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포크너(Neil Faulkner)
번역: 두견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는 인류 역사에서 그 영향과 범위 모두에서 전례 없는 것이라고 닐 포크너는 주장한다. 닐 포크너는 고고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민중사, 그리고 <조여오는 파시즘: 그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의 저자이다. 한국에서도 그의 책이 <좌파 세계사>로 번역돼 있다.
촐처:https://www.timetomutiny.org/post/history-s-greatest-crisis-has-begun
2018년에 나의 책 <급진적 세계사> 제2판이 나왔을 때 마지막 장은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물음표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물음표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이것이 우리가 이전에 본 어떤 것보다도 더 크다고 확신한다 –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이전의 모든 위기는 충격과 도달 범위 모두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사시대, 고대시대, 중세시대의 위기들에 대해 분명한 진실이었다. 당시 어떤 사회체제도 글로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의 모든 자본주의 위기에도 적용된다 – 그리고 자본주의는 16세기 이후부터, 세계적인 체제였다. 가장 자주 비교되는 지점은 1930년대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은 근근이 살아가는 농민이었고, 그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더 개발된 나라들의 모든 부분은 호황을 경험했다.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전혀 불황을 겪지 않았다. 반대로 시초 축적의 국가-자본주의 모델('5개년 계획')에 따라서 러시아 경제는 10년 내내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했다. 독일의 나치 정권도 국가가 주도하는 (그리고 '자립적') 경제 확장의 형태를 채택했다. 그 결과 1930년대 말까지 독일에서는 완전 고용이 있었다. 10년 동안 경제의 상당 부분이 침체되어 있던 영국에서도 자동차와 항공우주, 특히 런던 바깥의 새로운 교외에서, 그리고 신중산층 소비주의 같은 새로운 산업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도 - 어떤 경우에도, 위기는 1930년대만큼 깊지는 않았던 시기 -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도달 범위는 여전히 전체보다는 적었다. 확실히 다국적 기업이 우세했고, 국제 무역이 필수적이었으며,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해외에서의 기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인구의 상당수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농부였다.
지난 40년간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1980년대에 개인적인 경험과 일화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이것을 의심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많은 우리 모두는 지금 우리가 매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감각은 타당하다.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은 국제적 자본주의와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매우 유용하게 구별한다. 그는 자본 축적 과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공식처럼 매우 높은 수준의 추상화로 시작한다. 그건 이런 식이다: M -> C -> P -> C+ -> M+
여기서 M은 처음에 투자한 돈, C는 생산에 소비되는 상품(원자재, 기계, 노동력 등), P는 실제 생산 공정, C+는 생산되는 신상품, M+는 신상품이 판매될 때 받는 돈(초기 투자 + 이윤)이다. 국제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각 다국적 기업 주체가 하나의 주요 국가 중심지에 정박해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로 움직이는 것은 자본(M)과 상품(C와 C+)이었다. 초국가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글로벌 경쟁자 중에 점점 더 많은 비율이 TNC(초국가적 기업)이고, 여기서 생산(P) 또한 (그리고 점점 더) 세계화된다.
요컨대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 중 훨씬 더 많은 기업들이 단일 세계 시장의 틀에서 투자, 판매, 생산하고 있다. 두 번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자기증식하는 가치'이다. 그것은 이윤 추구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며, 각각의 축적이 즉시 그 다음에 더 확대된 규모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결국 추출할 자원, 착취할 노동력, 진출할 시장을 찾아 인간과 자연 세계의 가장 멀리 떨어진 모든 빈 공간을 찾아내 침투하고 스며든다.
<공산당 선언>과 다른 곳 등에서 생생한 용어로 이것을 서술했던 마르크스에게도 물론 분명했던 이 과정은 체제가 확장됨에 따라 가속도가 붙었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엄청난 가속도는 부분적으로 체제의 고질적 문제인 과잉축적과 과소소비에 의해 추동되어 왔다. (아래에 더 설명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사실상 자연 세계의 모든 부분과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이제 세계적 자본 축적의 과정에 포섭되었다.
