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정세 평가와 전망, 과제
전지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연구> 2014년 겨울호에 실린 글의 각주와 참고문헌을 생략하고 일부 축약한 것이다. 부족한 글을 실어주고, 또 이 블로그에 올리도록 허락해 준 <마르크스주의 연구>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이 글의 초고를 읽고 여러 유익하고 귀중한 지적과 논평을 해 준 주변 동지들과 익명의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이 글은 지난 9월에 씌어져서 10월초에 투고된 글이므로 그후 상황 변화는 반영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과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너를 잃고 가슴에 비수가 꽂히고서야 엄마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가보다. 네가 엄마 곁에 보내준 참 착한 사람들에서 너를 닮은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있단다. 사랑하는 성호야, 너만큼 엄마가 착하지는 않지만 너 닮은 착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도 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 세월호 희생자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120일이라는 시간동안 전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날마다 엄마 몰래 눈물을 훔치며 잠이 들었습니다. … 경찰들은 보상이 아닌 진실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우리 친구들의 가족을 폭행하기까지 합니다. 18살인 저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미친 것 같습니다.
- 세월호 생존 학생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소설가 박민규
2014년은 여러모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우리의 지배자들이 얼마나 짐승같은 자들인지를 보여 줬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위의 인용문들이 보여주듯이 이 참사는 우리가 살고있는 체제의 광기를 보여 줬다.
이 체제는 일종의 “내릴 수 없는 배”이며 우리는 그 결정권과 통제력을 빼앗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배’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변혁하기 위해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2014년을 돌아보며 앞으로를 조망하고 투쟁의 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경제적 불안정과 지정학적 갈등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등이 ‘뉴 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표준이자 정상 상태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 유로존, 일본 등에서 돈 풀기와 양적완화는 일시적 회복의 착시 효과만 만들어내면서 더 커다란 모순을 잉태해 왔다. 게다가 양적완화는 당연히 무한정 계속될 수 없는 정책이다.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양적완화 축소에 나섰고, 이것은 알다시피 양적완화 기간 동안 신흥국으로 몰렸던 달러들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바로 이것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신흥국들을 정치경제적 열병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배경이다.
남아공, 터키, 브라질, 타이, 우크라이나, 홍콩 등에서 경제적 불안정이 정치 위기와 결합되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왔다. 만약 미국과 선진국에서 양적완화를 계속 축소할 뿐 아니라 금리 인상까지 조금씩 시작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도 이것을 우려했다. “세계의 경기회복은 새로운 거품을 만드는 것으로 지속되고 있다 …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를 절대 알 수 없다.”(≪한겨레≫, 2014.6.24.)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은 (파시즘이 득세했던) 1937년과 비슷하다.”(≪한겨레≫, 2014.9.24.)
실제로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전선, 영국 독립당 등 극우·파시스트들이 크게 성장했다. 유럽 지배자들은 경기 침체에 긴축 정책으로 대응했고, 이것이 낳은 반유럽연합 정서가 극우 민족주의 부상을 자극한 것이다.
한편, 위기의 자본주의가 낳은 극단적 불평등은 급진적 해결책에도 귀 기울이게 한다. 전 세계적 화재를 모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대표적이다. 피케티는 ‘세습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기회의 평등과 복지국가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강력한 자본과세와 누진적 부유세 도입을 주장한다.(비록 피케티 자신은 이것을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제시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지지할만한 요구다. 이런 대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더욱 더 강력해져야 하고 급진좌파적 대안이 더 성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불안정은 지정학적 불안정을 낳았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발전에 큰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중심적 위협이 아니라 여러 가지 위협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거대한 혼돈과 분열, 불안정한 세계를 우리는 보고 있다.”(≪한겨레≫, 2014.7.23.)
경제 위기 지속·심화 속에서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올 상반기에 벌어진 여러 사건에서 거듭 드러났다. 지금부터 이것을 하나씩 돌아보고자 한다.
먼저 아직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자. 불씨는 세계경제 위기에서 마련됐다. 지배계급의 친유럽 분파인 티모센코도, 친러시아 분파인 야누코비치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처음 벌어진 일은 경제 위기 속에 쌓여 온 고통과 불만이 거리 시위로 폭발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EU FTA 무산이 쌓여있던 불만을 터뜨린 계기가 됐다. ‘마이단(광장) 운동’이 시작됐고, 야누코비치 정부가 이를 폭력 진압하면서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저항은 수십만 명 규모로 성장했고, 대통령 야누코비치는 야밤에 헬기를 타고 도망가야 했다.
