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개신교, 혐오, 그리고 나, 우리

박철균


 

 


1. 내가 단 한 번도 믿지 않았던 종교이긴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지금까지 삶에서 상당히 많은 경험과 생각을 안겨 준 종교이다. 가족, 친구, 활동가, 동지 등 소중한 사람들 중에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고, 또 개신교와 관련된 시민사회인권단체와 함께 소중한 활동을 만들어 가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소중한 소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반면에, 한국 사회의 혐오와 배타성, 그리고 차별과 독선적인 형태를 또 다른 개신교를 믿는 일부사람들에게서 경험하기도 했다. 그 기나긴 이야기를 지금 이 시국에 꺼내 놓고 싶다.

 

2. 이미 어릴 때부터 내 주변에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아빠의 외가집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이 많았고, 고모 중 상당수가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얼떨결에 집 근처 사는 동창집에서 다른 동창들이랑 외박을 하고, 그 동창 엄마를 따라 그 동창 엄마가 개척하고 있는 소규모 교회에 따라가 요구르트를 마시며 함께 교회 다니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사실은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교회와 성당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게 몰랐다. 그저 먼나라 이웃나라에 나오는 구교와 신교의 역사적 싸움만 기억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개신교와 관련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초등(국민)학교를 5,6학년 쯤에 미국에서 살고 있던 증조외할머니(아버지의 외할머니)가 겨울에 보름 가량 우리집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 때 아빠 외가쪽 인사들이 자주 우리집에 들락날락 했었고, 당연히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다. 그 때, 어찌어찌 교회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나도 어쨌든 적이 있는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빠 외가쪽 친척분께서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마구 천주교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성당은 예수가 아니라 마리아를 신봉하는 종교다.” “성당은 우상숭배를 하는 종교다.” 등등 그 퍼붓는 말에서 적잖아 충격을 받았다. 바로 그 직전까지는 그렇게 사근사근하고 좋았던 분이 성당 얘기가 나오니 방언 터지듯이 나와 관련된 종교를 까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아픔이 밀려왔다.

 

물론 그 당시 엄마는 너무나 고령의 증조외할머니가 있기도 했고, 평상시엔 잘 보기 어려운 아빠 쪽 친척들이기도 해서 최대한 차분하게 천주교를 비방하는 그분에게 차근차근 그 비방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 친척분은 너무나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고, 논리가 어린 내가 봐도 이미 바닥을 드러났음에도 우기기 신공, 정신승리 신공을 부리면서 자신의 타종교 비방이 정당한 것처럼 마구 말을 퍼부었다. 그러다 결국 아빠가 그 마침 돌아오시기도 했고 대화는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그런데, 그 다음 그 친척분의 어린 손자가 하는 말이 충격이었다. 그런 대화가 지난 다음,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나는 5,6살 쯤 되는 어린 손자랑 잠깐 상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손자랑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지난 여름에 절을 갔던 이야기를 그 손자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그 손자가 얘기를 듣더니 ? 거기 귀신이 머리 풀어 헤치고 다니는 곳이잖아.”고 말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냐고 하니 교회에서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 손자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내 누나와 엄마에게도 똑같이 절은 귀신이 머리 풀어 헤치고 다니는 곳이라는 얘기를 하며 돌아다녔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하고 난 후, 난 엄마에게서 이후 다른 얘기를 들었다. 아빠도 학교 다닐 때 잠깐 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었고, 그 때 교회에서 보여주는 온갖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모습에 너무나 실망하고 화가 나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와 내 앞에서 했던 타종교에 대한 악담과 혐오를 그 증조외할머니가 했었고, 아빠가 조목조목 반박하니 그 증조 외할머니께서 화가 나서 외손자(아빠)를 향해 잡귀야, 물러가라!”를 퍼부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때부터 개신교에 대한 실망감이 생겼고, 미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내 존재를 부정당하고 부당하게 비난당한 경험을 안겨 준 사람들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들과 선생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가까운 곳에서 내 구성요소가 부당하게 비난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어른이 너무나 당연하듯이 자신의 타 종교 혐오를 정당하다듯이 얘기하고, 그런 얘기를 자기 선에서 끝내지 않고 손자를 비롯한 어린 신자들에게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증조외할머니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 아빠의 외갓집이랑은 교류가 거의 없게 되었다.

