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브렛 (Matthew Brett)
번역: 박상우
이 글은 캐나다의 사회주의 조직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지도적 활동가인 앨런 시어즈(Alan Sears)의 책 “새로운 좌파: 미래의 역사” (The Next New Left: A History of the Future[Fernwood Publishing, 2013] - 이하 <새로운 좌파>)를 서평한 글이다. 비록 이 책이 아직 이 나라에 출판되진 않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요약소개한 것이기도 한 이 서평이 좌파 정치와 운동의 새로운 혁신에 대한 고민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번역 소개한다. 수고롭게 번역해 준 박상우, 꼼꼼하게 교정 봐 준 남수경 동지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글의 원문은 http://newsocialist.org/788-building-an-infrastructure-of-dissent를 보라.
캐나다에서의 노동 운동은 사민주의적이고 전투성이 부족하며, 급진적인 조직은 소규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앨런 시어즈가 <새로운 좌파>에서 주장하듯이, 급진좌파는 이제 너무 약해져서, 실천적 운동이나 대중적 논쟁에 미치는 영향도 지극히 미미하다. 이런 주장은 퀘백주 대학생 파업과 송유관 저지투쟁 같은 주요 사례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현재 좌파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어쩌다 좌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새로운 좌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질문들이다. 시어즈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저항을 위한 토대 (the infrastructure of dissent) 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항을 위한 토대”란, 이를 통해 활동가들이 함께 학습하고, 소통하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정치적 공동체를 발달시킬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저항을 위한 새로운 토대는 대불황의 시기에 출현하고 있으며, 이렇게 떠오르고 있는 운동은 역사로부터 몇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시어즈는 현재 상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대중 봉기의 주요했던 두 시기, 즉 1930~40년대의 전투적 노동자 투쟁과 1960~70년대의 ‘뉴 레프트’를 살펴본다. 그는 다소 학술적이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항을 위한 새로운 토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적 계획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시어즈의 책에 정치적인 전망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좌파는 ‘최고로 잘 짜여진 5개년 계획’을 가지고도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무언가를 위한 씨앗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이다. 시어즈는 이와 같이 좀 더 제한된 과제를 우리가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역사에 기반한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을 알려준다.
시어즈의 관점은 그의 수십 년 간의 실천과 전투적 풀뿌리운동에 대한 연구에 기반해 있다. 그는 토론토의 라이어슨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며, 오랫동안 성소수자 사회주의 활동가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토론토의 ‘뉴 소셜리스트’ 회원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그는 그의 학문적인 연구와 실천 활동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공헌은 대중적 저항의 시기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 것이다.
2012년 캐나다 퀘벡 학생 투쟁
전투적 노동운동의 전성기
시어즈는 독자들을 1940년대의 온타리오 주 윈저 시 (市)의 중심가인 드루일라드 가 (街)로 인도해서 당시 좌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드루일라드 가 (街)는 1945년 포드 자동차 파업기간 동안 투쟁의 중심부였다. 이 파업으로 노동자들은 “향후 20년이 넘게 캐나다에서 단체협약 교섭의 패턴이 된” 권리들을 획득하였다.
동조 파업과 봉쇄 등이 전투적으로 조직되었다. 피켓 라인을 돌파하려는 경찰의 시도는 물리적으로 저지되었고, 버스와 트럭이 동원된 교통 봉쇄로 주요 교통로가 차단되었다. 이에 저항하는 운전자들의 차는 압류되었다.
이 조직화의 핵심은 직장의 평조합원대표들(shop stewards)로부터 시작되었다. 지역 공동체의 파업 지지도 널리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파업 참가자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하며 그들을 지탱시켰다. 몇몇 지역의 사업체들 역시 도움을 주었다.
시어즈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작업장 뿐 아니라, 가정과 지역 공동체가 조직화된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인종과 젠더의 역학 관계도 살펴보았다. 작업장과 지역 공동체를 연계하면서 노동자들의 주거 지역이 역동적으로 정치화된 것이 그 당시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극장, 서점, 출판물, 합창단, 교육, 스포츠와 언어 교육 모두 이러한 저항을 위한 토대를 구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와 같이 장기적이고 어려운 파업에서는 퍼레이드, 지역 축제, 문화 행사, 레크레이션과 같은 힘든 시기에도 긍정적으로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행사들이 필요했다.
시어즈의 급진적 역사 탐구로부터 몇가지 일반적인 교훈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는 대단히 중요하며, 지역공동체 조직화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와 지역공동체에서의 문화 행사와 교육 또한 투쟁의 문화를 건설하는데 기여한다. 실제로, 오늘날의 운동이 1940년대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오늘날 전혀 실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좌파가 얼마나 추락하였는지 - 절대 1940년대와 같은 규모는 아니다 - 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수준의 조직화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시어즈의 책 전체에 걸쳐 은연 중에 나와 있지만, 핵심 교훈들을 명백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즈는 1940년대의 승리와 “순식간”에 붕괴한1950년대 좌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이탈리아 맑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인용해서 전후(postwar) 합의는 1930년대의 급진성을 없애고 더딘 개혁을 선택한 헤게모니의 한 형태였다고 주장한다.