문제는 좌파적 대안의 부재였다. 구소련 진영 좌파는 스탈린주의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해 왔고,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민족주의 우익들이었다. 이제 계급투쟁은 민족적 대립과 제국주의간 갈등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친서방 정권 수립으로 사태가 발전하면서 러시아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고 크림반도까지 장악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푸틴은 크림공화국의 독립을 부추겨 러시아와 합병시켰다. 이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권 추구를 보여 줄 뿐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공산당이 ‘서방제국주의에 맞서는 푸틴 만세’를 외치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쟁하는 제국주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박노자는 옳게도 “자본주의적 야수 국가인 러시아에 대해서 ‘애국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주의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친서방 정부군과의 대립에서 러시아만을 악마화하는 서방 언론의 태도도 역겨운 것이다. 서방 제국주의는 1999년에도 이 지역에서 발칸전쟁을 일으켜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은 바 있다. 소련·동유럽 몰락의 공백 속에 서방제국주의 패권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그 이후로 서방 군사기구인 나토는 ‘동진’(구소련·동유럽 지역으로의 확대)을 계속해 왔고, 기존 소련제국 진영의 12개국이 새롭게 나토에 가입했다.(≪참세상≫, 2014.3.15.)
결국 러시아의 이번 행동은 이에 대한 반격이었다.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푸틴을 향해 “21세기에 19세기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그런 행동을 가장 자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과 동맹국들이다. 그것을 다시 보여 준 것이 이스라엘이 이번에 저지른 짓이었다.
이스라엘, 이슬람국가(IS), 미제국주의
이스라엘은 올 7월부터 약 50일 동안 팔레스타인 민중 2천 명 이상을 학살하며 가자지구를 피로 물들였다. 최첨단 살상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재래식 로켓포와 돌멩이로 무장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대결은 처음부터 결과가 뻔했다. 두 달된 아기, 장애인, 노인, 일가족 등이 처참하게 몰살당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에 4,300만 달러 지원계획을 발표했고,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하마스가 우리 청소년 3명을 납치·살해했다’는 핑계를 대다가, 나중에는 자신들의 폭격에 대응해 하마스가 쏜 로켓을 문제 삼았다. 학살을 시작할 빌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1948년 제국주의의 지원 아래, 시온주의 국가가 탄생할 때부터 이 비극은 시작됐다. 제국주의는 중동에서 자신들의 석유와 패권을 지켜 줄 경비견을 만든 것이고, 이 경비견은 수시로 아랍 민중을 물어뜯는 것을 통해 존재가치를 입증하려 해 왔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은 제국주의와 아랍의 반동세력들이 2011년 아랍 혁명이라는 도전에 맞서 차근차근 진행해 온 반혁명 작전의 일부였다. 그동안 사회주의자들은 ‘중동에서 해방을 향한 길은 바그다드와 카이로, 다마스쿠스를 통한다’고 말해 왔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형성되고 있는 바그다드(이라크 수도)와 카이로(이집트 수도),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같은 대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 진정으로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도전할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이었다.
그 역도 사실이었다. 2011년 아랍 혁명은 카이로에서 반동세력을 몰아낼 수 있었지만, 다마스쿠스에서는 가로막혔다. 미국 침공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한 바그다드는 여전히 혼란에 처해 있었다. 중동 지역 반동의 핵심 보루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혁명의 불길을 용케 피했다. 게다가 이집트마저 지난해 군부의 반혁명으로 시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원래 이집트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무슬림형제단은 가자지구로 통하는 라파 국경을 개방했다. 하지만 반혁명을 일으킨 이집트 군부는 즉각 라파 국경을 봉쇄했다. 이렇게 가자지구 민중의 숨통이 막히기 시작하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학살 공격을 시작했다. 이처럼 반혁명의 검은 먹구름은 카이로를 통해서 가자로 향했던 것이다.
물론 대학살극의 배후에는 미제국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실패 이후 중동 곳곳에서 위신이 추락하고, 숙적인 이란의 위상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걱정해 왔다. 미국이 이스라엘이라는 경비견의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준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총리 네타냐후의 지지율이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마지못해 휴전을 합의해야 했다. 비록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지만, 이스라엘은 결코 승리하지 못했다. 먼저 이스라엘 군 사망자 수는 2008년 가자 침공 때보다 더 컸다.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은 사망자(거의 6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희생자 규모에 비할 수 없지만, 핵으로 무장한 군사강국이 세계최강대국의 지원을 받으며 벌인 전쟁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공격은 하마스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에 타협해 온 파타의 존재 기반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역사상 최대규모의 반이스라엘 반전 시위가 유럽과 중동 곳곳에서 일어났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부들은 이스라엘과의 외교적 관계를 단절했다. 지난 몇 년간 확대돼 온 ‘BDS 운동’(불매(Boycott)·투자회수(Divestment)·경제제재(Sanction)를 통해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하려는 국제적 캠페인)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결국 이번 사태는 2006년 레바논 침공에 이어 또다시 이스라엘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잔인함도, 실패도, 미국이 지금 중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에 비하면 가볍게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9월초에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이하 IS)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제적 차원의 반IS 군사연합전선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 공습을 확대하던 미국은 9월 22일부터는 시리아에서도 공습을 시작했다. 오바마는 ‘IS가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야만적 테러 집단’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칼로 참수하는 IS보다, 드론으로 학살하는 오바마가 더 ‘문명적’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IS의 등장은 이라크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은 후 중동에서 군사 개입이 쉽지 않던 미국에게 새로운 핑계거리가 됐다. 미국은 ‘IS의 위협’을 핑계삼아, 국제법도 무시하고 의회에 묻지도 않고 이라크 뿐 아니라 시리아까지 공습하고 있다. 그런데 ‘알 카에다보다 더 심하다’는 IS의 등장 토대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미국과 그 하수인들이다. IS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분열지배 정책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원래 이라크에서 “수니-시아파 차이는 … 절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 사이는 서로 장사하고, 필요한 지식을 나누고 심지어 통혼이 가능”(이희수 교수)한 관계였다. 2004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종파를 넘어 단결하는 반제국주의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미국은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간 이간질에 매달렸고, 종파적 암살단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도록 고무했다. 이 속에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성장했던 것이다.