현대 자본주의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세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행성의 생태계와 인간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완전하게 식민화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인 규모의 프롤레타리아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해 전통적인 농민들을 크게 파괴하고 엄청난 대중을 세계적 노동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잉여적' 또는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저주받고 있다.
이는 현재의 위기가 이전의 어떤 위기보다 더 세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세계에는 위기가 없는 지역이 없다. 이것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기후 위기다. 세계화, 초국적 기업의 지배, 국민국가 및 자유민주주의적 구조의 통제를 넘어선 체제의 출현 등은 우리가 현재 형태의 산업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학적 붕괴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된 자본 축적과 임박한 기후 대재앙이라는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진입했음을 내게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위기는 4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각각,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팬데믹과 기후 재앙
COVID-19 팬데믹은 현대 기업형 농업의 관행, 슬럼가 도시의 존재, 세계화된 네트워크를 통한 급속한 전염에 뿌리를 둔 일련의 팬데믹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에 불과하다. 현재의 바이러스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공중보건의 제공이 미미한 사회로 깊이 침투하여 전세계적 규모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선진국 일부에서도 신자유주의 정권의 태만과 무능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상황을 장악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힐 수 있었다. 언제든 곧, 어쩌면 영원히 백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바이러스는 여전히 내재되어 있을 수 있고, 아마도 변형된 형태로 다시 확산되기 쉽다. 다른 바이러스들이 따라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서는 COVID-19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하나 더 나타날 것이다.
팬데믹은 자연세계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활동 사이에 현재 펼쳐지는 '물질대사 균열'의 한 측면이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는 다른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기후 재앙은 그들 모두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든다. 1995년 유엔 기후변화회의가 처음 열렸을 때 연간 탄소배출량은 260억 톤이었다. 2010년에는 340억톤에 달했고, 2018년에는 370억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탄소 배출 가속화는 대기 중 농도의 가속화, 기온 상승의 가속화, 극지방 얼음 용해 및 해수면 상승의 가속화, 기후 변화 충격의 가속화, 하나 이상의 되돌릴 수 없는 비등점으로 격돌 위험의 가속화를 의미한다. 25년 동안 점점 더 긴급해진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는 모든 측면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예측에서, 우리는 1.5ºC의 최대 온난화 목표를 놓칠 뿐만 아니라, 3ºC의 온난화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의 관점에서, 정말로 파괴적인 4ºC의 온난화로 향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존의 화석연료 하부구조에 기반한 기하급수적 성장과 직결되어 있다. 세계 정치 체제는 경쟁하는 민족국가들에 의해 파편화되고 떠오르는 파시즘과 기후 허무주의에 의해 독살되고 있다. 경제 논리와 정치적 역기능이 결합해 효과적인 행동을 막고 있다. 더욱이 탄소중립적이고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로 성장 경제로의 전환이 뜻하는 것은 세계 빈곤층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규모로 세계적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 과잉축적과 과소소비
자본주의는 1970년대부터 병들어 왔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250년 동안 이 시스템이 지속적 호황 속에서 거의 풀가동된 시기는 1848~73년과 1948~73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반세기 동안 과잉축적과 과소소비라는 고질적 문제로 실제로 불경기나 불황은 아니더라도 최선에 못 미치는 성장을 경험했다.
이곳은 상세한 설명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노동력을 기계(디지털화/로봇화)로 대체하고, 시장을 관리하며, 가격을 고정하고,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효율을 높이며, 인위적인 '욕구'를 만들기 위해 수요를 조작하는 독점자본주의적 조건에서 대기업들의 능력은 자본에 고질적인 과잉 축적(그리고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노동자들의 과소소비)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반혁명은 노동자 조직, 복지국가, 그리고 (제3세계에서) 국가주도 발전 체제를 무너뜨려, 노동에서 자본으로 부를 재분배하고, 이윤율을 회복하며, 새로운 축적의 국면을 열려는 시도를 통해 모순의 즉각적인 타격으로부터 일시적 유예를 제공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것들을 악화시킴으로써만, 세계적 부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더욱 낮추어 만성적인 과소소비 문제를 악화시켰다. 신자유주의 축적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부분적으로 중복된 형태를 취했는데, 각각은 실물 경제의 과잉축적/과소소비라는 고질적 문제의 맥락에서 자본 축적의 길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화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M –> M –> M+(화폐성 자산에 돈을 투자하여 화폐적 증대를 산출하는 경우)의 순환이 생산적 순환(M –> C –> M+)을 대체하는 것이다. 말할나위도 없이, 이것은 가공자본이 주로 부채의 형태로 노동으로부터 기업 엘리트에게로 부를 빨아들이는 메커니즘의 완전히 기생적인 활동이다. 정부, 기업, 가계 부채의 엄청난 증가는 전자적 산더미 같은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부채의 거래(‘영구 부채 경제’)는 실질적 생산 경제의 가치를 보잘 것 없이 보이게 만든다.
