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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서울대 점거농성 폭력진압 - 대학의 죽음을 애도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3. 14.

윤미래

 

 

 

 

다친 새가 땅바닥에 떨어져 피를 흘리며 떨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요구하며 본부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152일차. 본부 직원들과 청원경찰들이 사다리차와 전기톱을 동원해 본부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너희는 이제 끝났다’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라같은 비웃음을 날리며 저항하는 학생들을 강제로 붙잡아 끌어냈다. 많은 학생이 다쳤고 한 명은 실신해 실려갔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이들 일부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다 학생들에게 직사하기도 했다. 친구가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진이 SNS에 돌고 있다. 물대포를 보는 순간 백남기가 떠올라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앞사람을 감쌌다고 그녀는 말했다. 총장은 학생들의 피해는 과장되었고 물대포는 학생이 쏜 소화기에서 나온 분말을 치우기 위해 쏘았다는 내용을 품위 있는 말로 가다듬어 단체 메일과 팝업창 메시지를 쓰는 데 열을 올리는 중이다.(우리는 용산참사 때 경찰측이 새총과 시너를 언급하며 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날 대학신문 기자들은 편집권 침해에 항의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백지 호외를 발간했다. 이것도 시흥캠퍼스다. 주간 교수가 시흥캠퍼스 문제에 대한 보도를 축소하고 별달리 보도할 만한 내용도 많지 않은 개교70주년 기사의 비중을 늘리고 1면에 올리라고 압력을 넣었고, 기자들이 사임을 요구하며 항의하자 광고 수주 계약을 인준하지 않아 대학신문을 재정적으로 파탄시켰단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반도체노동자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활동에 대한 기사를 노동자 입장에서만 쓰여졌다며 임의로 기사를 잘랐다고도 했다. 그는 현대민주주의를 강의한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철거 현장에서 토건 자본이, 파업 현장에서 사측이 이런 짓을 한다. 경찰과 용역을 동원해 사람들을 폭행하고 끌어내고 사태를 축소해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게 하려고 힘을 쓴다. 짓밟는 강자와 저항하는 약자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할 것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좌편향이라고 매도한다.

 

우리는 이런 행태들을 보고 매번 분노할지언정 놀라지는 않는다. 토건 자본에게 생존권이니 주거권 따위가 중하지 않고 사측에게 노동3권 따위는 치워버리고 싶은 장애물이라는 것을 익숙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이윤이 중요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서울대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우리가 충격받는 것은, 사회적 부가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조차도 최소한 대학은 뭔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사회적 공공성에 복무하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3일 전 후배들이 끌려나온 그 자리에 6년 전 내가 있었다. 법인 서울대가 막 태어나려는 시기였다.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당신들은 서울대를 주식회사로 만들고 있다고 소리쳤었다. 저항은 무산됐고 법인은 출범했다.

 

2009,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법인화에 대한 토론회를 방청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학생 대표와 노동자 대표는 기초학문 고사와 공공성 붕괴를 우려했다. 심지어 찬성 패널로 나온 교수 중 한 사람까지 나는 대학에 대한 사회의 감시, 견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법인화를 지지하는 입장인데 지금 추진되는 법인화는 취지가 전혀 다르다며 본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맹공을 당하던 유일한 실질적 찬성 패널은 대놓고 말했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 등록금 안 올리고 임금 안 낮출 테니 좀 협력해서 가보자.

 

그 모든 것을 듣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굳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휘황한 강당에서 쫓겨난 지성이 집 잃은 제비처럼 떨고 있다, 라는 일기를 썼던 것을 기억한다. ‘경쟁력 강화’ ‘글로벌 마인드’ ‘브랜드 가치따위의 언어들로 도배된, 법인화에 대해 본부가 발표한 자료들을 읽으면서 나를 부풀게 했던 기대들이 몇 번이고 거듭해서 무너져내리던 것을 기억한다. 합격통보를 받고 이제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보탬이 될 사람이 될 거라고, 그것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 마침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던 것을.