특히 미국의 하수인인 이라크 알 말리키 정부의 종파적 통치와 부패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시아파인 말리키 정부는 미군 철수 후 2012년에 수니파가 평화 시위를 시작하자 수천 명을 고문·살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것이 강경 수니파의 부상을 낳았다. 무엇보다 말리키 정부는 끔찍이 부패하고 무능했다. 말리키 치하에서 이라크의 실업률은 60%에 달했고, 식수와 전기 공급 등은 엉망이었으며, 치안은 극도로 불안정했다. 90만 이라크 정부군이 1만 반군 앞에 무너진 것은 이 때문이다.
IS는 또한 시리아 내전 속에서 친미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직간접 지원으로 성장했다. 중동 전문가인 패트릭 콕번은 “사우디아라비아는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했으며 이제 이 괴물에 대한 통제력을 빠르게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참세상≫, 2014.8.21.)
반동 왕정들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낸 이유는 아랍 혁명을 납치하기 위해서였다. 반동세력은 ‘정권과 민중의 대립’이 아니라 ‘정권과 이슬람극단주의의 대립’으로 아랍 혁명을 재구성하려 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시리아에서 온갖 무장단체들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며 혁명을 내전으로 변질시켰다. 종파간 폭력과 갈등은 극에 달했고, IS는 이 속에서 힘을 키웠다.
결국 지금 상황은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2003년 미제국주의의 이라크 침공이 완전 파산했고 지정학적 재앙만 낳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미국은 그동안 ‘이라크 증후군’에 시달려 왔다. 이제 오바마는 IS에 대한 공격을 통해 제국의 위신을 회복하려한다. 이 같은 미국 주도 군사적 개입의 결과는 이슬람극단주의의 약화는커녕 강화일 것이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와 한미일 동맹
중동의 이런 심각한 상황들 때문에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는 갈수록 모순과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따라서 미국 세계패권 전략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한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겠지만, ‘아시아 회귀’의 배경인 중국의 부상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적해 온 중국은 이제 군사력 증강에도 힘을 쏟고 있고, 미국도 이에 맞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가 헨리 키신저는 얼마 전 새 책 ≪세계 질서≫(World Order)에서 “의심과 잠재적 대결의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늘어 결국 재앙으로 비화된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역사에서 두 나라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한겨레≫, 2014.9.11.)
미국과 중국 사이에 협력뿐 아니라, ‘의심과 잠재적 대결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숨기기 어렵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 발이 묶여 있고, 심지어 2008년 경제 위기 파장으로 ‘군자금’도 부족하다. 이런 역부족 때문에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화를 앞장서 부추겨 왔다. 일본을 앞세운 미·중 사이 갈등이 심상치 않음은 올해 거듭 드러나 왔다. 지난 4월 미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에서도 양국은 공개 기자회견에서 노골적으로 충돌했다.
