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석
이 글은 지난 9월 13일에 쓴 글을 지금 상황에 맞게 수정 및 추가한 것이다. (단체의 명칭이 바뀌었으니 시점에 따라 ‘노동자연대’ 또는 ‘다함께’로 쓰겠다. 인용문의 모든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이 사건이 폭로된 시점부터 올해 초까지 나도 다함께 회원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연히 이 글은 자기비판과 반성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돌아보기
2012년 11월 16일, 한때 다함께(현재 '노동자연대') 회원이었던 여성 A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것은 C와 B라는 두 명의 남성(이 중 B는 다함께 회원)이었다. A는 학내 운동을 주도하는 C에 대해 다함께 회원들이 ‘방임’적 태도를 취했다고 고발했다.
며칠간 A의 페이스북 댓글란은 난장판이 되었다. 다수의 다함께 회원들이 온라인에서 피해호소인 A와 그 대리인, 그에게 동정적인 개인들을 거짓말쟁이라 몰아붙이며 인신공격을 퍼부었고, 서로 페이스북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근거없는 비방과 욕설로 조직 전체를 모독하고 있다.”, “그 저열한 의도에 짜증날 뿐”, "다함께 조직 전체를 끌어들이려는 A의 의도가 매우 안 좋다" 등등. 운영위원이자 학생조직자 J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두고 봅시다”라는 댓글을 달았고, 또다른 다함께 학생팀 리더는 사건과 무관한 피해호소인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이 사태를 온라인에서 접한 나는 기가 막혔다. 며칠간 사태를 지켜보아도 단체가 이를 바로잡지 않기에, 나는 지회 연락자에게 전화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항의했다. ‘설사 피해호소인 주장이 100퍼센트 거짓말이라도 이런 대응은 안 먹어도 될 욕을 사서 먹는 짓이다. 또다른 가해지목인인 편집장의 진술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가리자는 J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가해지목인과 피해호소인이 다함께 회원과 전 회원인데 어떻게 이게 단체와 무관한 사건이냐? 단체가 공식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당시 나도 A가 거짓말로 조직을 음해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근거가 있으니 그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것이리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A에 대한 연민은 없이, 지도부와 회원들이 어리석은 대응으로 ‘나의 조직 다함께’의 명예를 ‘셀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분개했다. 1
어쨌든 연락자에게 내 주장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 뒤로 이 사건에서 멀찍이 떨어져 냉소적으로 수수방관했다. 당시 내게 다함께의 대응은 이해할 만한, 그러나 창피하고 어리석은 대응이었으니 그다지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다함께 탈퇴 이후
비록 우리가 다함께를 탈퇴했지만, 우리 변혁재장전 모임 중 전지윤 동지(이하 모든 사람의 존칭 생략)는 다함께 운영위원이었으며,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가해지목인 B 등이 우리 모임에 함께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힘겹게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함께 시절의 혼란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C의 행위가 성폭력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C가 야동을 보여 줄 만한 맥락이 있었다는 주장에 솔깃하여 전지윤을 당혹스럽게 했다.) 처음에는 소송을 재고하자고 주장한 것도 전지윤 등 몇 명뿐이었다. 초기에 이 논의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던 나는 솔직히 소송에 대해서는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다. 전지윤이 5월에 제출한 글에도 오류와 혼란이 아직 여러 군데 남아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 토론은 지리멸렬해졌고, 결국 우리 역시 오랫동안 사건 해결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7월 들어 B의 전 대리인의 돌출 행동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가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으며, 8월에 소송 자료들을 입수하면서 소송 내용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우리는 지난 2년간의 소송 자료뿐 아니라 관련 단체들의 주장, 관련자들의 페이스북, 유사 사례에 대한 여성단체들의 경험 등을 샅샅이 모으며 토론과 회의를 반복해 나갔다. 특히 기존에 알고 있었던 다함께와 B 측의 입장뿐 아니라 피해호소인 측의 주장과 자료들도 입수할 수 있었다.