 

10년째 시흥캠퍼스 사업을 논의해온 법인 서울대의 본부는 시흥캠퍼스가 어떤 교육적 목적에서 필요한지, 거기서 누가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운영비는 어디서 댈 것인지 여전히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키즈카페, 호텔, 실버타운 같은 수익사업에 관한 구상만 즐비하다. 아무도 관악캠퍼스와 동떨어진 시흥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던 의무기숙제도가 끈질기게 논의되고 있다. 레지덴셜 칼리지 같은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쉽게 말해 재수 나쁜 학생들이 1학년이라거나 외국인이거나 특정 단과대 학생이라는 죄로 다른 학생들과 따로 떨어져 시흥에 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관악캠퍼스의 학생이 1학년 수업이나 영어강의, 혹은 시흥에 있는 단과대의 수업이 듣고 싶으면 서울에서 시흥까지 가야 한다. 여기에 시흥캠퍼스 주변에 아파트를 조성해 투기이익으로 건설비를 댄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사업 자체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훼손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포착한 학생들이 천막농성, 삭발, 단식까지 하면서 반대했지만 본부는 이를 싹 무시했다.

 

대체 필요성도 불확실한 캠퍼스를,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확장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별 이유가 필요없었을 것이다. 어떤 자본주의 기업도 수익성 있는 사업을 확장하는 데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대한민국 학벌 카스트의 정점. 이름만 붙어도 권위가 생기고 돈이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관악산의 공간적, 생태적 한계에 막혀 있는 관악캠퍼스 안에서만 굴려먹자니 어느 기업가라도 답답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땅과 건물이 공짜로 생긴다면야, 이야말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이요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기회가 아닌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서울대의 교수가 옥시 화학제품의 유해성, 유독성을 감추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온 나라가 술렁였던 것이 불과 작년이었다. 자본과 학문의 결탁은 아주 쉽게 학문을 사회악으로 만든다. 대학이 수익사업에 의존할수록 연관된 기업의 목청은 커지고 학문의 자율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참과 거짓을 가르는 것보다 기업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삼성 사업으로 예산을 대는 대학에서 반도체 공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대그룹의 산학협력에 운영비를 의존하는 대학의 교수가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나 유성기업, 동희오토의 쟁의행위에 대해 현대 사측에 비판적인 의견을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법인 서울대이고, 진리니 사회 정의니 인류의 진보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기업의 책무가 아니다. 법인 서울대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와 산업계와 더 많은 관련을 맺어 더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명사들을 초빙하고, 더 멋진 건물들을 올리고, 대학 순위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 말하자면 서울대학교의 브랜드 가치’(그리고 그와 함께 서울대학교 교수진과 졸업생, 재학생 모두의 몸값)를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법인 서울대가 처음부터 내걸었던 목표이고 기치였다.

 

고상한 척하지 말라고, 대학은 흙 파먹고 살라는 말이냐고 누군가는 반박할지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연구를 지원하고 교수와 직원들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일, 강의실을 유지·보수하고 컴퓨터며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일, 장서를 관리하고 신간 서적을 들여놓는 일, 학술행사나 회의를 여는 일 같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기대하는 대학의 업무도 돈이 없으면 안 돌아가고 한국 정부는 고등교육에 돈을 쓰는 데 지극히 박하니까.(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예산 비중은 OECD 최하위권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이, 학문이, 지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일말의 철학이라도 있다면 그러한 현실에 같이 맞서야 한다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늘리자고 사회를 설득하고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그렇지 않은가.

 

2017311, 법인 서울대는 학원 내 비폭력의 전통마저 벗어던짐으로써 완연히 기업으로서의 민낯을 드러냈다. 강의실 바깥에서 새처럼 찬바람에 떨던 대학의 소명은 이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지면에 누워 있다. 현실은 스스로를 웅변하고 있고 나는 더할 말이 많지 않다. 그저 법인 서울대가 완성되었음을 축하하고, 우리가 사는 현실을 애도하고,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지지와 연대를 보낼 따름이다.

 

그러나 법인 서울대의 경영자 여러분이 이것만은 새겨들었으면 한다. 어떤 폭력과 기만도 인간성과 정의를 부르는 목소리를 영원히 잠재울 수 없다. 이윤 앞에서 하찮게 내던져지고 있는, 그러나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가치와 요구들이 언젠가는 이윤을 중심에서 밀어내고 자기 몫을 찾고 말 것이다. 지금 당신들과 싸우고 있는 학생들이 바로 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기사 등록 201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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