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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노동현장의 분노, 자신감, 두려움, 희망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3. 16.

이언 앨리슨(Ian Allinson)

번역 윤경준


[영국 RS21(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의 주요 활동가인 이언 앨리슨(Ian Allinson)이 현대 노동현장의 두려움, 분노, 자신감, 희망에 관해 논한다. 어떤 대안과 방향이 필요한지도 제기한다.]

출처 : http://rs21.org.uk/2014/06/21/anger-confidence-fear-hope/

 

실질임금 삭감, 넝마가 된 연금체계, 잔인하고 불합리한데다 가난을 증명하라는 식의 복지체계, 민영화되고 파괴된 공공서비스, 그리고 끝없는 긴축과 삭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고 기득권 체제에 대한 혐오는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성과를 낼 수 있는 규모의 반격은 아직 영국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최고의 기회는 공공부문 연금 격돌 - 20111130일 총파업 이후 노조 지도자들이 날려먹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압력과 정부의 압력 사이에서 비틀거렸다. 그들은 어떻게 이 싸움을 말아먹으면서 도망칠 수 있었을까?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노동계급 내의 자신감이 결여된 분노에 관해 이야기 해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해는 활동가들을 적절하게 준비시킬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두려움과 자포자기가 이 그림을 완성시켜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감

 

자신감 부족에는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 첫째는 승리다.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다른 어떤 것도 승리에 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기려고 우리의 승리를 더 잘 포장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두 번째 치료법은 보다 이념적인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것은 저명 인사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옳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우리는 멍청하고 우리 생각은 중요하지 않으며 우리가 해봐야 아무 효과도 없을 뿐이라고 믿도록 교육받았다. 노조지도자들, 정치인들 혹은 유명인사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이것을 완화시켜줄 수 있다.

 

자신감 부족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관심사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답변을 벼려야 한다. 우리의 승리를 널리 알리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다. 노동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승리이든지 BESNA에 맞선 전기기술자들이나 호출형 노동계약(zero hours contract)에 맞선 Hovis 노동자들처럼 더 드물게 벌어지는 큰 승리들이든지 상관없다.

 

리플렛, 소책자, 순회연설, 대중집회와 노동현장 방문 모두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수단은 싸움이 승리하기 전에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파업 기금에 기부하고, 피켓 선전전의 대열에 참여하거나 파업노동자를 지지 방문한 노동자들은 승리로부터 배우고 자신감을 얻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투쟁의 경험은 생각을 대규모로 바꾸어낸다. 당신은 싸워서 질 수도 있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단순히 싸움에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 그래서 투쟁이 벌어지기 전과 투쟁이 벌어지는 동안 주장할 수 있도록 승리할 수 있는 계획이 항상 필요하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최소한 그로부터 배우기 위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준비시켜야만 한다.

 

Mark O’Brien은 최근에 평조합원들의 지향이 어떤지 그리고 그것이 노동조합 관료들의 지향과는 어떻게 다른 지에 관한 글을 썼다. 노동조합 관료조직과 함께 혹은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을 평조합원을 조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는 평조합원 조직화를 노조 관료주의에 압력을 가할 수단으로 바라본다.

 

노동계급 쇠퇴의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공공부문 연금과 임금 삭감 반대 투쟁과 같은 더 거대한 싸움을 포함할 것이다. 대규모 파업에는 많은 작업장과 노조들이 포함되는데, 이는 평조합원들이 통제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큰 투쟁, 특히 정치적 측면이 존재하는 공공부분에서의 투쟁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가장 보수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파업은 노동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을 만나고 제일 승리하기 어려운 종류의 투쟁이다. 반격에 불을 붙이려는 욕망에 사로 잡혀 우리가 지름길을 택한다면 그것은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투쟁이 떠오를 때 노조 지도자들이 주저하는 동안 노동자들을 무장시키고 준비시키지 못하면 위험해진다.

 

자신감을 키우기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강조할 것이다. 작업장 수준에서 건설하는 것, 자주적 행동과 독립성을 고무시키는 것,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준비시키고 평조합원 조직의 기초적인 구성 요소(작업장 민주주의, 현장 대표자 위원회와 연합체)를 세워 나가는 것 말이다.