단지 말뿐이 아니었다. 중국 방문 전에 미 국방장관은 일본에 들러 이지스함 2척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의 무기 수출 3원칙 해제도 지지해 줬다. 이어진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마치 ‘중국 포위망 구축’ 퍼레이드 같았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올해 5월 중·러 정상회담 직후, 두 나라는 동중국해에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열었다. 9월 22일에는 중국 해군 전함 2척이 이란에 가서 최초로 이란 해군과 나흘간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이런 갈등이 계속 발전할지, 지금의 동맹구도가 고정돼 있을지는 단정할 수 없다. 여러 변수와 모순을 품고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고, 여기서 특히 한반도는 핵심 지역이다. 올해도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는 핵잠수함 정박, 미사일 발사 실험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바마 정부는 거듭해서 ‘과거 따위는 대충 묻어 버리고 빨리 내 앞에서 손을 잡아라’고 한일 양국을 닦달했다. 미국은 중국 포위와 MD 구축에 필수적인 한미일 군사(정보) 교류와 협력을 거듭 촉구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침략 역사 부정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천명 등을 사실상 묵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미국 주도의 중국 포위용 MD에 계속 끌려가고 있다. MD의 일부인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서재정 교수는 이렇게 경고한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근본적으로 한반도 전략균형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 이 경우 미국은 북의 핵 보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공격을 자제할 필요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 만약 북이 규모 1의 도발을 할 경우, 한미연합사는 규모 3으로 대응하고, 북은 다시 이에 5로 대응하고, 한미연합사는 더 큰 보복을 하는 사태가 거의 자동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 뿐만 아니라 중국의 화력이 가장 먼저 노리는 화점도 사드 배치 기지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눈치도 보고 있다. 당장 지난 7월 한중 정상회담 때 박근혜 정부는 중국 정부에 ‘위안화 국제화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은 이에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했다. 상황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한국은 오른손은 미국과, 왼손은 중국과 잡고 있는 데 왼손에서 오는 돈이 갈수록 커져 왔다. 게다가 중국은 ‘돈’뿐 아니라 ‘주먹’에서도 미국을 추격하려 애쓰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 지배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다. 요즘 한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대한 주요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은 어지러울 정도다.
“중국이 섭섭해 할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 미국이 섭섭해 할 정도로 중국에 가까워지는 것도 어리석은 일”(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중국과는 멀어져서도 안 되고 가까워져서도 안 되는 바로 그 미묘하고 경묘한 교집합점의 어떤 지점, 그 곳이 곧 우리 외교정책이 지향하는 통찰력의 극대점이 되어야 한다.”(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허경구)
박근혜 정부는 풀기 어려운 딜레마 속에 허우적대며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을 키우고만 있다.
‘세월호 모멘트’와 반복되는 박근혜의 위기·탈출
박근혜 정부는 국내에서도 여러 모순과 불안정 속에 허우적대 왔다.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며 이 점을 살펴보겠다.
박근혜 정부는 종북몰이를 통해 우파를 결집하며 기성정치권의 우경화를 추동해 왔다. 올 초 민주당-안철수 통합은 이런 우경화 경향의 한 반영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간에 포지션을 잡던 안철수와 통합하면서 민주당은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유우성 간첩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진 것은 종북몰이가 온갖 무리수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원순도 종북’이라고 몰기위해 시도된 무리한 공작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초 ‘세 모녀 자살’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종북몰이를 통해 반대파를 짓밟으며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비극적으로 보여 줬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세 모녀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이런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투쟁은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해 말 결정돼서 올해 시행한 민주노총 ‘2.25 파업’도 실망스럽게 끝났다. 이 민주노총의 ‘국민파업’에서 파업을 한 곳은 거의 없었고, 금속노조마저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이 부결돼 버렸다. 그나마 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16개 대학 1700명이 참가하는 동맹파업을 통해 임금 인상을 얻어낸 정도가 희망을 보여 줬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연초부터 규제 완화와 민영화 등을 추진하겠다며 공세적으로 나왔다. 규제는 ‘암덩어리이자 쳐부숴야할 원수’라는 게 박근혜의 논리였다. 철도노조에 대한 악랄한 보복에도 열중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를 지방선거에서 심판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안철수 신당(새정치민주연합, 이하 새민련)은 처음부터 잡음을 쏟아냈고, 진보정당은 사분오열과 진보당 강제해산 문제로 선거 전망이 매우 어두웠다.
새민련은 강령에서 4.19, 5.18을 빼려고 한다거나, 기초연금법에 대해 새누리당과 야합하며 실망만 자아냈다. 오로지 내세운 것은 ‘기초선거 무공천’인데 이것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했다. 결국 새민련은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졌고, 박근혜만 ‘반사이익’을 얻고 있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최대 쟁점이 된 것은 간첩조작도, 세모녀 자살도, 무상버스 정책도 아니었다. 오로지 가장 뜨거운 이슈는 황당한 무인기 논란이었다. 우파는 “하늘이 뚫렸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지방선거에서 박근혜의 승리는 예정된 결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건이 갑자기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차디찬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보며 절규했다. 제주도 수학여행의 꿈에 부풀었을 3백여 명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들 가슴 속에 묻혔다. 세월호 참극은 이 사회와 체제의 축소판이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이고, 선장은 정부이고, 가만있으라던 선내 방송은 언론이고, 수장된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보여 준다’는 지적에 너도나도 공감했다. 그동안 밝혀진 사실들만 봐도 이 참극은 이윤논리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 결합해 만들어낸 재앙이 분명하다. 자본과 국가라는 이 2인조 살인범들은 재앙의 준비 과정과 그 폭발 과정 모두에서 비슷한 구실을 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고, 박근혜의 국가는 위기에 직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물었고,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와 민영화의 효과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런 공감대 가운데 거리에서 촛불집회와 행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KBS 노동자들은 ‘기레기’라는 멍에를 벗어나고자 친정권 사장 퇴진 파업을 시작했다.