디지털화
'4차 산업혁명' 통신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과 이것이 제공하는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다. 그것은 둘 다 많은 다른 발전(예: 금융화, 노동력의 이동, 글로벌 공급사슬 등)을 촉진하고, 그 자체로서 잉여 자본이 넘쳐나는 체제의 주요 투자처가 된다. (한 가지 부산물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매우 소외된 형태와 소셜 미디어에 대한 대중적 중독의 유행병이다.)
군사화
군대, 경찰, 교도소, 국경 등에 대한 국가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냉전 시대의 '영구 무기 경제'는 테러와의 전쟁(새로운 종류의 가상적 위협을 수용하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정의가 끝없이 진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영구 무기 경제'로 대체되었다; 물론 전쟁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초국가적 기업들에게 높은 수익성을 가져다 준다. 동시에 사회적 쇠퇴, 증가하는 불평등, 내부적 억압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키우는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위기, 경찰의 군사화, 교도소 인프라, 대중적 감시 등은 잉여자본에 대한 수익성이 높은 투자의 또 다른 원천이다.
민영화
국가가 돈을 대는 축적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많은 형태를 띤다: 국가 자산의 매각, 기반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국가 계약, 군대-산업-보안 복합체에 대한 국가 지출, 보조금과 구제금융에 대한 국가 지출. 각각의 경우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국가가 노동에서 자본으로의 수익 흐름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조세 수입, 또는 미래 조세 수익의 예상으로 발생한 부채가 기업 이윤으로 재활용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징은 국가 자산과 공공 서비스를 민간 자본에 매각하고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점진적인 민영화와 대학 교육의 상품화(학생부채의 형태로)는 명백한 사례다.
조작된 소비지상주의
우리는 현대 세계의 5대 계급의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초국가적이고 국가적인 부르주아 계급(대중적 담론에서 1%), 안정된 직업, 좋은 보수, 편리한 생활 방식을 가진 자본의 하위 계급(영국 같은 선진 경제에서 약 15%), 핵심 노동계급, 불안정한 노동계급, 그리고 잉여 노동계급('노동의 예비군'). 상위 두 집단, 셋째의 어느 정도, 넷째의 한정된 사람들까지가 조작된 소비지상주의의 시장을 구성한다. 이것은 브랜드화, 포장, 광고, 재설계,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의도적인 거짓 욕구 생성과 만들어진 수요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 모든 과정은 단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체제의 만성적인 과잉축적에 대응하여 새로운 형태의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것이 전적으로 기생적이거나 매우 낭비적이다. 진정한 인간의 욕구와 자본 축적의 불합리성 사이의 간극이 이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세계적 부의 비율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낮다.
사회: 개인적 탐욕과 대중적 빈곤
이것은 여기에 상세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증거는 우리 주위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부의 분배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인류의 절반과 같은 양의 부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중간계급의 몫은 높아졌다. 전 세계 노동계급(인구의 85%를 차지하는)의 몫은 언제나 상대적 측면에서, 종종은 절대적 측면에서 변함없이 떨어졌으며, 불안정하고 흑자가 예외적인 증가하는 빈곤의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정치: 민족주의, 파시즘, 군국주의의 대두
계급 통치는 강압과 동의, 즉 무력과 기만에 달려 있다. 그 균형은 변한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공공서비스가 개선되던 전후 시대에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에 대한 동의가 일반적이었다. 제3세계(당시 그렇게 불렸듯이)에서도 '국가 개발형' 모델을 채택한 새로운 독립 정권들이 대중적 동의의 큰 조치들을 만끽했다. 몽둥이와 총은 대개 보류되어 있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제1세계(및 제2세계)의 '복지'와 제3세계 '국가 개발형' 모델 모두를 산산조각 냈다. 사회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다.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다. 공공서비스가 쇠퇴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생활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빠지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주요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a) 동의를 얻기 위한 대체 이데올로기의 필요, 그리고 b) 더 높은 수준의 강압/억압의 필요. 그러므로 '서서히 다가오는 파시즘'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고유한 특징이며, 특히 2007년에 시작되어 현재 2020년에 두 번째 하향의 정점에 도달한 신자유주의적 위기의 고유한 특징이다.
