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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트럼프와 미국의 '국가 자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5. 4. 1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노르웨이에서는 "미국 상품 불매 운동"은 고인기입니다. 관련 그룹만 해도 폐북에서 수만 명의 가입자를 획득했습니다. , 페북 자체도 '미국 상품'이기에 페북에서 미국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역설 중의 역설이지만 미국 상품이 아닌 소셜미디오는 유럽에 거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칩시다. 위챗 (微信), 카카오, 아니면 vk.ruok.ru 등을 사용하면 되긴 하는데, 그건 다수의 유럽인들에게는 접근성이 좋지 않거나 (중국, 러시아의 소셜미디오의 경우) 더 거부감이 강한 편입니다.

좌우간, 저도 이런 운동에 공감을 느껴 한 번 불매 운동을 같이 해볼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집이나 제 주위에 "미국산 물건"이란 일단 무엇인지 한 번 둘러봤습니다. 일단 제 집에서는 "미국산 물건"이란 거의 없다 싶이 해서 굳이 불매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구는 대개 북구산, 겨울옷은 캐나다산, 세탁기는 한국산, 주방 세척기는 독일산, 청소기 역시 독일산, 컴퓨터는 대만산,식기 등은 거의 다 중국산...어렵게 찾아봤지만 결국 잠재적인 "미국 상품 불매 운동" 대상에 오른 것은 하기의 5가지 범주의 상품이었습니다:

* 학지 (academic knowledge)생산과 관련된 물건, 예컨대 학술 서적들입니다. 제 집에서는 미국 대학 출판부들이 간행한 책들은 아주 많습니다. 단, 그 저자 중의 상당수는 외국 유학생 출신의 재미 학자들이죠. 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미국으로 유학하고, 학위를 획득하고, 학위 논문을 개조해서 책 내고...이런 국제 개방형 능력주의 성공의 사다리를 밟은 외국 출신들은 사실 미국 학계의 "기반"을 이룹니다.

* 저의 아이폰 등 일부 전자제품입니다. 물론 아마도 제 아이폰의 물리적 생산이야 중국 등에서 이루어졌겠지만, 소프트는 미국 애플사의 것입니다. 이 애플사에서 아이폰 만들기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한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2016년 미국 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실리콘벨리 25-44세 IT 근로자 중에서는 74%는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주로 유학을 하고, 학습 능력 경쟁을 하고, 학위를 받고 IT쪽에서 취직하는 등의 국제 개방형 능력주의적 성공의 사다리를 밟은 사람들일 겁니다.

* 저의 컴퓨터의 윈도스, 워드 등의 소프트웨어입니다. 구글 검색엔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북 등 일부 소셜미디어도 그렇고요. 참고로, 미국 전체 STEM 근로자 중에서는 외국인들은 약 4분의 1 정도 됐는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에서는 외국인의 비율은 절반 정도 됩니다.

* 저의 텔레비전 (한국산)에 있는 넷플릭스입니다. 한데, 제가 넷플릭스에서 보는 콘텐츠 내용 중에서는 미국에서 생산된 내용 (소위 "미드" 등)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참고로, 넷플릭스가 작년 (2024년) 생산 주문한 콘텐츠 중에서는 68%는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주문한 것입니다 (K-콘텐츠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넷플릭스 구독자의 70%는 미국 밖에 있는 사람들이고요.

* 은행의 투자 상품입니다. 제가 직접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만, 제 임금 계좌가 있는 북구의 Nordea은행은 미국의 국채 등에 투자를 하는 펀드를 운영합니다. 여태까지는 미국의 국채는 "세계의 가장 안전적인 금융 상품"으로 평가를 받아, Nordea는 "저위험 상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미 국채 투자 펀드 가입을 계속 종용했습니다. 참고로, 전체 미국 국채의 약 23%는 외국 정부나 은행 등이 보유합니다

위의 명단을 보시면 미국이 대체로 무엇을 만들어 팔고 사는 나라인지 이제 쉽게 아실 것입니다. 상당수 외국인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미국 대학 시스템은 학지를 생산하고, 상당수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하는 미국 전자제품, 소프트웨어 등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등 기술을 생산하고, 넷플릭스 같은 플렛폼 업체들이 주로 외국산 콘텐츠를 외국인들에게 팔고, 미국의 국채 발행은 적어도 4분의 1 정도는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에 의존합니다.

