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억압에 맞서 진정한 단결을 위해 - 분리주의 비판을 넘어서

이상수


억압, 정체성 정치와 분리주의


억압은 분열을 낳는다. 억압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단결해서 싸우는 데 걸림돌이 된다. 특별한 인식과 노력이 없다면 억압에 맞선 투쟁도 분열하기 십상이다.


1960~70년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에 맞선 공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맞선 여성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이 운동들은 실제 인종차별을 개선하고 미 제국주의 전쟁을 패배시켰고 여성의 권리를 높이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여성운동은 당시 미국의 사회운동에서 성차별이 만연했던 조건에서 탄생했다. 운동 내에서 거듭 좌절을 겪은 여성 활동가들이 바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섰기 때문에 남성에 대한 적대감이 여성운동 내에 널리 자리 잡았다.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정체성이 여성차별에 맞선 운동에 나설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되어버렸고, 분리주의를 강화했다.


여성운동이 절정을 지나면서 그 안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화해나갔다. 여성운동의 주류가 주로 백인 중간계급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안에서 소외를 느낀 흑인 여성들이 분리해 나갔고, 레즈비언들이 분열해나갔다.


억압을 경험하고 심지어 그 억압에 맞섰던 사람들도 다른 이들이 겪는 억압에는 무지했다. 다른 억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이 겪는 억압을 절대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체성 정치가 현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이론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정체성 정치란 억압을 경험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억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자신들이 겪는 고유한 억압에 따라 새로운 운동을 건설하는 분리주의를 강화했다. 운동은 분열을 거듭했고 힘이 작아져갔다. 정체성 정치는 서로가 겪는 억압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현실이 낳은 생각이지만, 운동을 분열시키면서 서로에 대한 공감이 자라날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역할을 했다.


진정한 단결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 맑스주의자들은 분열의 책임을 정체성 정치와 분리주의에게 물었다. 사상이 생겨난 토대가 아니라 사상 그 자체를 주로 문제 삼았기 때문에, 과제는 ‘정체성 정치’와 ‘분리주의 페미니즘’등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당시는 정체성 정치와 분리주의가 운동을 파편화하며 현실을 바꿀 힘을 스스로 갉아먹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관념론자가 아니라면 단지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낳는 현실을 먼저 봐야한다. 분리주의 페미니즘보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의 주류로 등장하게 만든 현실 - 바로 사회운동 내에 만연했던 여성차별주의와 성폭력에 대한 경시를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


당시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급증했던 시기로 출산권에 대한 요구가 여성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낙태와 피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흑인여성들에게 강제불임시술이 이루어지기도 한 시대였다.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입양하여 기를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온전한 출산권이란 바로 이런 흑인 여성들과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해야 했다. 흑인 여성운동과 레즈비언 운동으로 분리를 정당화했던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기에 앞서, 이들의 목소리가 소외됐던 여성운동을 비판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맑스주의자들이 분열을 비판한다는 것은 분열을 가리키는 사상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분열을 낳는 현실을 먼저 보고 비판하며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단결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계몽주의는 종교가 ‘인민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허위의식’임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맑스는 이를 발전시켜 종교가 단지 허위의식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산물임을 강조했다. 종교가 존재하게 된 사회적 토대를 밝힌 것이다. 아무리 설득력 있게 종교가 환상에 불과함을 논증한다고 해도 계급사회의 착취와 억압, 소외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고통을 달래 줄 종교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종교는 인민들의 염원을 나타냄으로써 현실에 대한 항의를 표하기도 한다. 종교가 의식을 마비시키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도 하지만, 불의한 지배에 맞서는 투쟁의 사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맑스주의자라면 종교가 가진 모순된 특성을 이해하고 종교적 사상으로 투쟁에 나선 이들과 연대해서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억압에 맞선 저항에 함께하기 위해


<사진 : 민중의 소리>      


그런 점에서 억압에 맞선 단결을 위해 필요한 첫 번째 과제는 억압받는 이에게 공감할 줄 아는 태도이다. 억압은 고통을 낳고 그 고통은 실제 살아있는 개개인들이 감당하고 있다. 때문에 나날이 발생하고 있는 피해자의 피해 호소를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억압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들을 개개인의 고통을 측정하는 데 섣불리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희롱은 강간보다 덜 심각한 피해지만, 성희롱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강간 피해와 비교하며 피해를 경시하는 따위의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적 욕설로 심적 고통을 겪은 이에게 그의 고통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특히나 이런 피해가 운동 안에서 벌어진다면 진지하게 다루고 토론을 통해서 공동체의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만 피해 그 자체가 모두에게 상처로 남지 않고 신뢰를 회복하여 단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억압받는 이에게 공감하려면 억압의 다양함을 잘 배울 필요가 있다. 억압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우리의 교사가 될 수 있고 어느 곳에나 이런 교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섣부른 교훈으로 이들을 가르치려하기 보다는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서 억압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실재해야 한다.


같은 억압을 겪는 집단 내에서도 그 억압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억압의 상호교차성이란 개념은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억압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은 여러 억압들의 단순한 교집합이 아니다. 억압의 상호교차성은 여러 억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억압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여성이라면 크든 작든 여성 억압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억압은 그 집단 내에서도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불균등하게 가해지기 쉽다. 지배계급 여성들은 평범한 여성들이 겪는 많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때문에 평범한 여성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반여성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성이 흑인이라면 더 심한 성차별과 성적 억압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흑인이라면 누구나 인종 차별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그가 지배계급이라면 이런 차별과 억압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적게 마련이다. 물론 평범한 흑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을 추진하기도 한다. 만일 흑인이 여성이라면 인종차별에서도 더 심각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동일한 여성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그 안의 다양한 취약 지점들을 발견하여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데 상호교차성 개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억압에 대해 잘 배우고 공감할 줄 아는 것이 운동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억압받는 이들은 분열하게 마련이지만, 노동 계급은 단결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지금처럼 인종과 성에 따라 노동계급을 더 깊이 분열 약화시키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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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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