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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성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책임: ‘피해자를 응원합니다’를 넘어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3. 18.

성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책임: ‘피해자를 응원합니다를 넘어서

참고문헌없음프로젝트와 봄알람 하차에 관한 두 가지 단평

 

윤미래

 

 

플래시백이 너무 심하고, 그래서 지금 내 판단이 과연 이성적인가 확신할 수 없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 다물려고 했지만 도저히 못 참겠어서 글을 적었다. 이슈가 완전히 지나가기 전에.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먼저. 이 사태는 당사자나 봄알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지금 봄알람, 참문없이 다 잘못했다는 말로 사태를 요약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성폭력이라는 맥락적이고 입체적인 문제를 절대로 다룰 수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가해와 피해가 교차될 때 주변인과 연대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방 안의 코끼리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정리가 되는가. 아니면 거기에 대한 고민은 오로지 단체의 몫이고, 다른 사람들은 누가 선악과 피아를 지정해주면 대열에 맞추어 비난하거나 위로하거나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봄알람, 참문없의 대응에 잘못된 부분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봄알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번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과연 더 낫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갈등을 키우고 감정의 골을 깊게 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풀어나가는 데 성공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아니,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욕을 먹고 하차해야만 했을 거라 확신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작업을 위한 도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담론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선악과 피아의 납작한 이분법에 맞는 단죄와 비난의 언어, 당파를 선택하라는 압력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은 아주 단순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규정할 수 있다. 해결이 실패하는 건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무책임, 편견, 집단사고, 또는 관료화된 조직의 관성 같은 사람의 문제 -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람이 아니라 원칙과 담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건의 진상과 성격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당사자와 주변인들 및 지켜보는 사람들에게서 명확한 발언들이 몇 나와 있고, 그 중 일부는 대단히 문제적이었으며, 시정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열어야겠다.

 

만약 이 전제가 틀렸다면, 가령 한쪽의 진술이 완전히 거짓이거나 해서 내가 일방 폭력을 쌍방 폭력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은 또다른 가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런 식으로 논의가 정리되어서는 정말로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읽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는 당사자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다. 이것은 사건 전체에 대한 요약이 아니라 복잡하게 오고갔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 내가 판단하고 말을 얹을 수 있는 일부에 불과하고, 이 이야기의 기록은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 훨씬 신중하고 균형 잡힌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논란이 된 부분 중에 이런 게 있다.

 

AB는 연인이었는데, A는 결별 과정에서 B에게 한참 동안 수없이 많은 뺨을 때리며 강도 높은 데이트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BA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알고 이를 문제제기했다. A, 잘못을 인정하나 자신은 이 폭행 이전에 B에게 성폭행과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으며 사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선후관계를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B는 이것이 너는 맞을 만했다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항의했다.

 

A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나는 A의 요구도 B의 항변도 각각의 사건의 피해자로서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A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입은 피해로 인한 분노를 참작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단순하게 연애에서의 갑을관계를 이용한 횡포로만 평가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B가 자신을 그런 심리로 몰아넣을 수 있는 메시지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내가 당한 모든 일은 내가 그 사람에게 잘하지 못해서야라는 자책에 빠지기 너무 쉽다. 때로 정당한 문제제기에 반발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방어 태세를 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피해자는 그 정도 자기보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태의 해법이 누가 혹은 진짜로피해자인지 가리는 것이 아님은 굳이 말할 필요 없이 모두가 알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서 두 사건을 분리해서 다뤘어야 한다거나 사건을 은폐하는 듯한 오해를 사지 않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평가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과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을 어떻게 떼어내서 다룰 수 있는가. AB의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은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차하고 있고 그것을 교차하는 것으로 다루지 않는 해결은 결코 충분히 정의로울 수 없다.

 

주변인들과 소속 단체가 했어야 할 일은 각각의 요구의 합리적 핵심을 포착하고, 그것을 두 당사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양자가 동의할 수 있는 서사를 조심스럽게 구성해내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할 수 있는 만큼 집요하게 과정을 지켜보되, 섣부른 말 얹는 걸 피해야 했다.

 

가볍지 않은, 또 명백한 가해 행위가 있으니 이런 과정은 당연히 비판을, 그리고 때로는 단죄까지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것이 어느 한 당사자를 적으로 몰아 배제하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필사적인 노력이 또한 필요했다.

 

더구나 연애관계에서의 폭력을 논하는 한 결국 당사자들의 사생활, 성생활을 넘나드는 내밀한 정보들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건을 비공개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어디까지 공유할지 충분히 협의해야 할 이유는 된다. 요컨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사자도 주변인들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지켜봐야 한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곧바로 판단으로 달려간 사람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가 발화된 순간 봄알람을 2차 가해나 최소한 책임방기를 한 주체로 규정했고 피해당사자 B의 다소 무리한 2차 가해 규정을 그대로 수용해 A와 봄알람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A의 피해호소 자체를 가해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며 책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명백하게 부당하며 마지막에 나열한 행동은 피해호소를 틀어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들이 사건의 해결, 당사자들의 치유보다 자기만족을 우선하는 태도라고 일축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분노를 배출하는 데 바쁜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이 부당성에 기여한 많은 이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식으로 성폭력을 대해야만 이 사회가 더 나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랬다 생각한다.