우리는 '서서히 다가오는 파시즘'의 이론을 갱신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서서히가 아니라 분명한 현재의 위험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파시즘은 이제 네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권의 파시즘
나는 여기서 시진핑의 중국, 모디의 인도, 트럼프의 미국, 푸틴의 러시아, 보우소나루의 브라질, 에르도안의 터키, 오르반의 헝가리, 존슨의 영국 등 많은 국가들의 극우 정권들이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선거의 파시즘
이 모든 정권들은 대개 부르주아 계급, 중산층, 노동계급의 부문들을 통합하는 선거블록인 거대하고 우월주의적이며 반동적인 사회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 메카니즘, 이데올로기, 균열선은 장소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인 패턴은 분명하다. 물론 영국 모델은 보리스 존슨이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당을 인수한 토리당 우파가 의회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이용해 노동계급 내부에 민족주의-인종주의 쐐기를 박고 이를 충분히 쪼개왔다.
경찰의 파시즘
경찰의 군사화 증가, 반대파에 대한 경찰 단속의 야만성 증가, 소수자에 대한 민족주의-인종주의적 억압에서 경찰력 활용의 증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모디 정권은 인도에 강제수용소를 짓고 있다. 트럼프는 국경과 내부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이민자들을 향해서 경찰의 목줄을 풀어줬다.
거리의 파시즘
이러한 요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대규모 파시스트적 동원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예를 들어 유럽대륙 일부 지역에서 로마[소수민족] 수용소에 대한 무장 공격, 인도의 파시스트 무장단체들에 의한 무슬림들에 대한 무장 공격, 미국에서 봉쇄에 반대하는 무장한 파시스트들의 위력 시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도시 빈민들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봉기에 맞서는 경찰과 국가 경비대와 비공식 파시스트 민병대의 동원 등 다른 곳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반인종주의적 반란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강력한 불만의 물결을 일깨워 주었다. 수백만 명의 흑인과 백인이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에 맞서서 연대하며 함께 행진해 왔고, 많은 경우 경찰을 길거리 전투에 끌어들이고 주요 도시의 일부를 불태웠다. 현재는 집단적 투쟁의 국면이 진정됨에 따라, 적어도 현재로서는 우리는 평가 모드에 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운동이 마치 진공 속에서 갑자기 일어나서 로켓처럼 올라갔다가 나무토막처럼 내려오는 것 같아서 우리는 다시 걱정한다. 시위가 흩어지면서 정권은 그대로 있고, 경찰과 파시스트도 거기에 그대로 있고, 우리는 여전히 기후 재앙과 사회 붕괴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베테랑 혁명가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1938년 세계적 현상들을 조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 국가, 지배 계급의 정치, 그리고 국제 관계는 혁명 직전의 상태에서 사회의 특징인 사회적 위기로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모든 나라에서, 노동계급은 깊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대중들이 계속해서 혁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의 인류 문명의 위기는 노동계급 리더십의 위기이다.”
요컨대 당시의 정치적 과제는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서로 다른 투쟁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도록 그들을 내몰고, 새로운 세력을 행동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체제 변혁이 가능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것에 실패한 결과는 세계 대전과 대량학살이었다. 이는 6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수억 명의 목숨을 찢어발긴 야만주의로 전락했다. 역사상 최대의 위기라는 도전에 맞닥뜨리려면, 우리는 오늘날 세계적인 노동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기사 등록 20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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