피해호소인 A는 불필요하게 민감한 사생활을 들어 자신을 공격하는 소장의 내용과 변호사, 증인들의 부적절한 질문 등 소송 과정에서 커다란 모욕과 수치심을 호소하는 상황이었다. A 측은 일관되게 ‘법정’이 아닌 ‘운동 내부’에서의 해결을 요구해 왔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소송이 B의 괴로움도 전혀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재판부는 줄곧 ‘원만히 타협하라’며 화해권고와 조정을 수차례나 시도해 왔으므로 객관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며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 준비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에 합의했다. ‘C의 행위는 명백한 성폭력이었고, B가 이를 말리지 않은(혹은 못한) 것은 문제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하지만 우리도 여전히 ‘방관’ 이외의 B의 혐의는 분명히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다함께의 방임 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방어권과 진상 규명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조차 법정이 아닌 운동 내부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3
더구나 이 소송에서 B 측은 인정해야 할 것(C의 성희롱과 자신의 방관)을 부정하기 위해 정당하고 적절한 범위를 넘어서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동지로서 이 잘못을 반드시 말려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소송을 취하하도록 B를 설득하고, 대책위와 협의하여 운동 내에서 나머지 진상의 규명과 문제 해결을 추진하기로 입장을 모았다. 우리는 다함께처럼 이 문제를 ‘개인 간의’ 문제로 보지 않고 ‘단체로서’ 책임지려 했기 때문이다.
소송 등 대응 과정에서 B 본인의 책임 몫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건 초기부터 단체 지도부와 고참 회원들이 사태 해결에 손을 놓은 채 B에게 옳은 충고와 조언을 해 주지 않은 잘못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지도부에 꼬박꼬박 보고하면서 1년 넘게 지속해 온 대응에 다함께가 아무런 책임도 없다면, 그렇게 반 년 넘게 해 온 대응에 우리 모임이 아무런 책임도 없다면, 단체의 '책임성'이란 도대체 뭐가 되는가?)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B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반성하자고 설득했다.
이에 따라 9월 들어 전지윤이 우선 대책위를 통해 피해호소인 A에게 사과했다. B는 우리의 설득을 일부 받아들여 판결 선고기일 연기신청도 했다. 우리는 대책위에 B 측과 대화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결국 B가 소를 취하하지 않으면서 대책위와 대화는 성사되지 못했고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B는 이 문제 등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모임을 탈퇴했다. 4
우리가 좀 더 일찍 사태 해결에 나섰다면 법정이 아닌 운동 내에서의 해결을 실제로 성사시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을 달게 받겠다.
그나마 우리가 남긴 성과는 우선 다함께의 잘못, 우리 모임의 잘못을 돌아보고 평가하여 교훈을 남겼다는 것, 사건의 해결책에 대한 관점을 세웠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성과는 피해호소인 A에게 진솔한 사과를 전달한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던 A의 입장에서는 이조차 너무나 부족하고 불만족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나는 제발 이것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해결을 위한 노력(많은 아쉬움이 있지만)에서 핵심 역할을 한 전지윤은 그동안 다함께 운영위원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 중 하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본인이 강조하듯이 “고통의 목소리를 외면”해서 그 고통을 가중시킨 다함께 지도부에는 전지윤이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나중에라도 철저한 자기비판을 거쳐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 앞장서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다.
나도 여러가지 혼란된 입장을 갖고 있다가 진지한 돌아보기를 위한 토론을 통해 지금과 같은 입장에 도달한 것이니, 다함께 내부에서도 이런 다행스러운 돌아보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가 함께 돌아봐야 할 것들
최근 노동자연대(옛 다함께) 온라인 기사에서 전지윤을 공격한 최미*은 운영위원이자, 여성 문제 담당자이며, 학생 조직자이고, ‘규율과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위’) 위원이다. 한마디로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다함께 오류의 대변자라 할 만하다. 이 단락에서는 최미*의 글이 자주 인용될 것이다.