 

3. 내가 운이 없게도 주변 신자들이 그런 신자들 밖에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비슷한 경험들은 다른 개신교 신자 분들에게도 계속 겪게 되었다. 앞서 집에서 함께 잠을 잤던 친구들을 데리고 개척교회로 함께 갔던 그 친구는 중학교 때 성당, 거기는 마리아를 믿는 곳이잖아. 난 교회라서 아니야.”란 얘기를 꺼내서 아연질색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장염 때문에 며칠 병원에 입원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집 이웃의 이모 되시는 분을 우연찮게 병원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은 내가 원치 않는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득달같이 한 시간 가까이 전도를 한답시고 왜 교회를 믿어야 하고 왜 교회에 가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내셨다.

 

20대 때는 친척 결혼식 때문에 고모쪽 또래 친척들이랑 서울 고모집에서 우연찮게 1박으로 놀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보다 2살 많던 아주 교회를 신실하게 믿던 누나가 화투를 치다가 나는 낼 새벽 일찍 ㅇㅇ(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 살 연상의 친척)이랑 새벽 예배 갈 거야. 철균이는 요즘 제사 지내러 안 가니?” 해서 뭔 말이냐고 물어보니 , 성당은 귀신들에게 매주 제사 지내는 곳이잖아. 나 성당 가서 똑똑히 봤어.” 라는 소리를 너무나 순수한 눈과 얼굴로 얘기하고 앉아 계셨다. 순간, 화를 벌컥 낼까 싶다가 제어도 제대로 못해서 그 친척들에게 괜히 아빠엄마까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 말은 성인기에 들어선 나에게 상대방의 혐오로 인해 내가 상대방을 혐오하거나 미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4.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나는 개신교라고 하면 편견을 가지면서 바라보고, 뭔가 교회와 관련된 액션들이 일상에서 보이면 상당히 불쾌해 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안티기독교 까페의 글들을 보면서 이렇게 개신교 신자들이 일반적으로다른 종교를 비방하고 혐오하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구나 맞장꾸 치기도 했다. 우리집 하수도 배관을 대대적으로 수리를 할 때, 정비하는 아저씨가 정비하는 내내 할렐루야를 외치며 찬송가를 불러대고 쉬는 시간엔 예수님을 모시게 되면서 내 삶이 윤택해 졌어요. 여기 가정에서도 빨리 회개하시고 주님을 영접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엔 기함할 뻔 했다. 어쩌다가 타는 택시에서 탑승 내내 찬송가만 주구장창 나오면 어쩜 손님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찬송가를 저렇게 크게 틀어 댈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매우 불쾌해 했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어쩌다 만나는 예수 믿으라면서 한국이 좌익빨갱이 손에 넘어가고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분이 있으면 즉각 고객센터에 신고를 했다.

 

강릉 단오제 산신굿 행사장에서 교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행사장 앞에서 미신 행위 중단하라고 고래고래 행사를 방해하기도 했고, 강릉 시청 앞에서 무속인 지원 중단하라며 목사들이 단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매우 불쾌해 하기도 했다. 그 밖에 여러 사건(봉은사 땅밟기 사건, 대구 전직 목사 동화사 테러 사건, 티벳 불교 성지 말뚝 사건, 태백산 천제단 목사 훼손 사건,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 사건, 인도 마하보디 사원 땅밟기 사건 등등등등등)이 터질 때마다 한개또라면서 엄청나게 미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5. 그러다 개신교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로부터 시작했다. 아빠는 외손자에게 거리낌 없이 잡귀야 물러나라고 하는 자신의 외할머니를 비롯한 외가댁 식구들 등 자신의 주변에서 보여 줬던 온갖 나쁜 모습에 개신교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수상자가 얘기하면 욕을 하며 체널을 돌리는 등 개신교와 관련된 나쁜 소식이 들리면 상당히 불쾌하고 화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아빠가 나를 붙잡고 너는 나중에 며느리 데리고 올 때, 절대 교회나 성당 사람 데리고 오면 안 된다. 만약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겠다고 하면 연 끊을 줄 알아.”고 갑자기 엄포를 놓았다


