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역사에 법칙이 있다면 '혁명은 단기적으로 필패, 장기적으로 필승'이라는 법칙은 그 중에서는 하나입니다. 일단 '당대'에 있어서는 혁명의 애당초의 이상적 프로젝트는 늘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영국은, 혁명을 주도한 청교도들이 꿈꾼 이상적 신앙 공동체로 발전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나 "박애"는 이미 1793~4년에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됩니다. 혁명을 지속시키자면 자코뱅파의 혁명 독재가 바로 '자유'와 '박애'부터 희생시켜 징병제와 같은, 꽤나 억압적인 근대적 제도들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러시아 혁명의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제대로 태어나서 발육되기도 전에 내전의 화염 속에서 죽고 말았죠. 1921년에 크론슈타드의 병사 (수병) 소비에트가 볼셰비키당을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하자 이게 '반란'으로 딱지 붙여져 바로 진압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당-국가 통제 시스템의 초기적 모습은 이미 1920~21년에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거죠. 중국 혁명의 애당초의 '소비에트식 민주주의 꿈'은? 이미 1931~34년 중국 중앙혁명근거지, 즉 모택동과 주덕의 '강서-복건 소비에트 지구' (閩贛蘇區)는 '민주주의'보다 반대파를 유혈 숙청할 수 있는 '혁명 독재'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혁명의 애당초의 '꿈'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역사에서 아예 볼 수 없습니다.
대개 혁명은, 급진적 '혁명 독재'의 기간을 지나면 일종의 '부분적 복구'가 진행됩니다. 권력과 재산의 상당부분을 혁명의 파도를 타서 집권한 신진 세력들이 여전히 갖고 있지만, 특히 경제에 있어서의 급진적인 실험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부분적 복구'을 대변하는 3개의 가장 유명한 (?) 정권이라면 이건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재와 중국의 등소평과 그 후속 정권들,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 정권입니다. 이들 밑에서는 일단 혁명이 배태한 '신세력'들의 권력 독점은 대체로 유지됩니다.
나폴레옹 밑에서 벼슬을 한 구 귀족들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소수이었고,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등 여타의 당파와 권력을 나누어 가질 확률은 없습니다. 푸틴 정권은 제정 러시아의 제국적 '위대함'을 극찬하지만, 실제 이 정권의 권력자들의 70% 이상은 소련 말기 보안 기구와 당, 국가, 군부 간부 출신들입니다. '부분적 복구'가 이루어지면 대개는 엄청나게 강해진 국가의 보호막 밑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되는 것이죠. 사회가 탈정치화되어 다수의 관심은 '치부'와 '소비'로 집중됩니다.
그러면 '부분적 복구' 뒤에 오는 순서는 무엇인가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왕정 복원'의 가능성은 이제 없지만, 나폴레옹 뒤에는 프랑스는 왕정 복구, 그리고 그 뒤에는 일련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자본 축적이 이루어져 가고, 기초 공업화가 진행되고 근대 국가의 징병제나 중앙집권적 지방 통치 체제가 확립됐습니다. 제도적 민주주의 (공화정)는, 나폴레옹의 몰락 약 60여년 이후, 1870년대에 이르러서야 각종의 진통 끝에 정착이 된 것이죠. 그러니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근대화-자본화도 어쩌면 장구한 시일을 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파리 코뮨을 잔혹하게 진압해 성립된 프랑스의 1870년 이후 공화정은 사실 극도로 보수적 종류의 공화정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성의 투표권은 아예 1946년까지 유보된 것이었죠. 이건 유럽 치고 아주 늦은 편에 속합니다. 프랑스의 대학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교수님들의 독재 국가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기초적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자유'나 '평등', '박애'는 대학 시스템 안에서는 부재했습니다.
그러니까 1968년의 '붉은 5월'은 어떻게 보면 배움터, 일터에서 만연한 권위주의를 척결해 배움터와 일터의 민주화를 위한 학생과 노동자들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1789년의 연장선에 있었다고는 봐야죠. 1789년 이후에 완성되지 못한 사회의 탈권위화 과정을, 1968년에 반란에 나선 젊은이들은 179년만에 완수하려 했습니다.
그러니 혁명 이후 과정은 거의 두 세기, 200년 가까이 걸린 것입니다. 참, 집안에서의 권위주의의 상징인 아동에 대한 학대 (소위 '체벌')를, 프랑스는 재작년인 2019년에 이르러서야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러니 '집안'과 같은 마지막 권위주의 영역들은, 혁명이 이러난 240년 후에 드디어 사라져가는 것이죠.
대한민국은 1987~98년에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이 민주화를 2017년 촛불 저항 속에서 다시 공고화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공화정도 매우 보수적 종류에 속하죠.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는 대단히 제한돼 있으며, 대학이나 '집안'은 여전히 사실상의 거의 독재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일터 민주주의, 즉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는 아직도 꿈만 꿀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1968년은 앞으로 한꺼번에 터질 것인지 아니면 천천히, 여러 사건들을 경과하면서 이루어질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도 '민주주의 혁명 이후의 과정'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학대 ('징계')를 금지하는 법이 이미 현재에 국회를 통과하는 걸로 봐서는,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 과정은 - 한국의 여태까지의 성장이 그랬듯이 - 좀 '압축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 등록 20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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