1. 야동을 보여 준 것은 ‘성폭력’이 아니며, 가벼운 문제라는 관점
“실제로 담배를 피며 인상을 쓰면서 이별을 고해도 성폭력, 이른바 ‘양다리’를 걸쳐도 성폭력이라는 식의 황당한 얘기가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설사 여성의 의사에 반해 야동을 보여 주거나 보라고 부추겼다고 해도, 그것이 성희롱일 순 있지만, 성폭력은 아니다.” (최미*, ‘한 성추문 사건에 대한 이ㅅ* 동지의 글을 읽고’, 2014년 2월)
‘성폭력’이라는 용어에 ‘성희롱’을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쟁점이니 여기서 문제 삼지 말자. 어쨌든 ‘성희롱’이라 규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담배 사건과 ‘양다리’를 언급하며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라니, 최미*이 성희롱의 심각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 단체의 여성운동 개입 담당자로서 이 문제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추문 사건 그 자체가 우리 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서 뛰어들어야 할 중대 사건이어서가 아니다.”
“규율과분쟁조정위원회가 모든 사안을 제소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경중을 따져 보고 자체 면담으로 그칠 수도 있다.” (최미*, 앞의 글)
‘경중’을 따져서 한 결정이라고 하니, 애초에 이 사건은 ‘가벼운 사건’이라는 것이다.
2. 사실관계 확인의 부실함
최미*에 의하면 자신이 사실관계에 대해 “조사”를 실행한 것은 이미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이 시작된 이후인 2013년 3월이다.
“임출넷에서 우리를 배제하려는 페미니스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했으므로, 당사자인 회원 B를 만나 그가 말하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또한, A의 지지모임의 요구도 살펴봤다.” (최미*, 앞의 글)
그런데 또다른 운영위원이자 학생조직자 J는 이미 2012년 11월, 페이스북에서 A를 비난하던 와중에 “사실관계 파악”을 거쳤다고 썼다. J로부터 사건 담당자 역할을 인수한 최미*은 왜 다시 진실을 알아 보아야 했을까? 어째서 조사의 첫 단계인 ‘양 당사자 주장 확인’부터 시작해야 했을까? 그렇다면 J가 언급한 “사실관계 파악”이란 것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최미*이 한 “조사”에 대해서도, A의 주장을 읽고 B의 진술을 들은 것만으로 제대로 된 조사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피해호소인 쪽을 만나보거나 접촉해 보지도 않고 “사실관계 파악”을 온전히 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쨌든 “조사” 결과 최미*은 “B의 무고함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3. 무분별한 ‘피해호소인 비난하기’
이런 전후사정에 비춰 보면 운영위원 J, 또다른 학생 지도부 등 회원들의 대응은 ‘부실한 사실판단에 기초해 무조건 피해호소인을 비난하며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한 행위’가 된다.
J는 ‘1차 가해’ 성립 여부가 불투명하므로 아직 ‘2차 가해’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항변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논리를 뒤집어 보면 ‘1차 가해’ 성립 여부를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2차 가해’에 해당할 지도 모르는 행위를 다수의 회원들이 함부로 저지르고 봤다는 얘기다. 이것은 나중에 ‘1차 가해’가 성립되지 않음이 밝혀진다고 면피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2차 가해’라는 용어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논점 일탈로 빠져 나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5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모든 논의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6
4. 조직보존주의적 대응
다함께 지도부에게 “필요한 만큼”의 대응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자.
“다만, 내가 대응에 나선 것은 부당하게 우리 단체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 진보운동 일각의 잘못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 누구도 이 사건을 들먹이며 공식적으로 우리 단체를 매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 별 장애 없이 활동하고 있다.” (최미*, 앞의 글)
단체의 회원이었던 피해호소인이 회원인 가해지목인에게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양 당사자 모두가 정신적, 물질적 피해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최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직이 매도당하지 않고 별 장애 없이 활동할 수 있으면 그로서는 “필요한 만큼”의 대응은 다 한 것이다. 이 모든 피해와 고통은 ‘상호 비방을 중지하고 다함께가 공식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피해호소인 측의 요구(초기에는 가해지목인 측의 요구이기도 했다)에 다함께가 진지하게 응답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말이다.
