 성별과 신분에 따라 다르다. 보통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자기 임금의 더 많은 비율을 고국에 보내고, 임시 이주노동자들이 영구체류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비율을 보낸다


멕시코의 경우 이와 관련된 액수가 두드러진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미국에 있는 멕시코 노동자들이 고국에 보내는 송금액이 21세기 첫 8년 동안 연간 75억 달러에서 280억 달러로 거의 4배가 늘었다. 그 금액은 멕시코 GDP의 거의 3퍼센트에 해당한다. 노동자들의 국경 이동과 그들의 임금이 송금을 통해 역이동하는 것은 자본에게는 이중으로 이익이 된다.

 

첫째,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 현장에 임시의 비교적 싼 이주노동을 가져다 줌으로써, 그리고 두번째는 생활비가 낮고 미국과 캐나다의 자본이 공공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 멕시코에서 노동자들을 재생산하고 다음 세대 노동력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자본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 덧붙여 이 노동과 임금의 왔다갔다 흐름은 젠더, 아동기, 친족 관계 그리고 사회재생산의 관계들을 재구성한다.

 


초국가적 가정: 젠더와 계급의 새로운 구성

 

지금까지 우리는 ‘1사회재생산이라 불릴 수 있는 것, 즉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물학적이고 일상적인 재생산에 대해서만 논의해 왔다. 이 장에서 우리는 북미의 임시 노동력의 사회 조직에서 현저하게 중요한 두 부문인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이주자 가사노동과 농업 임노동에 대해 촛점을 맞춘다.

 

이 노동자들의 생존 전략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적 노동예비군을 뒷받침하는 숨겨진 실제적인 활동들과 관계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본, 노동, 그리고 임금 이 세가지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의 동역학이 아주 실제적인 사회관계와 연관돼 있다는 걸 상기 시켜 준다. 그 사회관계는 자본 축적의 동력이 지속적으로 한계를 설정하고 있는 세상에서 (임금노동과 무보수 노동을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관계이다.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강요되는 재생산의 형태들이 어떻게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시스템에 의존하고 또 그것을 재생산하고 있는지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있다.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렌즈를 살짝 돌려서, 이주노동자들의 (복잡하게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생존 전략들이 계급의 세계적 사회재생산에서 어떻게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1차 사회재생산, 특히 초국적 가정들의 탄생을 임노동의 재생산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이론화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관계들이 생산 현장과 사회재생산의 영역을 날카롭게 분리시키는 다양한 형식들을 조명한다.

 

이러한 공간적인 재조정은 이민과 국경을 통제하는 서열화된 국민국가들로 나뉘어진 사회 안에서 그리고 그 사회를 통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의 노동계급이 젠더화된 관계들, 인종화된 관계들 안에서 또 그 관계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또한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전 세계적 강탈과 축적의 동역학을 통해 재생산 되는 방식을 밝힐 수 있게 한다. , 전 세계적 사회재생산의 전망은 젠더와 인종의 관계가 그 안에서 복잡하게 작동하는 사회 전체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급에 대한 이해를 용이하게 한다.

 

이주 노동자들의 초국적 가족과 네트워크,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지원하는 국가 정책들은 또한 사회재생산 비용을 극적으로 줄이는 것을 제도화 한다. 북미의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들이 과거에 진행한 재생산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실제로 비용이 안드는노동력 풀을 정기적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은 국가의 재원과 서비스에 대한 이용을 금지당하거나 제한받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을 받아 들이는 국가들은 또한 이주노동력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생산에 대해서도 거의 비용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자원 이용의 혜택을 가장 적게 받으면서 그리고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사용주의 부당행위에 가장 쉽게 노출이 되는 미등록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비용이 안드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합법 이주자들 또한, 특히 계절제 임시 노동자 프로그램에 적용 되는 사람들도 공공서비스를 불평등하고 제한적으로만 이용한다.