노조 지도자들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할 자신감은 사측에 맞서 연대하여 나아갈 자신감으로 발전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사장에 맞설 자신감이 없다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노조 상근간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영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투쟁의 쇠퇴를 목격했고 그것은 항구적인 대량실업의 도래와 일치한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노동시장 내 경쟁을 증가시키려 복지를 삭감하고 병든 사람들과 장애인들과 실업자들에게 낙인을 찍고 있다.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현실의 문제이다. 그리고 노동에서 배제된 자들에 대한 처우가 더욱 악화되면 될수록 두려움은 더 극대화된다.

 

도덕적 공황과 억압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두려움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노동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 반응하는 존재다라고 전 미 대통령 리쳐드 닉슨이 선언했다. 정치인들과 언론은 우리가 잘못된 대상들을 두려워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범죄, 약물, 이민자들, 한부모, 비행 아동,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위험, 위험한 개들 등등에 대한 도덕적 공황이 그 예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 중요한 문제들을 덮어버리고 기업과 언론과 정부의 아젠다들에 끼워 맞춰진다. 종종 희생양을 목표로 하면서. 도덕적 공황은 우리가 행동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슈들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멀어지게 한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가정들을 조장하고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우리는 일터 안팎에서 점점 더 증가하는 감시체계에 직면해있다. 피켓시위, 거리 폭력시위가 일어나고 한참 뒤에 CCTV로 체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시위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주도자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당신이 그날 그저 근처를 지나간 것뿐일 지라도.

 

노동현장의 의사소통은 이제 전자기기를 이용해 이루어지고 이는 검열과 제재에 취약하다. 오픈 플랜 작업환경은 대화와 활동이 감시당하지 않을 기회들을 최소화시켰다. 페이스북 포스팅이나 이메일의 내용이 흘러나가는 것은 이러한 불신과 두려움을 키워가고 있다.

 

1989년에 당시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스 차우세스쿠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의 광범위한 비밀 정보원망으로 그가 자신이 축출될 것도 잘 알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불복종할 장벽이 높아져 온 것도 사실이다.

 

CIA 고문 지침서는 고문을 가할 것이라는 협박이 즉각적인 통증보다 더 큰 타격을 주는 두려움을 유발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동 현장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구조조정은 불안정성, 취약성,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실제 위협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역 조합원 제도’(Unite’s community membership scheme: 영국과 아일랜드의 가장 큰 노조 조직인 UNITE에서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민들을 조합원으로 받는 제도이다. 학생, 주부, 퇴직자, 구직자 등 일반인들을 조합원으로 모집하여, 커뮤니티 활동가와의 연계를 통해 각종 캠페인과 지역 및 사회 문제에 동참하고 조직화될 수 있게 하는 제도)같은 것들이 이러한 두려움을 줄여줄 수 있다


고용 상태에 있지 않는 사람들이 복지 체계의 부당함에 맞서도록 도와줌으로써, 또한 작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두려움을 줄여나갈 수 있다. 직장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는 작업장 내의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따라서 이는 자선 활동이 아니다.

 

1970년대는 생존 논쟁의 복귀를 목격했다. 우리가 투쟁에서 너무 많이 이기면 이것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이것이 내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두려움은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어떤 일자리는 어디에나 흔하고 누구로도 대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의 노동자들은 예를 들어, 지역 서비스의 독점노동 공급자로 일하는 이들보다 훨씬 취약하다고 느낄 것이다.

 

생존에 관한 두려움은 규제완화, 민영화, 세분화 그리고 외주화를 통해서 새로운 영역들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까지 병원 노동자들은 그들의 고용주들이 파산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제 상황은 바뀌고 있다.

 

불안정 고용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분류는 아직 명확하지 않는 분류이다. 통계자료는 종종 안정성 있는 일자리와 가장 불안정한 일자리를 한 덩어리로 묶어놓기 일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에서 수 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대행업체, 바지회사, 단기계약, 제로 시간 등등을 통해 고용되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임시직화는 불안정성과 무력감을 의미한다: 임시직화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들 곁에서 전통적 근로계약을 통한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 또한 이러한 무력감을 느낀다. 두려움은 임시직 노동자가 저항도 없이 조용히 사라질때마다 스멀스멀 엄습해온다.

 

노동운동 쇠퇴기 이전에 우리는 법적 보호가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힘으로 우리를 지켰었다. 그러나 1980년대의 패배는 집단적 조직화를 약화시켰으며 노동조합을 법에 기대고 법에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사실 1971년까지 부당해고에 어떤 법적 보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당시에 모두가 불안정 노동자였는가?

