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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자연과 마르크스 생태학의 귀환 - 2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2. 22.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는 얼마전 생태사회주의 사상가들의 계보학에 관한 저서인 <자연의 귀환>Return of Nature을 출판했다. 이것을 계기로 마르크스의 사망에서부터 주요 생태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걸어온 길, 그의 새 책과 마르크스의 생태학의 관계, 현재 마르크스주의 생태 사상의 가장 두드러진 논쟁 등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오리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서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편집자이다. 그는 여러 권의 정치경제학, 제국주의 이론과 관련한 책의 저자이며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에 관한 이론적 기여와 저술로 유명하다. 한국에도 <마르크스의 생태학>,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생태혁명> 등이 번역돼 있다. 비록 <자연의 귀환>이 한국에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더 심도깊은 논의와 고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 이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글이 매우 길고 또 다소 복잡하고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어려운데,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은 2편이다.(번역: 두견)

출처https://monthlyreview.org/2020/12/01/the-return-of-nature-and-marxs-ecology

<1편에서 이어짐>

*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죄르지 루카치Georg Lukács(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유산에 대한 당신 자신의 내면화가 어떻게 자연의 영역에 변증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당신은 이러한 공통된 약점 때문에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자연 분야와 과학 철학을 기계론적 사고와 실증주의적 사고의 변종들이 지배하도록 부분적으로 포기했는지 지적한다.

그러나, <자연의 귀환>은 정확히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자연의 변증법'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서 중심적이었던 루카치의 몇 가지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떤 조건이 이 중요성에 대한 많은 발견을 지연시켰는가? 이러한 가정들이 특히 생태학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에 끼친 주요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나는 내 자신의 지적 발달을 통해 이것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 시절에 나는 임마누엘 칸트, GWF 헤겔, 아서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막스 베버의 저작들뿐만 아니라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메자로스Mészáros,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H. 스튜어트 휴즈Stuart Hughes,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와 같은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상당히 광범위하게 공부했다. 내가 대학원에 갔을 때, 나는 칸트주의/신칸트주의와 헤겔주의/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경계를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비판 이론에 대한 과정에 참여하면서 엥겔스 <자연의 변증법>에 대해 비판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각주의 권위에 주로 기초하여 변증법이 자연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최초의 명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오직 '자연의 변증법'을 거부함으로써, 변증법은 역사적 과정의 동일한 주체이면서 객체로 정의될 수 있다고 주장되었다. 물론 루카치 자신은 나중에 지적했듯이 "단지 객관적인 변증법" 또는 그가 <역사와 계급의식>의 다른 곳에서 언급한 '자연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한 적이 없다.

실제로 루카치는 마르크스에 이어서, 그의 유명한 1967<역사와 계급의식> 서문에서 신진대사로서의 노동을 통한 자연과 사회 사이의 변증법적 매개, 그런 의미에서 자연 개념의 변증법을 주장했다. 1980년대 초에 읽은 그의 <루카치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변증법이 인간의 역사적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고 자연(또는 자연과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기계론과 실증주의로 넘어가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개념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은 채 실천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 내면화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E. P. 톰슨이 발전시킨 것처럼 우리가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역사적 변증법을 보게 되었다. 비록 나는 이것이 더 깊은 수준에서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사를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그 일부로서 출현하게 된 자연의 보편적인 신진대사와의 결합 속에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나의 관심은 주로 정치경제학과 그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역사에 맞춰져 있었다. 인간의 역사적 영역에 관한 한 자연의 변증법에 대한 질문을 괄호로 묶어버리는 것은 쉬웠다.

이 문제를 내가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생태학의 문제로 더 직접적으로 눈을 돌렸을 때였다. 자연의 변증법은 관념론적이거나 기계적인 유물론의 근거에서만 일관되게 제쳐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제의 복잡성을 감안하여서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쓸 때 마르크스와 관련하여 자연의 변증법에 대한 어떤 명시적이고 상세한 고찰도 대부분 의식적으로 피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적 신진대사 개념이 그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그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생태학> 에필로그에서 나는 단순히 물질의 자유로운 이동을 다루는 방식과 함께 변증법적 방법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을 다루었으며, 이것이 어떻게 그가 에피쿠로스와 헤겔에 대한 그의 연구에 의해 매개된 다른 초기 유물론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언급했다.

