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성폭력, 성착취, 사회적 재생산

전지윤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더 늦기 전에 사과하라

 

얼마 전에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회원 윤리강령을 만들어서 홈페이지에 올린 것을 확인했다. 그 내용을 읽어보고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 그 내용이 너무 좋다.

 

모든 회원은... 서로 존중하는 말을 쓰고, 모욕적 언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적 관계는 상대방의 동의가 핵심이며, 이런 동의는 언제나 자유로운 조건에서 이뤄져야 한다”, “성적 괴롭힘에는 다음과 같은 행동이 포함된다. - 포르노 등 외설적 이미지 보여 주기”, “조사 전과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비밀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회원들을 뜬소문억측중상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다.”

 

둘째, 이 내용이 그동안 노연 지도부가 성폭력 생존자들을 괴롭히고 2차가해를 해온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모순된다는 점에서 놀랐다. 노연 지도부는 성폭력 피해 호소를 거짓말로 몰고, 법적 소송을 가하고, 신상과 사생활까지 공개하고, 생존자를 존중하지 않는 온갖 모욕적 언사로 2차가해를 해 왔다.

 

생존자들 중에 한명이 겪은 피해가 바로 포르노를 강제로 보게 된 일이었는데 노연 지도부는 그게 성폭력도 아니라고 했다. 또 노연 지도부는 생존자들에 대한 뜬소문억측중상을 지도부가 나서서 자신들의 기관지에 싣고, 책자로 만들어서 배포, 판매했다. 노연 지도부는 비밀 유지는커녕 피해자가 믿고 상담했던 성폭력 상담기밀까지 동의도 없이 공개하면서 성폭력 2차가해를 자행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이런 내용을 만들면서,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당연할 것인데 전혀 그러지 않고 있다. 이해가 안 가서 노동자연대의 국제 자매조직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홈페이지를 찾아가 봤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거기에는 거의 같은 내용의 회원 윤리강령이 올라가 있었다.

 

즉 비슷한 성폭력 문제 등으로 비판받아온 영국 자매조직이 먼저 그런 것을 만들어 올렸고, 노연 지도부는 그것을 거의 그대로 번역해 또 올린 것이다. 스스로의 고민과 성찰같은 것은 없었고, 그냥 영국 자매조직의 각종 입장, 주장, 기사를 번역해서 올리는 반복된 활동패턴의 일부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 굳이 이것을 번역해서 올린 것은, 노연 지도부가 민주노총에게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요구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안하면서, 이런 것을 올려서 우리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이것이 조만간 있을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노동자연대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준법 감시위를 만들었다고, 과거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노연 지도부가 지금 해야할 일은 그럴듯한 회원 윤리강령을 만들어서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지도부가 스스로 그 윤리강령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을 했던 것을 반성, 사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것은 윤리강령과 함께 올라온 회원윤리강령에 붙여라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노연 지도부는 성찰과 반성은커녕 또다시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개인주의적·이기적이고,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가진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레닌주의적 정치와 조직을 혐오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모함을 겪었다는 것이다. 조금치도 변화가 없는 태도다.

 

또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노연 지도부의 유체이탈적 태도다. “혁명적 조직의 회원들도 계급 전체의 불균등성을 다소 내면화한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능력 부족인 조직자의 존재다”, “회원윤리강령은 당신의 훌륭한 조언자가 돼 줄 것이다.” 불균등한 의식을 가진 일부 회원과 무능력한 조직자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회원 윤리강령을 잘 보고 배우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8년간의 성폭력 문제에서 피해자들을 조직적으로 괴롭히고 2차가해한 것은 노연의 평회원들이 아니라 바로 지도부와 핵심 지도자들이었다. 자신들이 먼저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누구에게 문제를 떠넘기는가. 얼마 전에 한 급진좌파 단체가 장애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을 쓴 것을 보고 아쉬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그것을 지적받자 즉각 인정하고 분명하게 정정하며 사과하는 그 동지들의 태도였다. 그 걸 보면서 그 단체에 대한 신뢰와 평가는 더욱 올라갔다.