5. 무책임한 소송 압박
다함께 내부 회보인 올해 <협의회 자료집>에는 다함께 지도부가 소송을 권유하거나 지지했다는 증거가 있다. “사건 직후 [운영위원] J는 B, ***와 만난 자리에서 B에게 법적대응을 권”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었다. 정황증거로는, 소송이 시작된 이후이지만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 놓은 B에게 최미*이 자문을 할 새로운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는 서술, “나는 최미* 동지에게서 법정 투쟁이 이기면 그 이후에 ‘반격’을 할 계획을 잡고 있다는 언급을 들은 적도 있다”라는 진술 등이 있었다. 이 내용들에 대한 정정이나 반론도 없었다.
그런데 최미*이 최근에 쓴 글에서 제출한 증거를 보니 B의 전 대리인은 “다함께 측”이 소송에 반대했다고 쓴 적이 있다. 다함께의 "지인들"이 소송에 반대했다는 그의 글은 나도 이미 본 적이 있다. 그러니 적어도 "다함께 측"(정확히 다함께 지도부를 가리키는 건진 모르겠지만)이나 다함께의 "지인들"이 소송을 권유했는지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게 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미 소송이 시작된 뒤에는 최미*이 B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소송 수행에 임하라고 강권했다는 것이다.
“… B가 진정 억울함을 풀고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면 본인이 적극 명예훼손 소송에 임하고 … 진실 규명 작업을 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미*, 앞의 글)
나아가, 최미*은 이 사안의 성격 자체를 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설 필요 없고, 당사자 개인의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한 종류의 것이라 규정했다.
“만약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이었다면 나는 그동안 우리 단체가 그랬듯이 신속히 조사하고 사실이 밝혀지는 즉시 제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이 그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나서서 처리해야 할 사안도 아니라고 봤다. 당사자가 소송이나 진실 규명 작업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최미*, 앞의 글)
더 중요한 것은, B가 흔들릴 때조차 소송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최미*이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초기에 소송을 권유했는지 반대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게 된다.
“내가 B에게 행위 주체로서 분명히 의식하며 행동하라고 논쟁한 또 다른 이유는 B가 여러 차례 스스로 소송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B가 정말 본인이 진실하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을 변호할 마지막 수단인 소송을 포기하는 것은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미*, 앞의 글)
2013년 2월의 “조사”에서 B의 결백에 대한 확신을 얻지도 못했다는 최미*은 2014년 1월에도 단체의 권리회원 모두에게 공개되는 글을 통해 소송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그것도 B에 대한 자신의 확신이 옅어진다면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식의 ‘충고’와 의심을 수백 명이 읽을 내부 회보에 공개하는 것이 소송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압박, 강요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7
피해자지지모임은 “단체가 나서서 피해자, 제3의 기관과 함께 창구를 마련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다함께는 명백히 B의 소송을 자신들의 무책임과 무대응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이용했다.
“지금 이 사안은 당사자 개인들끼리도 법적 공방이 진행중인 사안이므로, 더더욱 저희 단체를 관련 단체로 엮는 것은 심각한 음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 12월 27일, 노동자연대학생그룹)
“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고, 만약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면 당사자들의 소송으로 해결하길 바랍니다.” (2013년 4월, 노동자연대학생그룹)
6. 책임 회피
이 사건 폭로 당시를 기준으로, 가해지목인과 피해호소인은 각각 다함께 회원과 전 회원이었다(사건 발생 당시에는 둘 다 회원이었다). 피해호소인에 대한 사생활 폭로와 인신공격 등 온라인상의 집단 가해의 주체는 다함께 회원들이었다.
이에 대해 최미*조차 “***나 ***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불특정다수가 보는 온라인에 폭로하는 행위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연민조차 없는 분별 없는 행동”이라며 사후에 비판했다.
