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민족주의', '폐쇄성' 등을 자주 거론하지만, 사실 근대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 가시적인 '외부적 타자'들과 마주치는 게 점차 일상이 됐습니다. 시작은 아마도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상인들의 청나라 군대와 함께 이루어진 한반도로의 진출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극소수 귀화자 이외에는 '상주 중국인'이 없었는데, 근대의 도래와 함께 판이 바뀐 거죠. 이미 갑신정변 그 당시에는 조선 각지에서 약 4500명의 일본인이 있었지만, 식민지 말기에는 80만명이나 됐습니다.
경성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재조 일본인이었는데, '타자'의 존재는 그 이상으로 더 뚜렷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6.25 이후에는 외국인 '민간인' 숫자는 아주 크게 줄어도, 1960년대 같으면 주한미군은 6만 명이나 됐던 것입니다. 그 기지를 중심으로 '기지촌'들이 생기고 그 기지촌에서 이루어진, 성매매를 포함한 각종 장사들은 196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가장 큰 외화 수입 원천이었습니다. 그 당시로 치면 기지촌은 한국 경제의 '수출 동력'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요즘 '외국계 인구'가 많이 늘어난 것은 근현대사 차원에서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외부 인구'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겁니다. 기존의 지배적 범주이었던 '화교'나 '주한미군', '코시안' 등에, 수많은 새로운 범주들이 추가된 셈이죠. 저는 여기에서 이 주요 범주들을 나열하여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획득한 '신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스테레오타이프 등을 적어볼까 합니다:
1. 재한 화교, 139년 역사의 외국인 집단. 해방 직후에는 한국 무역의 절반이나 담당했던 엄청난 경제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그 뒤 역대 정권의 억압책으로 음식업 등으로 몰리고 그 숫자도 이민 등으로 크게 준 것입니다. 지금은 불과 1만8천명 정도입니다. 정부가 '다문화'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다문화 기구인 화교 학교의 예산을 별로 보태주지도 않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복구'됐을 때에 화교 주민들의 의견 수렴 한 번 없었습니다. 정부에 의해 완벽하게 '무시'를 당하고, 주변화를 당한 집단이죠.
2. 구미권 및 일본 계열의 비한국계 이주민들. 아마도 전체적으로 이주민들의 여러 범주들 중에서는 '차별'을 가장 '덜' 받는 그룹인데, 그 안에서도 여러가지 교묘한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안에서 보면 '투자자 및 고급 전문가 (변호사, 교수 등)'의 소그룹은 아마도 한국 사회의 상류층이나 중상층에 준하는 신분을 부여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주로 여성인 '결혼 이주민'들이 젠더와 국적 차별이 중첩되는 경우를 경험할 수 있는가 하면, 가장 하위 그룹인 '하급 사무직' (학원 강사 등)은 사실 '불안 노동자'에 가깝습니다. 거의 전부 계약직이며 한국어 구사 능력의 부재 등의 약점이 많은 만큼 흔히 부당 노동 행위를 당하곤 합니다.
3. 구미권 및 일본 계열의 한국계 이주민들. 한국으로 귀환 이주한 구미권 (주로 미국)과 일본의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입니다. 비한국계 조선인 디아스포라 (구소련 고려인 및 중국 조선족)에 비해서 '차별'을 '덜' 받는 것이지만, 내부자도 '완전한' 외부자도 아닌 '중간적' 존재인 만큼, 획일성 지향이 아주 강한 한국에서는 흔히 이런저런 차별 대우를 당합니다.
예컨대 아무리 영어를 완벽하게, 모어로 구사해도 한국인 고용주들의 눈에는 재미 교포 2세보다 백인 미국인은 더 '원어민'에 가까워 어학 계열에서의 취직 경쟁에서 재미 교포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는 재일 조선인의 경우에는 과거에 아주 흔히 '간첩' 조작 사건에 희생되는 등 그들의 정치적 '충성'은 늘 의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컨대 전국 대학에서 교수로 취직돼 있는 재일 조선인의 수는 극히 적지요.