박근혜는 몇 번이나 사과하고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연기도 해야 했다. 나아가 국가안보실장 김장수와 국가정보원장 남재준을 물러나게 했다. 비록 촛불시위와 행진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 국면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 추진 등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효과도 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 ‘불순 세력이 순수한 유가족을 선동한다’며 반격을 시도했다. 또 박근혜는 새민련에 기대서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실제로 새민련이 이 국면에서 한 일은 새누리당과 기초연금 개악안에 야합하는 것이었다.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새민련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의 로비를 받아 법안을 통과시켜준 의원들은 두 당에 고루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새민련 후보인 김진표는 새누리당 남경필보다 더 신자유주의와 규제 완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새민련의 지리멸렬을 이용해 지방선거 패배를 모면했다. 진보정당들은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는커녕 사분오열 속에서 참패했다. 진보진영이 단결해서 새민련의 공백까지 메운 교육감 선거 결과만이 한 가닥 희망을 보여 줬다.
지방선거가 끝나자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극우인사인 문창극 총리 후보를 필두로 하는 새 내각을 임명하며 ‘박근혜 정부 시즌2’의 신호탄을 쐈다. 밀양 행정대집행도 폭력적으로 강행했다. 그러나 세월호 국면에서 밀리던 박근혜가 건재함을 과시하려던 이런 시도가 오히려 박근혜의 위기를 불러왔다.
문창극의 친일 막말이 폭로되면서 박근혜 지지율은 최저치로 떨어졌고 우파 내부에서도 자중지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무성이 김기춘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권력 암투 양상까지 나타났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불러낸 정치적 파문이자 후폭풍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새민련의 ‘도움’과 자충수들이 박근혜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줬다. 안철수가 일으킨 ‘공천파동’ 속에 새민련에 대한 환멸이 번져갔다. 게다가 새민련은 새누리당이 제안한 알맹이 빠진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하면서 첫 번째로 유가족의 뒤통수를 쳤다.
결국 7•30 재보선에서 새민련과 안철수의 ‘새정치’는 다시 한번 파산했다. 이제 박근혜 정부는 더 노골적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파묻으려고 나섰다. 딸을 잃고 40일 넘게 단식하며 죽어가는 ‘유민아빠’ 김영오 씨는 우파의 증오와 저주를 한 몸에 받았다. 물러난 안철수·김한길을 뒤이어 새민련의 비대위원장이 된 박영선도 또다시 몇 번이나 세월호 유가족의 뒤통수를 치며 새누리당과 야합했다. 그나마 멀리 로마에서 온 교황만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가족들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파 지배자들의 엄청난 탄압, 새민련의 타협 압박을 견뎌냈다. 광화문 광장은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의 엔진이 되어 갔다.
이 힘은, 아래로부터 투쟁을 무력화시켜 오던 지배자들의 메커니즘을 마비·교란시켰다. 기회주의적으로 동요하며 유가족의 뒤통수나 치던 새민련의 기반도 뒤흔들었다. 새민련은 우파 지배자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도, 아래로부터 저항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파산해 갔다. 9월 중순에 벌어진 박영선의 탈당 협박, 새민련 분당설은 이 당이 처한 심각한 위기와 불안정한 미래를 보여 줬다.
새민련이 ‘동의와 설득’을 통해 세월호유가족을 주저앉히기 힘들다는 것이 드러나자 우파 지배자들은 더욱 더 노골적인 ‘강제와 폭력’으로 유가족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베의 ‘폭식 투쟁과 조롱’이 유가족의 가슴을 헤집었고, ‘대리기사 폭행 시비’ 이후 보수 언론들의 십자포화는 피멍든 가슴에 불화살을 쏘아대는 격이었다.
세월호가족대책위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집행부 총사퇴를 했지만, 다행히 곧바로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해 투쟁에 나섰다. 오로지 4.16의 진실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이들의 진정성과 의지는 앞으로도 숱한 좌절과 고난을 겪겠지만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다.
호흡곤란의 박근혜와 산소호흡기 새민련
박근혜 정부는 원래 우파와 지배계급 대다수의 결집된 지지 속에서 세워졌다. 지배계급은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가 경제적·지정학적 불안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를 선택했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나 영국의 대처처럼 단호하게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을 억누르며 자본 축적을 강행하길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지배자들 사이에서 ‘첫해는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으로 허비하고 올해는 세월호에 발목 잡히고, 되는 게 없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의 ‘공포통치’가 박정희 시대와는 다른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는 박정희 시대와 달라진 주객관적 조건 때문이다.