최미*은 “나와 다른 운영위원들은 이 사건에 대한 J의 대응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 최근에 노동자연대(다함께)는 J와 조 모씨를 이 문제로 문책했다는 사실, B를 징계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피해호소인 A를 저주하고 모욕해 놓고는, “몰래” 내부에서 문책만 하면 끝인가? A에게 알리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문책이란 조직의 위신과 명예라는 관점에서 “J의 실수가 사태를 훨씬 악화시켜, B와 우리 단체에게 큰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당시 J 등의 잘못을 순전히 다함께의 명예를 ‘셀프’ 훼손한 것으로 보았다는 자기비판을 다시 강조하겠다) B에 대한 징계도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고려해야 하므로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이 문제를 제기한 피해호소인에게는 알려야 “몰래” 징계했다는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A의 전 대리인에 의하면 피해호소인과 그 지지자들은 지금까지 어떤 사과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다함께 안에서 무슨 비판과 문책이 있었든 간에, 잘못을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하거나 피해호소인에게 사과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으므로, 외부에서는 이 모든 잘못에 지도부의 지시나 묵인, 방조, 혹은 추인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회원이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온라인상의 집단 가해(인신공격과 모욕)는 마땅히 ‘다함께’가 한 일로, ‘다함께 지도부’가 책임질 일로 평가되어야 한다. 최소한 다수 회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공개적인 자기비판적 평가와 사과, 조직 차원의 재발 방지 약속, 이를 통한 단체 밖 대중의 신뢰 회복은 지도부가 책임질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함께 학생팀(노동자연대학생그룹)은 피해자지지모임의 공문에 일관되게 ‘단체와 관련 없는 사안’이라는 답변을 반복해서 보냈다.
“보내신 공문에서 언급한 사항은 저희 단체와 관계 없는 일입니다. … 당사자 개인들끼리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2012년 12월 2일)
당시 다함께 학생팀의 답변은 두가지 면에서 무책임하고 부정직했다.
첫째, 최근 A의 초기 대리인이 지적했듯이 “사건의 주 가해자 C는 다함께와 공동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피해자가 요구한 것은 주로 '다함께가 C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할 것'이었다. … 최소한 그렇게 요청이 들어간 시점에서 다함께는 사건에 대해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째, 피해호소인 A는 분명히 다함께 회원 B를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다함께가 그를 무죄라고 변호하거나 아직 진실을 모르겠다고 답변할 수는 있을지언정 ‘무관하다’고 말해서는 안 됐다.
최미*은 “그[B]의 당당한 대처에 힘 입어 우리 단체도 부당한 비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길 바랐다”고 썼다. 사건 해결의 핵심 주체로 지목된 것은 다함께였는데 정작 돈, 시간, 노력, 명예의 투입과 희생은 온전히 신입 회원 B의 몫이 되었다. 다함께 지도부도 인지하고 있었듯이 피해호소인 측은 B와 그 대리인들을 다함께와 완전히 동일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단체라는 주체가 증발해 버린 곳에서 B는 자기 몫이 아닌, 단체 몫의 비난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나는 여전히 B가 다함께와의 관계에서는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최미*은 회원인 B 또는 비회원인 그 대리인에게 “보고”를 받고, “재판 상황”을 전달받고, “대응과 관련한 중요한 약속”을 잡고, B와 “통화가 되지 않아” 최미*의 “속이 타 들어가는 일도 몇 차례” 겪었다고 한다. 최소한 보고는 꼬박꼬박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당연히 단체가 책임졌어야 할 사건이다.
가해자가 진보신당 당원이지만 피해자는 비당원이었던 사건도 진보신당 당기위가 책임있게 처리했다. 민주노동당의 남성 당원 2명이 여성 당원을 폭행한 사건은 민주노총, 전농과의 연합 수련회에서 발생했지만, 민주노동당은 ‘개인 간의 문제’라 발뺌하거나, ‘이 사건을 민주노동당 폭행 사건이라 부르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실제로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여성 당직자 폭행 사건’이라 불렀다).