인식론적 접근으로서 나는 이것이 칸트에서 목적론이 인간의 인지를 위해 수행한 역할의 발견을 돕는데 있어서 동등한 것으로 변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엥겔스(그리고 루카치)와 마르크스와의 관계에 나타난 "소위 객관적 변증법"에 대한 더 넓은 존재론적 질문은 내 책에서 대부분 (암묵적으로 남기며) 피했다.

나는 버텔 올만Bertell Ollman과 토니 스미스Tony Smith가 편집한 변증법에 관한 책(나중에 <생태학적 균열>에 포함됨)을 위해 쓴 챕터에서 2008년까지 자연의 변증법을 명시적으로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후기 루카치에게 마르크스의 신진대사 논증이 전체 인식론적-존재론적 딜레마에 대한 넓은 길을 제공한다는 것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루카치 문제"라고 부르는 것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또 다른 경로가 에피쿠로스, 프랜시스 베이컨,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으로 대표되고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통합된, 마르크스가 "감각적 확실성의 변증법"이라고 부른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은 틀림없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더라도 여러 면에서 부적절했다. 내가 그것을 이해하게 된 어려움의 일부는 유물론적 변증법의 철학적 한계(동시에 훨씬 더 큰 과학적 범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이나 또는 내부적 관계와 창문도 없는 단일체들로 배타적으로 구성된 총체화된 체제에서처럼 결코 폐쇄적인 순환 체계가 될 수 없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물리적 세계 자체의 경우처럼 폐쇄되지 않고 개방적이었다.

'자연의 변증법'에 대한 질문은 <자연의 귀환>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한 가지 요소는 후기 루카치, 특히 젊은 헤겔과 사회적 실재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였다. 여기에서 핵심 요소는 헤겔의 반영 결정들에 대한 루카치의 논의였으며, 이는 내가 엥겔스의 변증법적 자연주의가 헤겔 논리학의 본질적 원칙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영감을 받은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으로 돌아가서, 내 견해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요소는 로이 바스카Roy Bhaskar의 비판적 현실주의, 특히 그의 <변증법: 자유의 맥박>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귀환>에서 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 자체(또한 레닌의 철학적 저술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있었는데,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엥겔스가 후대 사상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도표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자연의 변증법이라는 문제 자체의 측면에 있어서 니덤Needham, 크리스토퍼 코드웰Christopher Caudwell 및 린제이Lindsay에 대한 것이다. 덧붙여 예술 분야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과학 분야의 할데인Haldane, 베르날Bernal, 호그벤Hogben 및 뢰비Levy는 변증법 및 유물론적 생태학에 대한 다양하고 강력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 루카치는 또한 소외된 노동의 분할이 자본의 기능적 전문화의 필요에 따라 지식의 훈련에 있어서 분할을 증가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주목했다. 실천의 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자연과 사회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에 확장하거나 부과한 다양한 균열을 재구성하기 위한 총체적 프로젝트로 제안된다. 당신의 새 책의 중심 주제는 과학과 예술에서 생태학과 사회주의에 대한 평행적인 접근의 존재이다. 이러한 연결은 유물론적 생태사회주의 사고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생태 및 생태사회적 위기와 관련하여 이러한 상호작용을 재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자연의 귀환>을 쓰면서, 과학과 예술이라는 지식의 두 가지 극복할 수 없는 형태가 있다는 <미지에서 온 소식>에서 모리스의 진술이 끊임없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생태학과 관련된 모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경계를 넘었고, 따라서 어떤 계보-역사적 설명에서도 병행적 발전을 검토해야 했다. 분명히, 과학으로서의 생태학의 분석적 발전과 자연 변증법과의 관계는 주로 과학적 흐름을 통해 진화했다. 그러나 이것을 사회주의적 미학과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랭케스터Lankester[영국의 동물학자]는 모리스 및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14세기 이탈리아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는 미술작가들]와 친구였다. 호그벤[과학자]은 모리스로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주요 영감을 얻었다. 모리스에게서 우리는 모든 소외되지 않은 작업이 예술을 포함한다는 개념에 뿌리를 둔 분석을 발견한다. 이 개념은 그가 존 러스킨John Ruskin[예술평론가]에게서 끌어냈지만 마르크스를 통해 깊이를 더했다. 모리스는 또한 모든 예술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을 독립적으로 재생산했다.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코드웰은 전반적인 생태학 비판의 미학적 측면과 과학적 측면 모두를 훌륭하게 포착했다.