4. 세계 체제 준주변부 출신의 기술 인력: 인도나 러시아, 과거 동구권 출신의 엔지니어 등을 일컫는 것입니다. 비교적으로 숫적으로 작은 집단이고 한국 언론에서 잘 노출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삼성 등을 위해 일하는 이 분들은 구미권 출신에 비해 임금 차별을 당하고 신분은 계약직이기에 보통 한국에서 몇년 '고생'을 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지향들 합니다. 그들이 한국의 과학, 기술 발전에 '필요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정주'를 가능케 하기 위한 노력을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거의 안하고 그저 사람을 쓰다가 버리는 식으로 일관합니다.
5. 중국 및 구소련 계열의 비한국계 조선인 귀환이민자: 중국 조선족 (약 80만 명)과 구소련 출신 고려인 (약 8만 명)을 합친 범주입니다. 고려인들은 비교적 '덜' 언론에 노출되지만, 중국 조선족은 아마도 외부자들의 여러 범주 중에서도 가장 심한 '몰이'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미 갈등 첨예화의 상황에서 '미국 편'에 대한 소속 의식이 강한 한국의 주류가 중국 동포들의 중국 국가에의 귀속 의식을 '이질성 요소'로 삼기도 하지만, 중국 동포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상당부분은 계급적이라 보면 됩니다.
그들의 습관 (흡연, 간헐적 고성방가 등등)은 중산층 한국인들에게 한국인 하층 노동자들을 연상시키는 것이죠. 특히 한국의 대중 문화에서 조선족을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하는 패턴은 피해자 본인들에게 가장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일부 조선족 차별의 패턴은, 일본 우익이 재일 조선인을 차별하는 방식 ("북한과 연계돼 있는 존재' 프레임 덮어씌우기, 범죄집단으로 묘사하기 등등)을 그대로 따르는 듯합니다.
6. 세계 주변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 약 60만 사업장의 16만8천9백명 정도, 주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 등 국적입니다. 비교적 외국인 숫자가 많은 공장에서는 한국인 비정규직과 거의 엇비슷한 수준의 차별과 착취를 당하지만, 고립된 농어업 외국인 노동자, 그 중에서는 특히 여성은 거의 '현대판 노예'와 같은 처지에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 10-11시간 일하고 한달에 1-2일만 쉬고 컨테이너에서 거주하고, 폭력이나 폭언, 성희롱에 시달리고... 상상을 초월하고, 거의 "시한제 노비제"라고 말 할만합니다. 이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원칙상 3-4년 이상 체류하지 못하고 무조건 출국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불안 노동 착취로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는 한국적 시스템에서는 그들은 '태생적 비정규직'들입니다.
7. 세계 주변부 출신의 결혼 이주민들: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쓰다 버리는' 식 착취의 대상이지만, 숫자가 거의 비슷한 (약 16만 명) 결혼 이주민들 (주로 여성들)이 동화 정책의 대상입니다. 그들에게 국가나 국가 지원을 받는 시민 단체 등이 한국어와 '한국식 예절' ("시어머니에게 큰 절하기")을 가르치고, 그들이 '인구 정책' 도구로 쓰이는 셈이 됩니다. 물론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모욕이나 폭력 (2017년 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그들의 가정 폭력 피해 경험 비율은 약 42% 정도입니다)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외의 다른 범주들도 있지만, 주요 범주들은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습니다. 그들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방식은, 대체로 한국 사회 자체 안에서의 계급적, 문화적, 젠더적 등의 차별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가죽이 하얗고 영어 발음이 완벽하고 돈이 많은 미국 투자자는 한국 사회에서 '강남족'이나 그 이상의 대우를 받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반면 영미권 출신의 학원 영어 강사들이 겪는 부당 해고나 임금 체불, 성희롱 등의 문제들은, 크게 봐서는 불안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인 하급 사무직들이 겪는 문제들과 본질상 그리 다르지도 않습니다. 중국 조선족에 대한 차별은 상당부분 한국인 하층 (일용직 등)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패턴을 방불케 하고, 이민 여성에 대한 태도 (인구 정책 도구로 이용하려는 국가의 태도 등) 역시 한국 국가의 여전한 가부장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결국 한국에 들어온 '타자'들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과 부딪치게 되는 셈이죠. 불안 노동부터 직장에서의 갑질, 폭언/폭력의 문제까지요. 단, 이미 인구 감소가 시작된 한국에서 예컨대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정주를 애써 방해하는 것은 도대체 뭔 작정인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민자들이 사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데, 사람을 '쓰다 버리는' 패턴에 대한 한국 관료들의 집착은 놀랄 만도 하지요...
(기사 등록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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