 

노연 지도부는 이런 태도를 보고 배워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괴롭히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민주노총 중집에서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데, 부디 피해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하고, 부디 그 전에라도 노연 지도부의 전향적 변화가 나타나길 또다시 촉구한다.

 

이번에 뉴스공장에 서지현 검사가 법무부 책임자로 나와서 엔번방 성착취 사건 피해자들을 향해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가해자를 끝까지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내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성폭력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방패가 돼주는 모습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운동사회도 끝까지 그런 방패가 돼 줄 것이라고 믿는다.

 

#노동자연대STOP #노동자연대는사과하라 #Metoo #Withyou

 


엔번방 성착취 사건의 뿌리를 봐야한다

 

이번에 SBS가 제일 먼저 박사 조주빈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고, 그 다음 날부터는 그동안 엔번방 성착취에 대해서 유독 무관심해 보이던 조선일보가 신나게 박사의 신상을 털고 포르노적으로 사건을 서술하면서 온갖 것을 다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고 장자연 님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는 조선일보가 성착취 문제에 왜 갑자기 적극적일까? 200만 명이 넘게 신상공개를 청원한 상황에서 클릭수를 높일 기회가 왔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해자의 비인간적 범죄에 분노한 200만명의 심정은 결코 비난받거나 깎아내려져선 안 된다. 그러나 청와대 게시판에서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보호해달라는 청원 서명과 특별법을 만들어서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 서명에는 매우 적은 사람들밖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돌 맞을 이야기일지 몰라도 사실 저 꼴보기 싫은 얼굴을 왜 봐야 하고, 이런 신상공개가 무슨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제 저 박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나 이름이 같은 사람들, 그가 소속됐던 학교나 동아리나 모임에 있었던 사람들도 비난과 의심을 받게 될 것이고, 그의 부모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가장 악독한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은 항상 고수하기가 어렵다. 언제나 그것의 예외를 두고 싶게 만드는 끔찍한 범죄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범죄자의 신상공개로 우리의 정의감을 충족하고 악마같은 개인에게 실컷 돌을 던지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 ‘벗방 카르텔의 진실을 봤다. 엔번방 사건을 다룬다는 잘못된 정보에 보게 됐지만, 보다보니까 엔번방과 하나도 다를게 없고 오히려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떠들썩했던 양진호에 대한 신상공개, 전사회적 규탄과 구속 처벌 이후에도 웹하드 카르텔은 사라진 게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인터넷 성인방송이라는 출구전략을 찾아냈다. 거기서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한 여성BJ를 대상으로 한 가학적 성폭력과 성착취, 성착취 동영상의 국내외적인 대량유포는 이제 자발동의라는 이름으로 더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성인방송의 시청자들은 쌍방향 소통 속에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집단적 성폭력, 성착취의 그야말로 공모자들이었다. 그걸 보니까 갓갓과 박사는 여기서 배운 것을 더 작은 규모지만 더 악랄하게 반복했다는 깨닫게 됐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00TV’라는 이름의 그런 성인방송 방송국만 50여개에 달하고 잘나가는 몇몇은 매출액만 수백억이고 1년에 2배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일베사이트의 실질적인 소유, 운영진이라는 보도가 나온 더이앤엠사와 연결된 팝콘TV’는 매출액 500억에 가입자수가 183만명이라고 한다.

