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1. 집회 신고 때문에 오후 늦게 급하게 서울의 한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경찰을 기다리려고 민원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대사가 매우 거슬렸다.
"윤석열 탄핵 되면 한국은 공산국가 될 것 같아요."
"맞아맞아 지금 탄핵 된다는 사람들 공산화 되서 강제로 수용소 끌려 가 봐야 정신 차린다니까"
"들었어요? 올 7월에 중국이랑 좌빨들이 세월호 같은 사고 고의로 일으켜서 중국 업체 불려서 인양 작업하면서 돈 뜯어먹으려고 한대요."
"들었어. 중국좌빨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
이런 얘기를 조곤조곤 진지하게 듣는 것이 슬슬 짜증이 날 때 쯤 경찰이 돌아왔고, 신고접수증 받고 그 사람의 탈을 쓴 생물체들을 보지도 않은 채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2. 문득 며칠 전 있었던 "우익과 친구먹기" 논쟁이 생각났다.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2)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가깝게 이르는 말
3) 어른이 나이가 어린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
그러니까 우익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도록, 가깝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하자는 건데, 이런 말을 하려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랑 다르면 걸핏하면 좌익 빨갱이 친중으로 모는 사람과 친구 먹기를 실천할 수 있는가?
오랫동안 세월호 이태원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고 지금도 세월호를 다른 쪽으로 꿰맞춰서 모욕을 멈추지 않는 자들과 친구 먹기를 실천할 수 있는가? 퀴어 문화축제든 성소수자 행사 때마다 등장해서 "항문섹스가 어쩌고" "우리 집 며느리가 남자" 식으로 진탕을 부리고 그 혐오적 행태를 실천으로 일으키는 자들과 친구 먹기를 실천할 수 있는가?
장애인 혐오도 서슴치 않아서 이젠 장애인 혐오 단어로 "하는 짓이 전장연이네" 식으로 전장연을 아예 혐오 도구로 사용하고 함께 살자고 외치는 장애인에게 "다리 하나 더 부러뜨려 줄까?"로 협박하거나 실제로 찾아와서 여성 활동가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투쟁 현장에 "전장연 1조원 처 먹으려고 저러는 거다"라고 피켓팅하는 자들과 친구 먹기를 실천할 수 있는가?
3. 솔직히 그런 사람들을 수십년간 마주하고 심지어는 피해를 입어 본 입장으로서, 그리고 저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서 생긴 탄핵이란 정국을, 혐오와 배제가 가득한 정국을 마주하는 입장으로서 그런 쉽게 내뱉는 것 같은 말들이 공허하다.
특히 나는 같은 윤석열 퇴진 깃발 아래 있으면서도 "윤석열 퇴진"과 "이재명 당선" 외엔 다른 말들은 기다리라고 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시민과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어렵고, 함께 지하철에서 쫓겨나면서도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에게도 괜히 말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줄까봐 어려운데 그냥 텍스트로 "노오력이 부족하니 저런 사람과도 친구 먹어라."라고 훈수 두는 듯한 것이 불편하다. 노력이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모욕도 배제도 심지어는 생존을 부정하는 위협까지 받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우익과 친구 먹자는 말 역시 위협으로 느껴졌다.
4. 지금도 거리에 나온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기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 사람들의 노력이 쉽게 쓰여진 글로 재단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떻게든 거리에서 지금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노력이 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함부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함께 친구 먹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 당장 '전장연'을 장애혐오로 쓰고 그외에도 버라이어티한 혐오와 배제를 하고 빨갱이를 죽어도 된다고 하는 생물체와 맞서 내 옆의 시민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고민만 가득하다.
(기사 등록 20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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