복지 국가는 안보, “저쪽 편”에 대한 공포, 강력한 개념의 시민권, 매카시즘과 노골적 탄압, 교외에서의 개인적인 유토피아, 자동차, 그리고 생산과 노동 계급의 소비가 주도면밀하게 연결된 “소비자 공화국” 등에 강조점을 두면서 출현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자동화, 랜드 포뮬러(Rand Formula: 노조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조합비를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에서 비롯된 노동 조합비 자동 납부, 작업장에서의 투쟁보다는 노사 불만처리 절차를 강조하는 것을 통한 작업장에서의 평화 협정과 결합되었다.
1940년대의 대중적 반란과 봉기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 – 즉, 협조적이고 관료적인 노조 지도부가 노조원들을 팔아 먹은 – 이 무엇이었나를 분석하는 것은 또한 현재와 미래의 조직화 노력에 깃든 위험 요소들을 의식하게 해준다. 좌파들에게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지속적인 고민꺼리이지만, 시어즈는 각각의 역사적 시기에 고유한 도전 과제가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한다.
시어즈는 또한 꾸준히 실천과 저술 영역 모두에서 다원적 좌파를 발전시킬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한가지 선호하는 이데올로기 성향에 기대기 보다는 아나키스트, 맑시스트, 여성주의 출처 모두에서 폭넓게 인용한다. 그는 분열을 연결하고, 공통점을 찾으려고 한다.
이는 급진적 좌파가 파편화되고 쇠약한 시기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이런 시기에 종파주의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함께 일하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다원적 좌파를 구성하는 일은 가능하다.
새로운 좌파의 형성
시어즈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신좌파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그 전 투쟁의 시기에 세워진 경향과 조직들의 범위 내에서 기인하였다는 흥미로운 점을 이야기한다. ‘민주 사회를 위한 학생들’[1960년대 미국 신좌파 조직], 주요 여성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 경향, 그리고 여타 조직들은 모두 저항의 역사적 토대와 분명한 연계를 이루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형성된 반제국주의 감성, 1968년 학생 투쟁, 마틴 루터 킹 암살 후에 확산된 저항, 프라하의 봄과 전체주의 국가에 맞선 저항, 여성주의와 성소수자 해방, 퀘벡에서의 독립 운동과 토착 원주민 운동은 모두 대중 봉기의 새로운 흐름에 기여하였다. 캐나다에서 투쟁의 절정은 1972년 퀘백 총파업 이었다.
구좌파와 연계되어 있었지만, 이 신좌파는 주요한 측면에서 구분되는 특징을 보였다. 냉전의 종식으로 더 전세계적인 개념을 가질 수 있었고, 성소수자 공동체나, 유색 인종, 토착원주민 조직자들, 여성, 청년 등을 포함한 “전후 합의로부터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배제된 사람들”이 운동을 이끌었다. 성 해방, 전지구적 정의(justice), 반식민지주의, 흑인 해방, 생태 그리고 반억압이 새로운 우선순위가 되었다.
슬프게도,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의 맹공격은 이러한 대중 봉기의 흐름에 종말을 가져왔다. 1970년대 이후의 변화는 사실상 새로운 좌파의 저항을 위한 토대를 쓸어내버렸다. 다가올 새로운 좌파는 과거의 파편 위에서 다시 건설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의 좌파와는 현저하게 다를 것”이다. 시어즈는 이러한 불연속성이 “20세기의 그 어느 시기 때보다도 더 클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다가올 새로운 좌파를 향하여
‘긴축의 시대’는 좌파에게 독특한 도전 과제를 던진다. 청년들은 빚에 허덕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2007년 이래로 ‘점거하라’(Occupy) 운동으로부터 ‘Idle No More’(캐나다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된 풀뿌리 운동)와 퀘벡 학생 파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풀뿌리 투쟁에서 청년들이 주요 역할을 해온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시어즈는 최근의 투쟁들이 다음의 것들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즉, 운동 내부에서의 민주주의, 대담한 전술과 전망, 여성주의, 반인종차별주의, 성소수자 해방, 원주민 및 반식민지 운동과 사고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인 해방 정치’의 필요성.
시어즈의 ‘저항을 위한 토대’라는 개념은, 그 풍부한 어감과 함께, 좌파에게 유용한 기여를 한다. 이 개념은 사람들이 좌파가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부터 왔고, 그 한계와 전망이 어떠한지 찬찬히 살펴보게 해준다.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하지만 저항의 새로운 토대를 건설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다지 대담한 발상인 것은 아니다. 미래를 향한 어떠한 전략이나 전망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어즈의 글이 현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문화를 수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역사적 투쟁과 좌파가 현재 처한 환경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이 책이 제시하는 역사적이고 조직적인 의미들은 좌파 운동 건설에 관심이 있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즈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고 있고 이는 그의 글에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더 광범위한 다수 대중에게 다가 가면서도 자신들의 전투적 열망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하며 결론을 맺는다. 2012년의 퀘벡 학생 파업은 이 두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역사적 약속과 잠재적 위험은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신중한 방안과 안내를 제시해준다.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 ‘변혁재장전’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변혁 재장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이론의 혁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아래로부터 사회변혁'이 그토록 중요한가 (0) | 2015.09.25 |
---|---|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적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가 (0) | 2015.09.24 |
민주집중주의 조직에서 토론의 역할 (0) | 2015.06.11 |
우리 모두가 불안정 노동자다 (0) | 2015.05.24 |
불안정 노동, ‘압박’ 그리고 투쟁의 ‘도약’ (0) | 201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