 

물론, 돈을 내고서라도 이런 성폭력, 성착취물을 끝없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피해자들을 자발적으로 동의한 공범으로 만들고, 문란하다고 낙인찍어서 피해를 드러내고 입을 열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가 이런 엄청난 규모의 폭력과 돈벌이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생산, 소비, 유통, 축적 과정 모두에서 여성의 노동, 몸과 성을 착취해서 굴러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성산업 카르텔이 그 위에 존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박사같은 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것뿐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멀리있는 박사, 갓갓만 악마화하고 욕하는 게 다는 아닐 것이다. 당장 주변에서, 운동사회에서도, 성폭력 생존자를 괴롭히고, 신상과 사생활 유출로 압박하고, 성폭력 상담내용까지 다 돌려 보라고 올려놓고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피해자들의 말에 관심을 가져주고 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성노동자에 대한 혐오, 낙인, 배제에 반대한다

 

https://postwhorecide.tistory.com/2?fbclid=IwAR0PQ3ba2pB4kkMZfnPfEBSFuaouPz7bqlDc4XkpfUO3OwUFEStACeLTmJk

이 사건에서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해 온 밀사 동지도, 밀사 동지의 곁을 지키며 함께 싸워준 윤미래 동지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고통과 분노를 느껴왔는지 어느 정도 안다. 밀사 동지에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기가막힌 매도를 당하면서, 고인이 된 친구를 애도하고 추억할 시간과 권리도 빼앗겨 온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익명 뒤에 숨어서 이런 괴롭힘을 지속한 사람들의 날조된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밀사가 청소년인 고인을 성매매로 유인했고, 성노동론을 통해 성매매를 지속하도록 권유하면서 포주로서 고인을 학대하고 갈취해 왔다. 그러다가 고인이 자살하자, 그 죽음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 중에서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고, 그것은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주장, 증언, 증거를 통해서도 거듭 밝혀져 왔다. 고인은 밀사 동지와 알게 되기 전부터 이미 성노동을 해 왔었고, 자신이 일하던 업소에 밀사 동지를 부른 것은 오히려 고인이었으며, 청소년이 아니었고, 고인의 죽음에 누구보다 충격과 슬픔을 느낀 것도 밀사 동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사실관계 왜곡에 기반한 낙인, 매도, 혐오와 괴롭힘은 중단돼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래 글은 2년 넘게 계속돼온 이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종합적인 정리이다.

 

무엇보다도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 배제의 논리가 이런 괴롭힘과 가해의 중심에 있었다. 이 글의 필자가 말하듯이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의심할 여지없이 창녀/성노동자 혐오.” 성노동을 하고 자신의 존재를 성노동론으로 설명하려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괴롭힘과 가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불법적이고 더러운 직업을 선택한 성노동자의 존재 자체가 여성혐오라는 논리 속에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성노동자도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혐오하고 배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노동자는 스스로를 드러낼 수도, 자신의 존재를 가시화할 수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성노동 과정에서 겪는 학대를 고발하기도 어려워진다.

 

청소년이거나, 청소년이더라도 일탈계비난이 보여주듯이 강제로 성매매에 내몰린 경우에만, 존재를 '용납'해줄 수 있는 피해자가 되고 가까스로 혐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성인이면서 자발적으로 성노동을 선택한 경우에는 성착취의 부역자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성매매 피해 여성을 타자화하는 동시에 성노동이 노동임을 부정함으로써 성노동/매매 당사자는 피해자 아니면 부역자로 나뉘게 되는 이분법이 된다.

 

그래서 창녀/성노동자 혐오는 글자 그대로 성녀/창녀 이분법을 페미니즘 내부에서 재현한다는 것이고, 결국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혐오 앞에서 생존을 위해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과연 성노동자를 당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고 존중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물론, 당연히 자본주의에서 성매매 산업은 여성혐오와 성착취의 공간이다. 자본가적 위치인 포주나 성구매 남성들의 행위와 위치가 반동적이며, 성착취를 수행하며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맞다. 성매매 산업이나 포주, 성구매 남성들을 미화하거나 면죄부를 주자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성매매와 성착취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그런데 성노동자를 낙인찍고 혐오, 배제하는 것은 그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매매 산업에서 피해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성착취를 더 용이하게 할 뿐이다.