그의 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반을 둔 모사mimesis 개념과 제인 해리슨Jane Harrison[영국의 고전학자, 언어학자]으로 대표되는 케임브리지 의식주의자들Cambridge ritualists[영국의 고전인류학자 학파]의 급진적인 영국 고전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 개념을 이후 코드웰이 유물론적 변증법과 통합했다. 코드웰의 강력한 접근 방식은 시와 드라마의 기원에 대한 조지 톰슨George Thomson[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고전학자]의 탁월한 분석으로 이어졌다.

좌파의 이 전체 미학적 생태학적 발전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잭 린제이Jack Lindsay와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잭 린제이는 방대한 범위의 고전, 문학, 철학 및 과학적 연구로 인해 미학과 과학 모두를 바탕으로 자연의 변증법에 대한 개념을 통합한 것이다. 루카치, 메자로스, 톰슨과 같은 사상가들이 린제이의 작품이 충분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아마도 고대 고전에서 문학, , 역사, 과학 철학에 이르는 170권의 논문들을 탐색하는 것이 너무 벅찼기 때문일 것이다.

* 엥겔스는 당신의 새 책의 핵심 인물이다. 오랫동안 특정한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통속화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당신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생태학적 비판에 있어서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련성과 복잡성을 지적한다. 비록 점점 더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엥겔스와 그의 작업과 마르크스의 관련성에 대한 경멸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생태사상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러한 입장을 반박할 것인가?

나는 197412월 데이비드 매클렐런David McClellan이 마르크스에 관한 자신의 전기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연설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그의 연설의 핵심을 이루는 엥겔스에 대한 도를 넘어선 비난에 완전히 놀랐다. 이것은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아주 많은 방식으로 정의하게 되었고, 냉전 시대와 냉전 이후 시대까지 이어진 엥겔스에 대한 공격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실질적 입문이었다. 이 모든 것은 앨빈 굴드너Alvin Gouldner가 부른 두 가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것이기 보다 사상가로서의 엥겔스에 관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학술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들 자신의 마르크스를 품위있는 사상가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아무 관련이 없는 "마르크스주의"를 창안한 사람이고, 마르크스주의를 망치는 역할을 하는 너무 "조잡한" 것으로서 거부했다. 그리고 엥겔스는 경제주의, 결정론, 과학만능주의, 속류 철학적이고, 2인터내셔널과 그것을 넘어서 스탈린에 이르는 모든 길에 대해 정치적 책임이 있는 관점이었다.