먼저 지금은 박정희 때처럼 한국 자본주의의 팽창·발전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 자본주의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 자본주의에는 불행하게도 세계경제 여건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1%에 그쳤고, 아베노믹스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 상반기 성장률도 0.3%에 머물렀다. 유로존의 독일과 이탈리아도 올해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선진국들은 수출은 늘리되 수입은 줄이려 하고, 이는 중국의 대선진국 수출에 타격을 가하고, 이것은 다시 중국에 기계·소재·부품을 파는 한국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삼성전자의 수익도 크게 줄었고, 20대 기업의 2분기 영업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나 감소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투자가 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한국 지배자들에게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최경환노믹스’는 또다시 부동산 경기부양과 ‘고통전가’에 불과함이 분명해지고 있다. 주민세, 담배값, 자동차세 인상을 통한 서민 증세도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어려워지는 답답한 경제 상황에 2007년∼2012년 사이 실질임금이 2.3%나 줄었으니 소비가 위축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모순도 커지게 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약속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대중의 불만은 더 높아지고, 집권 정당성 시비까지 안고 있으니 더욱 ‘공포통치’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통치’의 약발은 갈수록 떨어지며 아래로부터 저항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집회 시위는 증가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집회 횟수와 참가자 수는 그 전년에 비해 각각 17%, 26% 증가했다.(≪매일노동뉴스≫, 2014.8.6.) ‘노사분규 건수’도 올해 7월까지 61건을 기록해서 작년 같은 기간 27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한국경제≫, 2014.9.10.)
이런 조건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거듭 위기에 빠졌다 벗어나기를 반복하며, 정책 추진과 법안 통과 등을 위한 동력이 잘 강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거듭 확인돼 왔듯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위기를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다. 먼저, 언제든 박근혜를 구할 준비가 돼 있는 새민련이 있기 때문이다. 새민련은 반대 시늉을 하면서도 결국 박근혜·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도움을 줘 왔다. 사실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경유착 문제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자유롭지 않았다. 물론 새민련은 새누리당처럼 재벌·대기업들에 기반이 굳건하진 않다. 이 때문에 새민련은 재벌·대기업이 가하는 위로부터 압력과 기층 민중들의 압력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사분오열, 갈등, 반목 속의 진보운동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박근혜의 위기를 투쟁의 기회로 이용하지도, 새민련의 위기가 낳은 공백을 메우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몇 년간의 사태 전개들 ― 민주노동당의 1차 분당, 진보대통합의 실패, 통합진보당의 등장, 경선부정 사태, 2차 분당, 내란음모 사건, 정당해산 청구 ― 속에서 지금 진보운동 내에서 정파간 분열과 불신, 반목은 극대화된 상황이다.
먼저 진보정당들을 보자면, 그나마 가장 큰 규모인 통합진보당은 눈에 띄게 세가 축소됐고 다른 진보정당들의 따돌림을 받고 있다. 정의당도 지난 지방선거나 7.30 재보선에서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노동당은 존재감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녹색당 등도 주목할 만한 진전이 없다. 이 틈에 우파는 툭하면 ‘종북몰이’ 등을 꽃놀이패처럼 이용하며 진보를 이간질하고, 지리멸렬한 새민련조차 진보정당의 기반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상반기에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거치며 진보운동 속에 절망감이 번져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선거 득표도 실망스러웠고, 다가올 총선의 전망도 우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더욱 문제인 것은 종북몰이 같은 문제뿐 아니라, 세월호 같은 명백한 문제에서도 단결된 강력한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있다. 이것은 개혁주의 정치와 지도자들의 문제점이 더욱 견제 받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투쟁과 요구를 새민련이 받아들일 수준으로 제한하며, 투쟁의 결합·발전을 회피하고, 결국 제도정치권으로 공을 넘기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진보는 분열한 채 새민련을 추수하고, 새민련은 우파에 굴복하고, 박근혜는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해 국정원 규탄 촛불운동과 철도파업 등이 더 나아가지 못한 배경이었다. 지금 진보진영 내에서 서로에 대한 원망, 불신은 심각하다. ‘내란음모 사건’을 돌아보며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성명서 하나 채택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에 연락을 해 성명서를 채택하려고 했지만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문구를 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 한 시민사회단체 집행위원장은 ‘국정원이 아무 것도 없이 발표했겠나. 뭔가 있으니까 했겠지’라고 말하기도 했어요.(≪참세상≫, 2014.2.12.)