 

왜곡이나 매도와 달리 성노동자가 당하는 착취를 설명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성노동론은 성착취를 긍정하거나 미화하려는 논리가 아니다. 자본주의적 임노동자로서 위치에 대한 자각이 임금착취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듯이 말이다. 성노동이라서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성노동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성 상품화와 성착취를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노동자로서의 자각이 자본주의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노동자로서의 자각도 성착취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노동으로 접근할 때 성착취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인권유린에 맞서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언급하듯이 우리 모두는 궁극적으로 (생계수단으로써의) 성노동/매매를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세상을 바란다.” 연대와 투쟁으로 그런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성노동자이고 성노동론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낙인찍고 혐오하고 배제하려는 시도는 사라져야한다.

 


코로나19와 사회적 재생산의 관점




 

코로나19는 젠더화된 위기이기도 하며 이 위기의 최전선에 서있는 여성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간호사의 9/10, 노인 요양사의 9/10, 아이 돌보미의 9.7/10, 교사의 8/10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공정한 처우와 존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나아가 이 위기를 사회적 재생산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들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사람들과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들을 본다. 가진 것을 어려운 이들과 나누려는 사람들과 이 기회에 민주주의를 제거하려는 정부를 본다. 자본주의는 삶을 사유화하지만 죽음은 사회화한다. 자본주의는 삶과 생명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돼야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과소평가되고, 가장 적은 임금을 받고, 가장 먼저 해고되고, 끊임없는 성희롱과 직접적 폭력에 직면한다. 코로나는 일시적으로 자본주의가 생명과 삶을 우선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병원을 국유화하고 해고를 제한하고 기본생계비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중개업자나 투자은행가들(한국에서는 검찰총장이나 언론사주가)이 아니라 간호사와 청소부와 돌봄 노동자가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그들 대부분은 여성이고 다인종이고 이민자다. 그들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이 비상사태와 위기의식이 잊혀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요구하고 싸워야 한다.’

 

윤지오 씨에 대한 마녀사냥을 돌아보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5713.html?fbclid=IwAR1EY8r0Wqw_vYo1WnrdxR_fQcQm_Nvw9uJj7dkuJ2Sf7rwOMx7JTFeDJYs

이 기사에서 특히 윤지오 씨에 대한 언급을 보고 반가웠다. 이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도 윤지오 씨가 사기꾼이라는 프레임은 잘못된 것이고, 윤지오 씨의 증언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지오씨를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로 모는데 <한겨레>도 동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 의미있게 읽혔다.

 

바로 지난해 연말에 윤지오가 노린 것은 돈이었으며, 그가 했던 말이 대부분 거짓이었음은 이미 사실로 굳어진 상태다라는 기사를 쓴 것은 바로 이 기사를 쓴 기자와 동일인이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꾼 것은 좋은 것이고 용기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과까지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든다.

 

이 기사와 기자도 지적하지만 사실 당시의 분위기에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는 어려웠다. 보수언론뿐 아니라 개혁언론들까지 한목소리도 윤지오 씨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이자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가는데, 외로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솔직히, 같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몰리고, 손절당할지 모른다는 부담이 커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몰아가기 속에서 윤지오 씨는 여러건의 고소고발을 당하고, 여권이 무효화되고, 인터폴 적색수배자까지 됐다. 장자연 씨의 억울한 죽음과 윤지오 씨의 증언은 묻히고 <조선일보>는 갑자기 사기 피해자가 돼서 큰소리를 쳐대기 시작했다.

 

서민 교수처럼 진보적 지식인이라던 많은 이들이 그런 몰아가기에 동참했었다. 사실을 충분히 확인도 안하고 정의를 내세우며 흠집과 꼬투리를 낱낱이 찾아내 누군가를 난도질하는 이런 일들이 너무 많고 그럴 때마다 대세를 거슬러 입을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검경이나 언론이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몰아가기의 주범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번에 손석희에게, 왜 협박당하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냉소하게 됐다. 검찰과 언론 등을 믿으라고? 그래도 조정환 선생이나 이 기자분처럼 용기있게 나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는다.

 


(기사 등록 20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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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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