그러므로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을 언급한 수백 권, 심지어 수천 권의 책과 기사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부분의 오래된 공식 마르크스주의에서처럼 교리적인 방식으로 그의 견해를 다루거나, 서구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전통의 경우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의 속류화를 확인하기 위해서 <자연 변증법> 또는 때로는 <반 뒤링>Anti-Dühring에서 몇 줄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엥겔스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한 테렐 카버Terrell Carver와 같은 다른 사람들은 엥겔스의 작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엥겔스의 작업을 마르크스의 작업과 체계적으로 분리하는 데 전념한다. 나는 칼 파도버Karl Padover<칼 마르크스의 편지>를 보고 마르크스 자신의 말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메마른 공허한 작업처럼 느껴졌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모든 편지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인데 엥겔스가 책에서 빠져 있어서 마치 마르크스가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방적 대화로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상호 서신은 확실히 양방향적인 대화이며 역사적 유물론을 함께 창시한 이 두 명의 권위있는 사상가들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로서 그 찬란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에서 엥겔스는 필수적이다. 이에 관해서 마르크스의 분석이 훌륭했던 만큼 (그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의 주요한 주제였던) 계급 기반 사회역학, 자연과 발생의 변증법, 자연의 정복에 대한 비판, 또는 인간의 진화적 발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엥겔스의 방대한 기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 뒤링>에서 다윈에 대한 엥겔의 비판적 전유는 진화론적 생태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자연 변증법>에서 발전된 창발론적 유물론은 비판적이고 과학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 <먼슬리 리뷰>는 항상 제3세계의 혁명적 투쟁에 대해 대단한 감수성을 보여왔다.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과 폴 스위지Paul Sweezy와 폴 바란Paul Baran의 독점자본 이론, 종속이론(특히 루이 마우로 마리니Ruy Mauro Marini와 사미르 아민Samir Amin 등과 다른 이들) 그리고 세계체제 분석과의 대화 또는 메자로스의 공헌은 다른 많은 영향들 속에서 당신의 구체적인 생태사회주의적 비판을 정교화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와 관련하여 불행하게도 그리고 어느 정도는, 생태학과 제국주의 사이의 연관성은 다른 마르크스주의 및 생태학의 흐름에서 종종 과소평가되어 왔다. 일부는 심지어 제국주의를 세계 자본주의를 다루는데 있어서 구시대적인 낡은 범주라고 여겼다. 왜 지정학과 생태학의 이러한 분리가 좌파의 특정 분야에서 그렇게 강하게 유지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 가능할까?

베트남 전쟁과 칠레 쿠데타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우리 세대에는 마르크스주의에 이끌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렀다. 1949년에 실질적으로 탄생했을 때부터 종속 이론과 세계체제 분석을 포함한 제국주의 비판의 주요 원천이 되어온 <먼슬리 리뷰>에 내가 일찍부터 매료된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폴 바란Paul Baran, 폴 스위지Paul Sweezy, 올리버 크롬웰 콕스Oliver Cromwell Cox, 체 게바라Che Guevara, 안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 사미르 아민Samir Amin, 임마누엘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 및 기타 다수의 제국주의에 대한 작업뿐만 아니라 해리 맥도프Harry Magdoff<제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는 우리의 중심이다.

미국에서 가장 혁명적인 관점이 역사적으로 그 관점에 있어서 항상 더 국제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던 흑인 운동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급진적인 미국 좌파를 정의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미제국주의와 화해한 마이클 해링턴Michael Harrington과 같은 주요 사회민주주의 인사들이 항상 있었다.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새로운 운동의 대표자들 중 일부는 반복적으로 워싱턴의 무자비한 해외 개입을 외면하고 있다.

물론 이 중 어느 것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좌파 내에서 제국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의 변형은 영국의 초기 사회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민주당의 창시자인 H. M. 하이드만Hyndman과 페이비언협회의 선도자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모두 대영제국과 사회제국주의를 지지했다. 반대편에는 모리스, 엘레노어 마르크스, 엥겔스와 같은 사회주의 동맹과 관련된 인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반제국주의자였다.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 기술된 바와 같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을 분열시킨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제국주의 문제였다.