‘운영위원이 저지른 짓은 운영위원회 책임이 아니다!’ ‘우리 단체 회원들이 한 일도 단체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소송은 계속해라. 이기면 반격하면 되고, 지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소결 –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해 필요한 것들
“강력한 중앙 지도부가 있는 조직의 장점 하나는 정치적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이 잘못되거나 조직이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면 중앙위원회가 책임을 진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혁명정당과 민주주의’, <마르크스21> 3호)
이 모든 무원칙과 부정직함에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조직을 지도하는 운영위원회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도부 성원들의 책임은 지도부의 책임으로, 지도부의 책임은 조직의 책임으로 궁극적으로 귀속된다. 물론 이 사안의 경우 지도부가 회원들에게 사건을 보고하지도 토론에 부치지도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회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건 담당자들 이외의 운영위원들(당연히 전지윤을 포함해서)은 운영위원들에 대한 운영위원회의 관리책임이라는 공동의 책임, 동조 혹은 방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인신공격과 악성댓글에 동참하고 ‘좋아요’를 누른 회원들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경험 많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던 회원들, 여성문제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일부 회원들은 당시 자신이 접근 가능한 정보의 질과 양, 처해 있던 구체적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를 솔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회 연락자에 대한 전화 한 통 이후 수수방관 한 나 또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느끼진 못한다.
따라서 다함께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 사안을 돌아볼 때는 지도부 비판이 핵심이지만, 당시 회원으로서 지도부의 오류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여 단체의 오류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자기비판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는지 가리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운영위원들과 전지윤 중에는 누구 책임이 더 클까’, ‘회원 X와 Y 중엔 누구 책임이 더 클까’ 따위를 따져 보는 게 지금 의미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아직 반성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사람들과 반성하고 책임지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류를 반성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지금까지의 오류와 철저히 결별하자.
수렁에서 건져내야 할 원칙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민, 공감에서 출발해야
“따라서 저는 우리가 이 문제를 접근할 때 오로지,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만을 보자고 호소드립니다. 다른 그 어떤 것도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상처받고 고통받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바탕으로 이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씻어낼지만 봅시다.
“그러려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만 판단해야 합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풍부한 자료와 정보와 사실들을 조사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 어떤 다른 선입견, 친분, 부차적 고려 사항들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전지윤이 올해 8월에 쓴 글 중에서)
이는 피해호소인, 가해지목인, 심지어 우리와 관계없는 또다른 가해지목인인 C에게까지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조직보존주의 논리에 갇힌 다함께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로서,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이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B에 대해서도, 본인 몫이 아닌 다함께의 잘못에 대하여도 지금껏 십자가를 지고 있었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
피해호소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성폭력 피해의 호소가 제기된다면 우리는, 우선 피해호소인의 고발과 진술을 경청해야 하며, 명백히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진술 및 거동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아닌 성차별적 편견에 근거한의심을 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호소인을 ‘거짓말쟁이’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사건 해결의 방식에 대한 피해호소인의 의사를 고려하고, 절차 참여를 보장하고, 2차 피해를 최소화 혹은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의 제기에서 해결까지 모든 과정에서 피해호소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회복과 치유에 필요한 배려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피해자중심주의’라 부르든 ‘피해자 중심의 접근법’이라 부르든 상관없다.
성차별적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가해지목인의 방어권’이 ‘피해호소인을 비난하고 침묵을 강요할 권리’로, ‘가해지목인의 무죄추정’이 ‘피해호소인의 거짓말쟁이 추정’으로 해석/적용되는 현실에 대한 균형 잡기를 위해 이같은 모색은 여전히 필요하다.
가해지목인 또한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으므로, 함부로 그의 혐의를 기정사실로 전제해서도 안 되며, 그에게 충분한 방어권 및 공정한 판단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심지어 가해자로 이미 판명된 자에게도 익명과 사생활 보호 등 보장받아야 할 인권은 있다.
진지한 돌아보기와 반성을 함께하자
1.
나는 이번 법원 판결을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판결문에 대한 ‘해석투쟁’에는 되도록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내가 보기에 화해권고와 조정을 두번이나 시도하며 '제발 원만히 합의하라'고 했던 이 재판부는 처음부터 진상 규명보다는 싸움을 말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이 재판부가 내놓은, 양쪽이 서로 똑같이 300만 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문은, 더 이상 항소 등 법정 싸움이 이어지지 않도록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언제는 사회주의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이 ‘부르주아 법원’의 판결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데도 순순히 납득하고 받아들인 적이 있었나? 그러니 최소한 운동 내부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수단으로서 법원 판결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점이 처음부터 명백했다. 소송에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다함께 지도부의 기대는 애시당초 허망한 것이었다.