상대 쪽에서도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까지 드러내 왔다. 대표적으로 진보정당의 당원이기도 한 한윤형 기자는 “그들이 한 행동을 내란음모나 내란선동으로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안 그러면] 진보는 그 ‘흙탕물’ 아니 ‘똥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미디어스≫, 2013.9.3.) 이런 분열이 낳은 결과는 ‘노동정치의 메카’라던 울산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울산지역에서 진보정당의 구청장 한 명 없고, 심지어 시의원 한 명도 없는, 그야말로 새누리당 일당 천국이 되었다”고 한탄한다.(≪레디앙≫, 2014.9.16)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 진보운동의 활동가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도 만만치 않다. 올해 초 노동당 故 박은지 부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여로모로 가슴 아픈 일이었는데, 당시 최혜영 노동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의 추모 글은 쓰라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층이었던 시아버님조차 구 민노당이 15% 지지에 육박했을 땐 우리 활동에 대해 격려와 지지, 응원을 보냈었다. … [그러나 지금은] 극심한 정파갈등으로 상처받고 피폐해진 경험들이 많은 진보정당 활동가들에게 차곡이 쌓여있다. … 분당의 과정에서 활동가들 상호간에 주고받은 상처 또한 만만치 않은데 진보신당에서 당 진로를 갖고 겪어야 했던 극심한 내홍의 상처 역시 크다. … 뼈 빠지게 대중운동의 성장과 진보정당운동의 성장을 위해 일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당 안에 남은 사람들도 그렇고 당을 박차고 나간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잘된 꼴 없이 모조리 망해먹고 말았을까?
이런 분열, 불신, 반목 속에 두 가지 우려스러운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하나는 진보가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갈수록 부르주아 야당에 끌려가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진보정당이 소멸하며 부르주아 양당체제로 나아가는 경향이다. 이것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단지 1년 반 후의 총선 때문만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2008년 촛불항쟁 이후 계급투쟁이 지지부진함을 겪어 온 것도 바로 이런 요인들 때문이었다.
먼저 2008년 촛불항쟁이 어정쩡하게 중단되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낳았다.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왔지만 그다지 바뀐 게 없고, 박근혜 우파 정권으로 연장되기까지 했다’는 정서였다. 진보진영의 많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거리 운동이 아니라 제도정치가 더 중요하다’며 이 같은 정서를 증폭시켰다.
제도정치적 해법을 우선하는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달은 진보의 분열 상황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도, ‘묻지마’ 야권연대도 제도정치적 해법을 최우선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은 부문주의에 갇혀 계급투쟁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촛불항쟁 때도 민주노총의 구실은 잘 보이지 않았고, 쌍용차 파업에서도 연대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것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 발전을 가로막았고, 주요 투쟁들의 고립·패배를 방치하게 했다.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한 6가지 방향
결국 현재 진보운동의 자신감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올 상반기를 돌아보면 세월호 국면과 투쟁이 규제완화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기회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 동시에 두 투쟁은 위에 지적한 요인들 속에서 잘 결합되지 못했다. 그 결과 세월호 투쟁도, 여타 노동자 투쟁들도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해 왔다. 따라서 진보운동의 활동가들은 운동의 단결을 촉진하고, 자신감을 높이며, 승리를 앞당길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런 방향과 과제가 이런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새누리당뿐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세력인 새민련을 추수하지 말아야 하며 정치적 독립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비판적인 새민련 추수가 낳은 문제점은 지난 몇 년간 거듭 입증돼 왔다. 따라서 정의당 주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새민련 흡수설은 깔끔히 정리돼야 한다. 정의당 내의 참여계 등이 진보진영에 부르주아적 압력을 넣는 통로로 구실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비판과 선 긋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정치적 독립성과 비판적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구체적 사안에 따라 새민련과의 일시적 제휴 가능성까지 닫아둘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둘째, 제도정치적 통로와 방법을 통해서 박근혜 정부를 저지하려는 편향을 재고해야 한다. 갈수록 언론플레이, 국정감사, 입법 청원, 법적 소송 등이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성과를 낳는 길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편향이 새민련 의존·추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지배자들의 실질적 양보를 압박할 수 있는 것도, 대중의 의식화·조직화를 이룰 수 있는 것도 집회, 행진, 파업 같은 아래로부터 대중행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지난 몇 년간 심각한 분열을 낳으며 단결·투쟁을 가로막아 온 문제들에 대한 성찰적 평가가 필요하다. 정의당 지도부는 ‘진보당 경선부정 사태’ 당시, 부정의 주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으면서 오히려 ‘당권파’에게 누명을 씌우며 파행과 우파의 개입을 자초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2013년 기성정당들과 손잡고 ‘이석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고 마녀사냥에 동조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민주노동당 시절의 패권적 당 운영, 특히 진보의 분열을 자초하며 패권적 방식으로 이뤄진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에 대해 자성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것은 이후 진보진영에서 벌어진 많은 분란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 사태’ 당시 ‘중앙위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사과할 필요가 있다.(이런 자성과 사과는 단결의 전제조건일 수는 없지만, 분열을 극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면 하겠다는 식의 태도여선 안 된다. 무엇보다 이 사안들은 운동진영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 문제이기에 운동 전체를 향해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넷째, 진보진영·노동운동 내에서 소통과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서로 등을 돌리고 귀를 막고 소통하지 않을수록 불신과 감정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소통과 협력을 위해서도 특정 단체와 개인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입장과 생각변화를 연대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편협한 태도도 버려야 한다.