엄마가 어쨌든 성당을 다니고 있는데 라고 내가 물어 보니 글쎄, 며느리가 교회나 성당 사람은 안 된다고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엄마도 있었고, 심지어는 사위 중 2명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자기 아들은 절대로 크리스트교 전체로 범위를 잡아서 안 된다고 하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개신교 혐오는 오랜 세월 속에서 아빠가 부당하게 겪어 왔던 많은 경험 속에서 나온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혐오가 자라고 자라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것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엄마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많이 됐고, 동시에 또 다른 혐오를 직면한 것에 상처를 받았다.

 

그 때, 대학교 복학하던 시절 어떤 새내기가 했던 말이 비로소 다시 생각이 났다. 동기 중에 정말 사람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동기랑 같은 동아리에 있던 새내기가 그 선배는 교회 다니는 예수쟁이라서 정말 싫어요.”라고 손절할 것처럼 말하던 예전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때 차분하게 돌아보았다. 교회와 관련된 사람들이 꼭 상처만 주고, 혐오만 주고 내 존재를 부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는 거였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중에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기독 시민사회인권단체 활동가 및 목회자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힘과 연대, 그리고 긍정적인 영향을 줬는지 다시 떠올리게 됐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떠올리게 됐다. 작년 인천퀴퍼에서 이동환 목사님이 무지개 축복식을 할 때 그 감동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이것 때문에 교단에서 퇴출하려는 모습에 나는 매우 큰 속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했다. 개신교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인권단체들의 존재를 그리고 그 교회가 더 진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얼마든지 인권의 가치를 지향하고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데 개신교 자체를 혐오하고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마저 없애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신교를 믿는 분들 중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을 심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리켜 비판하는 내 모습이 결국 그런 못된 사람들처럼 똑같이 못되게 말하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악마화하고 배제하다 나 자신이 악마가 된 것 같았고, 그것은 결코 인권적이거나 대안이 될 수 없는데 마치 인권적인 것처럼 대안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주문한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엄청난 창피함, 수치스러움,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6. 종교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힘이 되기에 아직까지도 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이건 부자들이건 서로의 곤란한 상황에서 종교에서 주는 메시지는 다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점이 있고, 기본적으로는 그런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본다. 박노자 교수도 당신들의 대한민국 1”에서 한국 개신교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에 왔던 초창기 막막하던 시절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그 도움을 무시하며 내치기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성당조차 도움이나 구원에 한계가 있었던 지라(결정적으로 어렸을 때 성당을 안 가게 된 원인이 학생 담당이란 자가 미사 시간에 내가 산만하게 있다고 무지막지하게 나를 미사 시간 중에 폭행했던 것이 큰 계기였다.) 냉담자로 있다가 군대 2년동안 천주교 중대 군종병으로 있으면서까지 매주 성당을 챙겼었다. 그 끔찍했던 군대 생활 속에서 일주일에 한번인 미사 참여는 잠시 해방을 주고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종교가 사회에서 자리 잡으면서 진취적으로 변화하는 것보다 그 조직을 그대로 안정화만 하려는 과정에서 모순이 생긴다고 본다. 자신의 교회에 사람들이 계속 다니게 하고, 사람들에게 계속 동기를 줘야 하는데 그 동기가 더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포옹하는 것이 아닌 그 교회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다른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독특함, 우월함, 혹은 천당이라는 보상으로 점점 변해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리는 점점 진취적이기보단 보수적으로 변해갔고, 성경은 아전인수의 도구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특별함과 함께하지 않는 타 종교나 자기와 다른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거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는 우리의 죄를 안고 태어났다.” 식으로 동정만 하고 동등한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까지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단계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성소수자 문제만 나왔다 하면 쌍심지를 들고 혐오하기 바쁘고 존재를 없애려고 하는 보수적 교회가 설령 자신들의 바람대로 성소수자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런 행동을 멈출 것이란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성소수자가 사라지면 다른 정치 지향, 다른 종교 등 자기랑 다른 사람과 존재들을 계속해서 혐오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면서 자기 존재와 정체성을 채우려는 행위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볼 수 있다. 개신교 뿐만 아니라 천주교, 불교 등의 종교에서 여전히 전국 곳곳에 장애인 거주시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종교의 보살핌 및 보호를 빙자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 및 자유는 모조리 시설에 가둬 놓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꽃동네이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다.”란 희대의 망언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고, 틈만 나면 교황이나 반기문 등을 꽃동네로 데리고 와서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이용하며 끝내 장애인을 시설에나 있어야 하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오웅진 신부 같은 종교인이 여전히 이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천 낙태 반대 서명을 한답시고 태아 시체 사진을 버젓이 캔버스에 꽂아서 거리 선전전을 하는 일부천주교인들의 모습에 나는 존중받지 않는 여성 인권을 비로소 새삼 깨닫는다. 조계종이 운영하던 위안부 피해자 거주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들려 오는 인권침해 및 비리 소식은 종교가 사회적 소수자 및 피해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것인가 다시금 탄식하게 만든다.