 

그들은 일반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농업 같은 산업에 주로 고용되어 있으면서 보통 초과 근무, 노조 조직화 그리고 유급휴가 같은 기본적인 노동법 기준의 보호도 받지 못하면서 상당한 의료비를 써야 하기 쉽다. 가사 노동자들은 최근에 노동기준을 향상 시키는데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별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하며 극도의 개인화된 노동 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에 대한 침해가 흔히 벌어진다. 게다가 모든 이주민들은 이런 사회재생산의 조건들에 도전하게 될때 그들의 이동성, 이류 시민의 자격과 계약서에 정해진 이동의 부자유 때문에 별 다른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제한들은 이주민들이 내국인들과 사회-공간적으로 분리된 것을 영구화하며 1차 사회재생산의 전반적인 수준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비좁은 주거 공간[미국에 살고 있는 라티노 가정의 일인당 평균 공간은 350스퀘어피트(9.84)인데 이는 빈곤선 이하에 사는 미국의 평균 가정보다 80스퀘어피트(2.25) 더 작다], 형편 없는 학교와 의료, 작업장에서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보호 결핍은 모두 더 저렴한 새 기준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의 지위와 가치가 대중적으로 평가절하될 뿐 아니라 이 새로 낮춰진 기준은 내국인 노동자들이 임금과 후생복지에서 무언가를 요구할 때 경쟁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의 수준 이하의 사회재생산 조건들은 동시에 인종주의에 기반한 값싼 노동력 체제를 합리화하고 제도화한다.

 

이것은 이주민들이 받는 1세계임금이 비록 최저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물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가족들은 분리가 초래하는 정서적, 사회적 희생으로 인해 크게 고통을 받고 있다.

 

임신을 하거나 또는 부양가족이 있으면 이민을 불허 하거나 또는 어렵게 만드는 정책들에 대해서 이주민들은 복잡한 초국적 생존 전략으로 대응해 왔다. 한편으로는, 초국적 가정들과 공동체 네트워크들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사회-물질적 그리고 정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안된 창의적인 국경을 교차하는생존 전략들을 대표한다.

 

초국적 가족들과 다른 국경을 교차하는활동들과 기관들은 이주민들이 자본주의적 야만과 젠더화되고 인종화된 관계들에 저항하거나 헤쳐 나가기에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미래의 노동계급을 사회적으로 값싸게 재생산하는 것을 영원히 지속되게 하는 중심적 메카니즘을 형성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노동자들의 재생산과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재생산으로 나눠지는데, 이 임금으로 유지되는 초국적 가족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작동에 깊히 연관돼 있다. 특히 선진 자본주의에서 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가는 송금은 (노동력을) 이주해 보내는 나라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깊이 새겨 진다.

 

예를 들면 2005년에 해외에서 멕시코로의 송금은 외국인 직접투자 순 총액의 16.7 퍼센트를 차지했고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해 오고 있다. 송금된 임금은 주로 개인 소비로 쓰여지기 때문에 현지의 생활 수준을 높히고 경제를 지탱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멕시코 정부는 이주자들이 보낸 송금액의 일정량을 공동체의 사회기반시설같은, 원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사회재생산 서비스에 보탤 것을 독려한다. 따라서 공공 투자 또한 신장시킨다.

 

남반구의 많은 국가들이 노동력 수출을 독려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술 교육과 노동자 모집 비용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예를 들면, 2006년에 필리핀은 이주 가사노동자들을 전문화하고 그들의 취약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사 서비스노동자 정책(Household Service Workers policy - HSWP)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노동자 모집과 파견 과정들을 규제하고 또한 잠재적 이주자들을 위한 국가 평가, 교육과 능력 향상 훈련 프로그램 (가정생활기술 승인과 문화, 언어 훈련을 포함한)을 만들어냈다. 해외 채용과 현지 노동력 파견에 대한 이와 비슷한 국가 지원정책들은 카리브해 국가들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이주노동자들을 받아 들이는 나라들이 자국의 노동 시장에 들어 오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문화적으로 준비시키는데 드는 핵심적 사회재생산 비용을 줄여주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내보내는 나라들이 더욱더 자신들의 발전전략으로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투자에 매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한계들은 분명하다. 먼저, 노동력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자기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투자해서 일군 잠재적인 생산 자원을 실질적으로 잃는다. 게다가, 노동력을 내보내는 나라들은 대개 상품 수출 시장에 아주 많이 의존하면서 국제적 세력들의 뜻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적 세력들은 자유무역협정, IMF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정책들의 조건들을 조정하는 자본주의가 더 발달한 나라들, 그리고 제한적인 이민과 국경 통제 체제를 시행하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노동수출 국가들로의 외국자본 유입이 불안정 노동력의 지속적인 재생산은 방해하지 않으면서, 이주의 불안정성을 강화하도록 조장한다.