실제로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운동 안에서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면서 사태는 다시 발전하고 있다. 애초부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관련자들의 합의 하에 시작한 절차가 아니었으니 이 또한 뻔히 예상되는 결과였다.
이 상황 전개는 초기의 피해자지지모임의 요구대로 A와 B, 그리고 다함께 등이 대화하고 합의하여 진상 규명과 사태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A만 아니라 B, 그리고 다함께의 입장에서도 말이다.
2.
노동자연대(옛 다함께) 운영위원회는 여전히 단체가 공식적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은 것은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미 다함께는 이 사건이 공개된 첫 날부터 성폭력 2차 가해 단체로 지목돼 있었으므로, 공정한 해결 주체로 인식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지지모임 스스로가 다함께를 문제 “해결 주체”로 인정했다. 피해자지지모임은 “피해자, 다함께, 제3의 기관에서 추천한 인사를 중심으로 공식 창구를 마련하여 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여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2012년 11월 28일) 이때는 아직 형사고소도 실행되기 전이었다.
이 요구안에는 다함께 외에 피해호소인 측, 제 3의 기관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다함께가 진정성 있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 주면서 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함께는 “3.8 기획단 소속 단체들에 진상조사위 구성”을 “공식 요청”했다고 변명하지만 이것은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 피해자지지모임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다함께의 답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에 3.8 기획단에서 귀 조직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제 3의 기관의 진상조사를 받겠다고 제안 했습니다. 귀 조직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피해자지지모임, 2013년 3월 25일)
“일부 여성(진보) 단체에서 이 문제를 연대체 등에서 거론하자 … 피해호소인 말만 믿고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차라리 거론한 단체들이 진상조사에 직접 나서서 진실을 밝혀 주길 바란다고 요청한 것입니다. … 따라서 이것은 이 사건에 대한 우리 단체의 입장 변화를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2013년 4월 2일)
3.
“다함께가 처음에 대책위와 함께 진상조사위를 꾸리는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은 까닭은 대책위의 일방주의적이고 최후통첩식 태도 때문”이었다는 얘기에도 빠뜨린 것이 있다.
첫째, 소송전이 벌어지기 전에 자신들이 내부에서 문책과 징계로 이미 인정한 회원들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도, 피해호소인 측의 태도가 지금과 똑같았을 거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둘째, 진상조사에 대한 다함께의 ‘태도’ 또한 따져 봐야 한다. 사건 폭로 열흘 쯤 후 운영위원 J는 페이스북을 통해 A에게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면서 또다른 가해지목인 C의 진술을 통해 B의 성희롱 여부를 가리자고 제안했다. 이 비상식적인 제안을 A는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자 J는 A가 자신의 “합리적인 제안”을 거부하고 “일부러 영구미제 사건으로 만들어 놓”으려 한다며 “B가 고소를 하든 말든,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세요”라고 썼다.
그 후로 다함께는 이와 다른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지도 않았고, A측의 진상조사 요구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 과정을 보고 회원인 나도 다함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물론 피해호소인 측도 피해자 중심주의의 과도한 적용 등의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호소인 측에 어떤 과도함, 실수나 오류가 있었든 간에, 8 상대의 오류를 자신들 몫의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해 물타기나 핑계꺼리로 이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4.
2012년 겨울에 온라인 비방에 나선 운영위원과 학생팀 리더 등은 얼마 전까지 동지였던 사람의 피해 호소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A를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공개적인 인신공격, 모욕으로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상대의 품성을 깎아 내리고, 의도를 문제 삼았다.
이번에 노동자연대가 발표한 글에서도 인정했듯이 “A의 품성을 들먹이는 것은 A의 호소를 다루는 공정한 자세가 아니고 정의의 실현을 방해한다.” (노동자연대, ‘“성폭력 가해 단체”라는 명예훼손 모략을 중단하라’) 이것은 환영할 만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A에 이어서 이제는 전지윤의 “성품”을 들먹이며(최미*의 최근 글에서)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사람으로 낙인 찍어 공개적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깨달음이 진지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지금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몇몇 개인들의 확인되지도 않은 증언을 기정사실화 하며 전지윤을 공격하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확인되지 않은 증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문제라며 비판한 것이 바로 노동자연대 지도부이기 때문이다.
