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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2

차별하고 조롱할 '자유'인가, 저항하고 연대할 자유인가 전지윤 프랑스에서 벌어진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다. 테러리스트들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며, 지배자들이 차별과 억압을 강화할 빌미만 줬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워 온 하마스도 “의견과 생각의 차이가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이번 테러를 규탄했다. 하지만 1월 11일 파리에서 진행된 ‘반테러 대행진’의 맨 앞에 선 자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테러를 자행하고, 가장 심각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눌러 온 자들이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에 반대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위선적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바로 지난해, 가자에 군사적 테러를 가해서 수천 명을 학살한 장본인이다.. 2015. 1. 14.
마녀사냥의 기억과 상처, '5일의 마중' 전지윤 지난 연말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 조양원 씨의 부인 엄경희 씨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았다. “얼마 전 '5일의 마중'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 [그리고] 바로 남편의 사진을 찾아 제 수첩에 붙였습니다. 남편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섭니다.” 나도 몇 달 전 그 영화를 본 적이 있기에 엄경희 씨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됐고, 그 심경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 노동교화소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남편이 부인과 딸이 사는 집으로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부인은 당국의 감시와 압박 속에 문을 두드리는 남편을 외면해 버린다. 심지어 어린 딸은 아버지가 혁명의 배신자라 믿고 당국에 그를 고발한다. 남편이 보낸 쪽지를 보고 뒤늦게 기차역으로 나가는 부인.. 2015.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