 

예컨대, 멕시코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은 사회경제적 발전을 다양화하는 구실을 하기 보다는, 국외 이주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다른 나라에서 신분 보장없이 일하는 것이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더 나아 보이게 만든다. 마낄라도라 산업지구의 사회적, 법적 권리들을 제한하면서 차별화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조성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내보내는 나라들은 값싼 노동력 수출과 연관된 발전 전략을 추구하면서, 자국 국민의 이주를 용이하게 하고 세계자본주의 경제에서 그들의 종속적인 위치를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을 받아 들이는 나라들의 국내 가정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초국적 가정에서 자녀들은 대체로 전세계 노동예비군의 대열에 합류할 운명에 처한다. 재조정된 생존 전략들은 (예를 들면 초국적 가정과 여러 네트워크들) 따라서 현재의 불안정 노동력뿐 아니라 미래의 불안정 노동력까지 비교적 저렴하게 사회재생산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메카니즘이다.

 

저하된 생활 환경과 값싼 사회재생산의 제도화로 전환된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단기노역 이민 체제를 이전 시기의 이민 정책, 즉 이민이 보통 완전한 시민권 획득과 현지인과의 동화로 이어졌던 시기와 비교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1910년 대와 1920년 대에는 미국의 정부와 공동체 자원들이, 이주여성들에게 아이 양육과 가사 노동에서 있어 미국식 가치와 윤리를 습득할 수 있는 생활기술을 가르치는데 쓰였다. 미국 시민의 표준(매우 인종화, 젠더화 그리고 계급 차등화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정부와 직장의 사회재생산 지원에서 이민자와 본국인들을 법적으로 차별하지는 않았다)에 걸맞는 이민 노동력을 발전시키는데 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목표는 내국인 노동력과 차별되는 임시 이주노동력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데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장기적인 기대치는 너무 수준 이하로 떨어져서 그들은 종종 일회적 소모품으로 여겨진다. 노동자들의 일회성은 사회재생산의 시행과 방식에 있어서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을 합리화하고 조장한다.

 

우리가 서술했듯이 이런 전환은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며, 이주민에게는 생물학적 재생산의 저지, 좌절, 또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타국에서 진행하도록 고안된 정책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많은 이주여성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까를 배우기보다는, 이주로 인해 재생산의 권리를 부정 당하거나, 또는 많은 마낄라도라 공장의 경우처럼 고용주들이 직접 피임약을 권하고 있다.

 

소모적인 일회용이라는 개념은 작업장에서 임노동의 가치가 저하되는 것 못지 않게 사회재생산의 가사노동 가치가 저하 되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노동력을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본성의 다양한 지점들을 강조한다.

 

외국인의 노동은 원하지만 그것이 체화된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재의 임시계약노예 체제가 다루어야 할 근본적인 모순이다. 그렇게 하면서 깊이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제도, 행위와 이데올로기들을 강화한다.

 

자본은 작동하기 위해 단순히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이 더 절박하고 초초하고 불안할수록, ‘간신히 연명하는 삶에 더 가까워 보일수록 더 착취하기가 쉽다.

 

, ‘사회적 과정은 비천한 계급이... 노동력을 팔아야 할 뿐 아니라... 낮은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열등한 외피를 가졌기 때문에 착취당하게 되는 대상으로 [만든다]’. 실제로 여성의 열등한 외피는 마낄라도라가 중심적인 전략으로서 일회성에 의존하는데 결정적이다.

 

여성노동자들의 높은 이직률은 여성들이 직업에 관심이 없고 충성심이 결여 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그것은 바로 여성들에게 기술교육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해고를 정당화 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들을 주기적으로 성희롱하고 그들의 재생산 사이클을 감시할 것이다.