 

객관성, 이성, 판단 따위의 말들을 여기에 들이대서는 안된다고. 성폭력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남성과 여성,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전선이 있을 뿐이며 문제는 거기에서 어느 편에 서는가라고. 피해자중심주의는 애초에 그런 인식 위에서 출발했고 그 도식에서 피해자의 편에서 가해자와 싸워 물리치는 것 이상의 행동강령을 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양쪽 모두 피해자인 경우가 각본에 없으니, 양쪽 당사자 모두가 피해를 말하는 순간 한쪽을 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결과가 아니다. 나는 피해자중심주의만 금과옥조처럼 되뇌면서 일체의 비판과 수정을 남성중심주의로 몰아붙여 금기시해온, 혹은 그것을 침묵으로 승인해온 우리 모두가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봄알람에 돌을 던질 힘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나는 지금 운동 내에서 곧잘 사용되는 방식의 피해자중심주의가 피해자보다는 주변인을 편하게 만들 뿐이라 생각한다.

'피해자 외의 누구도 사건에 대해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말은 역으로 최악의 책임회피다. 피해당사자에게 서사를 쓸 권한을 위임하는 것, 감히 다른 사람이 자기 시각으로 판단하고 비판해서는 안된다며 피해당사자의 해석을 그대로 삼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이 편리함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역설적으로 고스란히 피해당사자다. 자기 피해를 발화하기도 힘겨운 상황에, 내가 어떤 상태이고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혼란스럽기 일쑤인 상황에, 그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을 혼자 떠맡으라고?

 

지금 당장 나를 찢어놓는 고통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까지 생각해서 모두에게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력 사이에서 찌그러져 죽든지, 아니면 무엇이 정의인지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해버리든지, 둘 중 하나 택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고, 자신의 주체성과 지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기 선택을 지고 나갈 힘을 되찾을 수 있다고 당신들은 정말로 믿는가.

 

피해당사자는 자기객관화가 안되고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많은 경우 피해당사자는 사건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피해당사자의 치유를 위해서도 공동체에 정의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피해당사자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은 필요하다. 당사자의 판단을 대리하거나, 주도권을 빼앗거나, 섣부른 통념으로 당사자의 입장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피해자중심주의의 문제의식 일부는 여전히 옳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피해당사자도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숱한 혼란과 실수를 겪는 사람이고, 자기객관화에 실패할 수 있으며,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뿐이다. 더구나 상처받은 사람, 그 상처를 발화하며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자기 잘못을 부정하고, 상황을 과장하며, 불비례한 처벌로 가해자를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쉽게 찾아온다.

 

그것은 죄악이 아니다. 회복에 수반되는 단계다. 그것이 고스란히 정의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책임이 피해당사자의 이성과 선의지에만 맡겨져서는 안된다. 주변인들이, 공동체가, 지켜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정도와 방식으로 그것을 나눠 져야 한다.

 

그건 자기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많은 것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다. 의견 충돌과 갈등과 의심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피해자의 말에 적극 찬동하며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을 피해자 혼자서 해야 한다.

 

내내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분노를 토해내지 않으려고, 사리에 맞는 말만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러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다 모르겠고 나는 아프고 화가 나고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는 자신과 모두를 위해 가장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는 자신으로 찢어져 영원히 분열하면서. 누군가는 이게 뭐 어렵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나 또한 당사자이고 완벽히 자기객관화하고 있다는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이 말들을 지금 꼭 해야만 했다. 이 사건이 '봄알람의 무능한 대응'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정리된다면 우리는 다음 기획에서도 같은 암초에 걸려 넘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확신하니까. 그렇게 되고 말 거라는 생각에 지난 며칠간 너무 많이 괴롭고 절망스러웠다.

 

나는 정말로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이건 전체 운동을 생각하는 주체의 말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보고 또 보면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개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나는 전체를 대변해서 생각하고 말을 할 힘과 자신감이 더 남지 않았고 그저 트리거에 맞닥뜨리는 데 너무 지쳐서 이제 고통을 그만 겪고 싶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욕구는 정의에 반하지 않는 것 같다.  

 

관련기사)  

 

현장 취재 -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토론회 http://www.anotherworld.kr/261

 

 

상처 치유와 신뢰 회복의 길을 함께 찾아가자 http://www.anotherworld.kr/257

 

 

더 늦기 전에 함께 반성하며 이 고통을 끝냅시다 http://www.anotherworld.kr/117

 

 

 

 

(기사 등록 201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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