 

7. 코로나가 다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그 중심에 극우 전광훈 목사가 있는 사랑제일교회가 있다. 이미 확진자가 생기는 상황에 광복절에 대규모 극우집회를 했고 전광훈 목사 자신이 확진자가 된 상황에도 여전히 탄압을 받고 있는 것처럼 왜곡된 선동 광고를 하고(이 전면 광고를 그대로 실어 준 조선,중아,동아일보도 똑같은 공범이다.), 여기저기 병원에서 탈출하거나 방역하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취재하는 사람에게 모욕이나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지독한 전염병이고, 전염성도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들은 더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의 위협으로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 비난받아야 하고, 그 행동에 따른 처벌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점점 서글픔이 밀려 온다.

 

결국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극우 성향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본다. 자신들이 현재 혐오받고 있고 미움받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자신들의 행동이 자기와 다른 사람들(다른 정치 성향, 성소수자)를 비난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던 행동이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존립했던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이젠 자신에게 되돌아와 자신이 미움받고 배제받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 스스로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미 본능적으로는 체감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참을 수 없는 것이기에, 도망을 치고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고 도리어 상대방에게 적반하장 탓을 하는 그 사람들이 너무나 안쓰럽게 보인다.

 

반대로 이런 혐오가 계속 혐오를 낳고 이것은 코로나19 상황이 언젠가 종식되더라도 그 혐오만은 천연두의 곰보처럼 버젓이 남을까봐 걱정이 된다. 신천지부터 시작해서 중국인, 베트남인, 성소수자로 이어진 혐오는 이제 개신교를 향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얼핏 그 혐오는 지금 당장 시원한 사이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에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들을 힐난하고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이 만연될까봐 걱정이 된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당장 사랑제일교회를 겨냥해서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확대되서 얼마든지 자기 맘에 안 들면 얼마든지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사회적 조류가 만들어 질 것이다.

 

8. 나는 일생에서 가지고 있던 개신교 일부교인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계속해서 개신교와 관련된 동지들, 활동가들, 목회자들 등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활동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타종교에 대한 비난 및 폭력,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비난 및 폭력, 다른 정치적 성향에 대한 비난 및 폭력이 너무나 일상화된 세상에서 부디 이 상황이 일상화된 혐오와 폭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장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 자신이 다른 사람과 성향을 쉽게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계속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우리 모두 혐오에 휩쓸려지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자. 이 이야기는 전광훈을 비롯하여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끈을 놓지 못한 극우들에게 특히 전달하고 싶다.  


 (기사 등록 20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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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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