1960년대부터 영국의 신좌파 내에서는 제국주의가 주요 논쟁거리였다. 톰슨, 랠프 밀리밴드Ralph Miliband,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와 같은 최초의 신좌파로 스스로를 정체화한 사람들은 강력한 반제국주의자였으나, 특히 <신좌파 평론>과 관련된 제2의 신좌파는 빌 워렌Bill Warren의 경우처럼 제국주의를 역사의 진보적 세력으로 보았거나 그 중요성을 완전히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금세기에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부상과 함께 그 결과로서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제국주의 연구가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문화 연구의 증가와 함께) 극적으로 쇠퇴했다. 이것의 논리적인 결과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와 같이 오늘날 좌파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최근에, 제국주의는 지금 쇠락하고 있는 서방과 함께 "역전되었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생태 제국주의 또는 불공평한 생태 교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좌파의 일반적으로 매우 취약한 성과에 대한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이것은 세계 대부분의 자원들과 생태계에 대한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수탈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체계적인 실패의 산물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인도에 유입된 기근은 영국이 인도의 식량 체제를 강제로 변경시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사용가치, 신진대사 관계, 수자원적 기반시설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인도의 잉여를 갈취해가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생태학적 착취 과정은 인도와 남반구의 많은 지역에서 좌파에게 오랫동안 이해되어 왔지만, 북반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전히 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의 뛰어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진대사 균열의 발현으로) 영양소를 빼앗긴 유럽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페루에서 구아노guano를 대량 몰수하는 것은 페루의 발전에 장기적으로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는 구아노 채굴을 위해 종종 "노예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중국인 노동자를 수입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가 라틴 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들'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생태학과 제국주의의 문제가 항상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항상 더 밀접하게 얽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와 평화 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s and Peace<생태 위협 등록부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최대 12억 명이 집을 떠나 기후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행성적 생태 위기는 오늘날 실행되고 있는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왔기에, 제국주의는 더 이상 그것이 존재하게 된 행성적 생태 파괴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 이것은 브렛 클라크와 내가 <자연의 강탈>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이며, 우리 둘이 한나 홀레만과 함께 <먼슬리 리뷰> 20197~8월호에 발행된 "인류세 시대의 제국주의" 기사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 기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인류가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의 생태 혁명은 고통받는 인류의 거대한 대중으로부터 그들의 힘을 끌어내는 반제국주의 혁명이 아니면 있을 수 없다 … 가난한 사람들은 지구를 상속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속할 지구가 남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보아왔듯이,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은 최근 수십 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맥락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재의 생태학 사상이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리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생태 사상이 직면한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자 일련의 토대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자본주의의 생태적 약탈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정치경제학 비판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노동과정을 자연과 사회의 사회적 신진대사(매개)로 변증법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는 노동과정을 소외시키는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소외시켜서 신진대사의 균열을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이로부터, 그 누구도 지구를 소유하지 않으며, 심지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도 지구를 소유하지 않으며, 그들은 단지 지구를 돌볼 책임이 있고, 가능하다면 집안의 좋은 가장으로서 미래 세대들에게 이어주기 위해 그것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는 사회주의를 가능한 한 많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완전한 인간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의 신진 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부분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이처럼 생태학적 비판과 경제적 비판 사이의 통일성, 또는 포괄적인 역사적 종합을 가진 전통적 또는 좌파적 녹색 이론은 아무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성적 비상사태에서 생태사회주의는 불가피하게 마르크스의 기본적 개념에 의지하게 되었다. 환경 운동은 조금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려면 생태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물론 사회주의적 생태학이 단순히 마르크스로 시작하고 끝났다면 나는 마르크스와 다윈의 죽음 이후 세기에 초점을 맞춘 <자연의 귀환>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이론과 실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변증법, 유물론, 생태학적 관점이 어떻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우리의 역사적 시대의 도전과 부담에 동참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우리의 정치-경제-생태학적 모순과 현재의 소외된 사회 및 생태 질서에서 그것들의 기초가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의 모순을 폭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필요한 변화를 수행하려면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혁명적 행동을 구상할 수 있게 하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사유의 목적은 현재 우리의 사회적, 생태적 모순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고 벼랑을 향하여 폭주하는 자본주의 열차를 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지구의 생태적 비상사태에 직면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혁명적이어야 하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시장과 기술에 믿음을 두면서 끊임없는 총체적인 생태 파괴를 낳는 지배적인 체제와 대체로 평화를 이루는 대부분의 환경주의의 단편적이고 개혁주의적인인 접근은 심지어 단기간에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엄청난 이론적 힘을 가지고 있고 다른 실천적 철학을 가리키는 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판이 이제 한 세기가 넘었다.

자본주의의 불타는 집을 떠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우리의 인식이 커지면서 우리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하는 인간, 사회, 생태적 가능성, 필수적인 자유에 대한 더 깊은 이론적 이해가 필요하다. <자연의 귀환>에 잠깐 등장하는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영국의 소설가]<황금빛 노트>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마르크스주의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서로 관련하여서 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혁명적인 능력이다.

(기사 등록 20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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