, 미국은 극도로 국제화, 세계화된 생산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지식, 소프트웨이, 기술, 국채 같은 고안전성 투자 상품 등을 팝니다. 미국의 대학과 전자, 소프트웨어, 플랫폼, 금융 업체들은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방직부터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까지 미국의 "물리적" 생산의 대부분은 이미 국내적 경쟁력마저 완전히 잃었거나 반도체처럼 이제 점차 중국에 추월을 당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미국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당연히 문제가 컸습니다. 일단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학지 생산도 외국 경쟁에 잠재적으로 노출돼 있고, "영원한 우위"는 없습니다. 연구의 자유 등이 중요한 인문사회과학을 제외하고 STEM만 이야기하자면, 중국이 최근 매년 부여하는 STEM 박사학위의 숫자 (7만개 이상)는 이미 미국의 거의 2배나 됩니다.

미국의 학계나 소프트웨이 생산에 "외국 인재"들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외국 인재"를 쉽게 유치할 수 있었던 시대도 이미 몇년 전부터 그 종식을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이후 예컨대 80%의 중국인 유학생은 결국 조국으로 귀환하게 됐습니다. 고임금과 안전적 중상층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이제 미국만이 아니란 이야기죠.

스웨덴의 Spotify의 성공이 보여준 것처럼, 미국 업체는 아니더라도 영상 및 음악 콘텐츠 제공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국채 규모가 GDP122%나 되는 상황에서 과연 미국 국채에의 투자가 어디까지 안전한 것인지 Nordea 같은 외국 은행들의 애널리스트들이 이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 현 미국의 국제 분업 참여 모델에는 분명 지속기능성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문제는 일자리 창출 효과의 한계성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IT 산업의 전체 고용의 규모는 3백만 명이며, 금융/보험 산업 역시 대체로 그 정도입니다. 한데 이는 미국 전체 피고용자 총수 (133백만 명)4-5%밖에 되지 못합니다. 공업이 쇠퇴하고, 그 대신에 IT, 소프트, 금융이 "신경제"의 중핵을 이룬 미국에서는, 실제로 대다수의 일자리는 이제 저임금, 악조건 서비스 부문 일자리들입니다.

, 미국식의 기존의 경제 모델은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고 다수에게 더 이상 고임금의 안전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불만과 불안의 파도를 타고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가 행정부 권력을 잡기에 이른 것이죠. 문제는, 트럼프가 미국 자본주의라는 "환자""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 만약 지금과 같은 방식과 양으로 처방할 경우 차라리 ""이 아닌 "독약"에 더 가깝다는 점입니다.

이민자 마녀사냥, 외국인 학생 감금과 추방 등은 결국 학계와 IT 산업의 기반이었던 "외국 인재"의 공급에 차질을 빚어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입니다. 대학 연구비 삭감과 대학가에서의 "급진파" 마녀사냥 궁극적으로 몇 안되는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인 대학의 쇠퇴를 가속화시킬 것이고요.

전세계에 대한 적대성의 표명, 특히 유럽 등 기존의 우호 지역들을 겨냥하는 고관세 도입 등은 결국 넷플릭스 등에 대한 불매 운동 등 미국의 전세계 플랫폼 산업의 입장을 더 어렵게 만들 겁니다. 고관세 부과의 공식적 목적은 미국의 재공업화인데, 재공업화가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10-15년이 소요될 것이고,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고, 아무리 미국에서 예컨대 자동차 생산이 좀 늘어도 고관세의 보호무역 세계에서 그 국제 경쟁력은 비교적 낮을 것입니다.

한데 고관세의 효과는 중기, 장기적으로 미국 생산에 긍정적이라 해도,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와 달러화 평가절하일 것입니다. 그러면 국채를 포함한 달러화 자산의 안전성이 떨어져 궁극적으로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치는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채 발행을 통한 미국 정부의 자금 조달 능력이 크게 떨어져 궁극적으로 미 정부의 운신의 폭, 그리고 국제 개입력이 많이 저하될 것입니다.

트럼프주의가 만약 10-15년 지속되면 2040년대의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립적인 사회일 것이고, 더 이상 해외 인재 메카가 아닐 것입니다. 그 플랫폼 서비스부터 그 전자 제품까지 가면 갈 수록 더 많은 경쟁을 받을 것이고, 그 외채는 "고위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라기보다는 주요 통화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그 군사 보호령 (일본, 한국 등)을 계속 보유할는지 몰라도, 유럽이나 중동에 대한 영향력의 상당부분을 상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미 제국의 장기적 이해관계 차원에서는 트럼프와 같은 정책은 거의 "국가 자살"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정책이 집행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 제국 몰락의 국면을 현저하게 드러내는 것이죠.

(기사 등록 202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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