진보정당 통합 논의도 각 정당의 정치적·조직적인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선거·투쟁에서 연대하거나 느슨한 정치연합체를 만드는 게 나을 것이다. 무리하게 조직과 강령을 통일시키려하면, 특정 정파의 견해를 강요하거나 당직·공직과 주도권을 놓고 갈등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운동 전체의 이익보다 다수정파의 이해를 우선하는 패권주의도, 소수정파의 입지만 생각하는 종파주의도 투명한 보고와 민주적 토론 속에서 견제돼야 한다.(진보 통합의 또 다른 주요 쟁점인 북한 문제도 일단 견해 차이를 존중해야지, 어느 한쪽 입장으로 무리하게 통일하려해선 안 된다. 모호한 절충은 이후 분란의 불씨만 될 것이다. 특히 지배체제 내에서 ‘합리적 진보’로 인정받기 위해 입장을 통일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데올로기만을 보고 북한 관료와 남한 자주파를 구분하지 않는 혼란도 문제다. 북한 관료는 지배계급인 반면, 남한 자주파 투사들은 진보운동의 중요한 일부다. 물론 제국주의의 위선적 대북 압박에 반대하고 남한의 억압·착취 체제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북한 억압·착취 체제에도 반대하는 것이 좌파의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다섯째, 진보진영·노동운동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미국의 중동 폭격 반대, 핵발전 폐기 등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공동의 적과 그들의 탄압에 맞선 단결된 투쟁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불신과 오해가 해결되고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그 속에서 서로의 이견과 차이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 ‘내란음모’ 탄압과 진보당 정당해산 시도에 맞선 단결된 방어도 중요하다. 이런 종북몰이가 박근혜의 진보진영 이간질의 핵심 무기이며 우리 편의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진보운동은 각 부문과 단체가 단기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협소한 부문주의, 경제주의와 분명하게 싸워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큰 폐해를 일으켜 왔다. 지배자들은 이를 이용해 저항세력 중에 일부는 무마시키고, 일부는 고립시켜 타격하는 각개격파에 이골이 나 있다. 특히 주요 노동조합들이 소속 조합원들의 눈앞의 이익만 우선한 결과는 숱한 문제를 낳았다. 이번 세월호 국면에서도 금속노조는 ‘통상임금의 감옥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상임금에서마저 정규직, 비정규직, 중소부품업체의 단결 투쟁보다는 각 노조별 역량에 따른 각개약진이 두드러졌다.
진정한 장기적 이익을 위해 힘을 모으지 않고 각 부문의 단기적 이익만 지키려 할 때, 결과적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부메랑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주요 노동조합들은 심지어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거나,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 등을 위해 부문적·단기적 손실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예컨대 비정규직과 연대하기 위해 임단협을 앞당기거나,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파업을 하는 것은 일시적 임금 손실과 탄압, 보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즉자적 계급을 넘어선 대자적 계급’을, 레닌은 ‘노동조합적 의식을 넘어선 진정한 계급의식’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진보진영이 전체 운동의 전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문제는 바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다. 지금 세월호 문제는 바로 레닌이 말한 ‘전체 사슬을 움켜쥐기 위한 핵심 고리’이다. 이 문제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응축돼 있고, 지배계급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문제다. 세월호의 파장은 지배계급의 예정된 공격을 머뭇거리게 만든 반면, 다른 여타 운동들이 전진할 수 있도록 고무해 왔다. 따라서 이 문제의 성패는 계급투쟁의 앞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문제를 중심 고리로 놓고 규제완화와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차별 등에 맞서는 다른 투쟁들을 적극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규제완화와 민영화, 비정규직 확산 등의 폐해를 보여 줬기에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다. 나아가 힘의 집중을 통해 세월호 투쟁이 전진한다면, 그것은 다른 투쟁들의 발전을 고무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바로 이러한 ‘투쟁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정치투쟁의 모든 활발한 공격과 승리는 경제투쟁에 강력한 자극을 준다. … 정치 행동의 물결이 고양된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핵심 고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속에서 성장한 노동계급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 노동계급이 지금의 정체 상태와 분열, 반목을 극복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진보운동은 고통과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 오류를 솔직히 돌아보고 인정하는 용기, 부문별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우리 모두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힘 모아 투쟁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귓가에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되나요?’, ‘이제는 진실이 밝혀졌나요?’라는 세월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지 않은가.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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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민주주의를, 사회정의를, 진보당을 지켜야 한다 (0) | 2014.12.16 |
‘2분 증오’를 부추겨 온 ‘십상시’들의 나라 (0) | 2014.12.03 |
세월호노믹스 추진도, 유가족 뒤통수치기도 ‘그만해라’ (0) | 2014.09.24 |
세월호도, 퍼거슨도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0) | 201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