5.
사태의 본질에서 관심을 돌리려는 논점 비틀기도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안에 대한 비판이 ‘인류의 절반인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몰아서 적대시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이고 박근혜의 파상 공세에 맞서 단결해야 할 시기에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함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자는 전지윤의 주장이 도대체 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는 기회주의’라는 것인가?
‘여성도 성을 즐길 권리와 자격이 있다’거나, ‘포르노를 공격의 표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지당하지만 아무 맥락도 없는 얘기를 들고 나오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비판에 '종파주의적 맥락'이 있다고 강변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폭행 사건이나 비리 사건 등이 고발되고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 다함께 운영위원회가 몇 번이고 명쾌한 성명과 입장을 냈던 그때, 우리는 그 고발과 비판들에 종파주의적 맥락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올바르게도) 한번도 제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엉뚱한 문제(피해호소인의 의도가 뭐냐, 성희롱이 성폭력에 포함되냐, 2차가해의 의미는 뭐냐)를 제기하고 엉뚱한 답변을 강변하다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이제 전지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대리인의 “불순해 보이는 의도”나 전지윤의 “복수심” 따위와 같이 실제로 있지도 않은 부정적인 의도를 읽고 고슴도치처럼 반응해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 것은 차분한 토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우선, 집단으로 선출되어 집단으로 책임져야 할 운영위원회부터 전 운영위원 전지윤과 함께 책임 있는 반성과 사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캘리니코스를 인용해 보자.
“제대로 된 민주집중제 조직에서는 지도부가 제 구실을 다하도록 당 전체가 항상 지도부에 압력을 가하고 지도부의 실수를 바로잡는 구실을 해야 한다.”
노동자연대 지도부와 회원들이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고 자정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 이것은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우리 모임도 지난 몇 달간 내부적 혼란과 손실을 겪으며 힘겹게 이런 일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전지윤뿐 아니라 나도 여러 가지 비판을 받으며 관점을 교정했다. 그것은 필요하고 가치있는 일이었다.
이런 반성과 성찰이 진지하게 이뤄진다면 우리도, 노동자연대도 ‘협력과 연대가 중단돼야 한다’는 가슴 아픈 주장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라 믿는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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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위원과 학생팀 리더’를 ‘다함께 지도부’라 부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 여기까지만 판단한 상태로는 B의 행위는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 방조라 할 수 있고, 당시 그가 대학 신입생이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매우 중대한 잘못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본문으로]
- 다만 A의 공개 폭로 직전 당시 학생지도부 모씨가 A의 문제제기에 진지하게 응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본문으로]
- 참고로, 최미*은 B가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서 자신을 징계하려 하자 불만을 품고 조직을 탈퇴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 B에 대한 갑작스런 소환조사는 분파 활동 막바지에 시작됐고, B가 우리와 함께 집단탈퇴문에 서명하고 나서야 다함께 지도부는 B를 징계했다. B를 매도해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태도는 안쓰럽다 [본문으로]
- 사실 나는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어서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종의 가해가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2차 가해' 용어 논쟁에 몰두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논점을 비트는 것이다. [본문으로]
- 나는 불쾌감을 주는 언어 성희롱까지 포괄하는 용어로서 '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느낌이 '세다'는 불만은 있지만, 어쨌든 이 용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가해행위'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개념을 표현할 마땅한 대체어로 현재 제시된 용어도 없다. [본문으로]
- 최미*이 B의 소송 중단 시도를 의심스럽게 여겼을 수는 있다. 하지만 B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소송을 계속하라는 압력이 될 언행은 최소한 하지 말아야 했다. 최미*의 글에서도 “피해 호소 여성이 조사 과정에서 느낄 수치심” 등에 대해 우려하지 않았던가? [본문으로]
- 이를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지금의 맥락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만약 노동자연대를 “성폭력 가해” 단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정확하고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 단체 차원의 모종의 ‘가해’가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위해 들먹이는 것은 옳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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