 

마낄라도라의 멕시코 여성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과 유용한 가치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형성된 존재라고 멜리사 라이트는 말한다. ‘여성노동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재적 가치가 더 커지는 게 아닌 그저 임시 노동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임시 고용된 영구적 노동력을 (대표한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 저하는 여성들을 더 폭력적인 형태의 억압에 처할 위험으로 몰아간다. 1993년 이후 치와와 주 자유무역 지구의 후아레스 시에서 적어도 1400명의 소녀들과 여성들이 살해(종종 강간당한 다음에 신체가 훼손된 채)당했다. 희생자들 중 다수는 공장에서 한밤중에 퇴근하거나 출근하는 길이었다. 후아레즈 시는 또한 가정폭력 비율이 멕시코에서 가장 높다.

 

1990년 초 마낄라도라 산업단지가 개발되기 전에는 도시에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정책에 따라 정부가 서비스를 중단하자 정부군과 경쟁하는 마약 카르텔이 그 지역의 치안을 담당할 만큼 강력해졌다. 동시에 많은 대부분 미혼인 젊은 여성들이 임노동자가 되어 거기에 따라오는 부분적인 경제적, 성적인 힘과 독립을 얻으면서 젠더 관계가 재조정 되었다.

 

이러한 기존 젠더 기준의 변화는 많은 경우 남성들의 불안함을 가중시키면서 극도의 마초적 문화 형성에 기여했는데, 그 속에서 마약 거래와 함께 성매매가 번창하고 여성노동자들이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가치와 (소모적인 노동자로서) 사회적 가치절하 사이의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다.

 

분명히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다 이처럼 여성살해의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사회재생산의 공간적인 재조정과 악화된 상황이 그들 모두를 젠더와 인종에 기반한 열등한 외피를 가지게 한다. 오래 지속된 지배 형태를 통해 재생산된 그들의 비천한 지위는 이같은 상황을 영구화하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이주민들은 수준이하의 임금, 노동과 삶의 조건들에 대한 문화적 가치저하를 겪게된다. 하지만 그것이 자본 팽창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멸시와 두려움의 대상, ‘내국인의 윤리와 일자리에 대한 위협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사회재생산 이론과 페미니스트적 접근은 이러한 비인간화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력의 양면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화를 더 넓히고 역사적으로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으로서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것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자체의) 메카니즘이 없다.

 

노동력 상품은 단순 재생산 이상의, 욕구가 있고 감정이 있는 (지정학적, 생체학적으로 구분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사회적으로만 재생산된다. 국가는 물론 자본의 노동력 필요를 맞추는데 도움과 지원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지만, 축적 드라이브는 실제 사람들의 (많은 비용이 드는) 휴머니티와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간 삶의 필요를 과잉으로 여기며 부정하고, 대신에 간신히 부지하는 목숨만을 강요하는 계속적인 압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노동력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자본주의의 드라이브는 지금 세대의 노동자들을 보충하고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을 이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젠더화되고 인종화한 관계에 의존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주 정의와 노동계급 정치

 

노동계급을 구조가 아닌 형성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일정정도 계급 관계의 형성과 노동자들 자신들의 경험에서 비롯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장했듯이 이런 관계들과 경험들은 다면적이며, 또한 동시에 이 사회에서는 시장 의존성과 자본 축적에 기반한 결정적인 사회적 논리에 좌우된다.

 

노동계급 형성의 구성요소인 젠더와 인종 구분의 구조적인 패턴을 그 처음 시작부터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젠더와 인종 정의를 위한 운동이 계급투쟁에서 중심적인 특징이 되는 방식들을 밝힐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투쟁들은 일면적이 아니다. 그 투쟁들이 얼마만큼 계급적 특징을 보여주던 간에 그런 투쟁들은 또한 흔히 기존의 젠더, 인종 그리고 성적인 질서에 대한 도전을 표현한다.

 

우리가 수억 명의 노동계급 가족들의 재생산에서 노동이주가 중심적이 되어 왔고, 그리고 그들의 삶의 유지가 임금 송금에 의존하고 있는 복잡한 패턴을 정확하게 서술할 것을 주장해 온 것은 바로 이런 정신에 입각해서이다. 노동과 임금 체제는 항상 투쟁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 이런 투쟁들은 거의 항상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정치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기 때문에 이것은 오늘날 의미있는 노동계급 정치를 위해서는 이주 정의 문제가 전략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미국의 티파티 또는 캐나다의 우익 세력들처럼 국제적으로 우익을 집결시키는데 반이민자 정치가 최우선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특히 이것은 더욱 중요하다. ‘국내 출생노동계급 유권자의 상당수가 이런 정치에 끌리고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순진한 일이다.

 

이것은 노조 지도자들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완전한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우기 보다는, 특히 북미에서 너무 자주 자국보호주의로 회귀하고 있는데 일부분 책임이 있다. ‘우리저들’, ‘내국인외국인이라는 개념들은 민족국가에 관한 이데올로기들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진정한 노동계급 정치는 이런 부르주아적 상식에 따른 구분법에 반대해야 한다.

 

인종과 젠더 정의가 이주권을 방어하는 것을 좌우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좌우한다. 캐나다의 언론들이 이주노동자들이 캐나다 출생 노동자들로부터 일자리를 뺏어간다며 공분을 일으켰을때 한 통찰력 있는 분석가는 이렇게 관찰했다. 연대를 위해 필요한 도전은 권리와 신분에 대한 인종주의적 구분을 없애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완전히 뒤집는요구들, 즉 입국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요구를 내거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이주민들의 신분을 정상화또는 합법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든 노동자들의 평등을 주장함으로써 우리저들이라는 인종화된 담론에 분명하게 반대한다. 공공 분야에서의 이주 정의를 위한 투쟁이 중요한만큼 점점 더 반격을 가하고 있는 현장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투쟁도 중요하다.

 

2006년 미국에서 벌어진 수 백만의 이주노동자들의 메이데이 파업이 그런 투쟁의 가장 돋보이는 징후였다면 그게 다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의 건축노동자들, 목수, 건물 관리인들의 캠페인과 파업은 엄청나게 중요했고, 미시시피 주에서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시그널 인터내셔널 사에서 벌인 연좌 농성, 그리고 같은 주의 농업노동자 조직캠페인 등이 있었다.

 

또한 뉴욕, 캘리포니아, 하와이에서 가사노동자 권리장전을 채택하게 이끈 미국의 전국 가사노동자 연합(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사노동자들의 다국적 이동에 발맞춰 국제 가사노동자 네트워크가 아르헨티나, 브라질, 자메이카, 우루과이, 콜롬비아에서 중요한 전국조직을 건설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은 또한 2008~2009년 금융위기로 시작된 국제적 슬럼프의 시기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9년 파리에서는 쌍 빠삐에’(san papier: 체류증이 없다는 뜻 - 역자 주)라 불리는 6000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열달 동안의 파업과 점거를 통해 5년 거주 후에 완전한 법적 권리를 보장 받는 것을 쟁취했다.

 

그리고 20133월 이탈리아에서 대부분 이민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수천 명의 창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서 불법신분증을 사용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노동허가를 얻었다. 마르크스는 1866년의 저작에서 노동운동의 바로 이런 책임에 대해 예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조는 노동계급의 중심적 조직으로서 지금 반드시 노동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폭넓은 이해를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들을 노동계급 전체의 대표이자 지도자로 여기고 행동하면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을] 그들 수중으로 끌어 들여야만 한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신중하게 보살펴야만 한다.... 그들의 노력이, 편협하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수백 만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음을 전 세계에 확신시켜야만 한다.

 

노동계급의 사회재생산이 점점 더 새로운 패턴의 젠더화된 노동, 억압적인 국경 체제와 인종차별화된 이주의 범죄화’(crimigration) 정책과 맞물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진정한 급진적 노동계급 정치는 반드시 모든 노동자 부문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에 맞서야만 한다. 이것은 사회재생산 향상을 위한 모든 투쟁을 옹호하며 싸우는 노동계급 운동을 발전시켜야 함을 뜻한다.

 

그것은 주택, 폭력 경찰 문제, 육아, 학교 등을 둘러싼 공동체와 지역에 기반한 노동계급 투쟁이 작업장의 쟁점들을 중심으로 한 투쟁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함을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만큼 비조직 노동자와 실업자들의 투쟁도 지지해야 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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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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