 

(LEAN) 생산방식의 시대

 

Phil Taylor는 성과관리, 환자 결근 관리 그리고 린 생산방식이 현대 노동현장에서 어떻게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촉발시키는지 살펴보았다.

 

린 생산방식의 원칙은 낭비를 제거하는 것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원료뿐만이 아니라. LEAN은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제조와 서비스분야에 적용 중이다. 맑스는 근로시간의 유공성(porosity)”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장비나 재료 교체 혹은 다른 노동자들과의 교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짧은 공백과 휴식을 말하는 것이다.) LEAN은 이 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해 생산공정을 재조직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노동강도는 강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회복시켜주는 이런 휴식시간을 제거하려 한다.

 

Taylor는 그 효과를 벼랑 끝의 노동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지속적으로 내몰려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이것을 관리직들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리를 떠나면, 사측은 그 자리를 당장 메워주지 않는다.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압박을 받고 그들의 사용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강요받는다. 그들이 이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경우에만 대체 고용이 이루어진다.

 

만일 노동자들이 합리적인 속도로 일을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라면 LEAN은 덜 해로울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경영기법은 성과관리와 결근 관리를 이용해서 두려움의 정도를 높이고 있다.

 

성과 관리는 징벌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목표는 상부에서 정해졌고 노동자들은 기만적인 객관적 절차를 통해 자신들의 업무 능력이 미달된다고 통보받는다: 기만적인 객관적 절차란 평가요소”, “척도”, “주요업무 자체평가 지표”, “산출물등등의 용어를 남발한다. 만약 너무 많은 이들이 목표를 달성하면 목표는 상향조정된다.

 

업무수행 개선 계획(PIPS) 또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테일러는 작년 한 은행에서 직원의 무려 3분의 1이 업무 수행이 미달된 것으로 구분된 사례를 보고했다. 정규 분포 곡선과 강제배분법이 관리자들이 숫자로 횡포를 부리게 하고 있다.

 

너무 자주 병가를 내는 직원들에게 출근문제 개선 계획(AIPs)과 경고를 주는 병가 관리도 만연해있다. 브래드포드 지수(Bradford factor: 결근의 종류에 따라 가중치를 다르게 두어 직원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공식. 예를 들어, 이 공식에 따르면 7일동안 쭉 결근을 하는 것보다 하루씩 7번을 결근하는 것이 점수가 훨씬 더 높고, 회사에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같은 것이 질병이 있는 직원들을 관리자가 샅샅이 조사하고 분해하게끔 한다.


일단 직원들이 출근문제 개선 과정에 올라가게 되면, 그들은 높은 출근율을 보여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징계성 처벌이 계속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프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휴가를 쓰거나 아니면 아파도 일할 것이라는 거다.

 

결근관리는 천명된 목표와 달리 생산성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병 결근(병가)의 비율은 낮다. 심지어 공인 인사관리 연구소’(Chartered Institute of Personnel and Development: CIPD)조차 아파도 출근하는 관행의 비용이 더 높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근을 불온시하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정성을 키운다. 그리고 이는 사장들이 더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다.

 

TUC5명의 노동자중 한 명이 정기적으로 무급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이것은 일주일에 평균 8시간에 달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장에 대한 사랑이나 그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한 책임감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무급으로 일할 의무가 있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급초과근무의 규모는 일자리에서 배제된 수 백만 명의 일자리와 맞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시장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두려움은 위험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나 많은 두려움은 실제 위험과는 동떨어져있다. 생존, 임시직(불안정한) 고용 상태, 혹은 직장에서 쫓겨나게 생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 위협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들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과장돼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이 정당한 것이든 과장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진짜 위협들을 불안정한 근로계약, 업무수행 관리 등등 - 약화시키는 캠페인들에 우선 순위를 둘 수 있다


우리는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그 지원을 개별 노동자들이 회사에 요구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훈련, 교육, 장애를 가진 노동자를 위한 합당한 조정들과 같은 지원이 이에 포함된다. 우리는 집단적인 캠페인을 조직할 수 있고 이는 때때로 산별규모의 행동일 수도 있다.

 

사용자들과 정부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시위를 범죄화하는 행동들이 적법하다는 것을 우리가 수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힘이 아니라 속임수로 지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강요된] 합의는 피해 입은 노동자들과의 연대 캠페인과 감시와 억압에 맞선 항의시위로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움에 관한 이념적 근거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사람들을 그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게 만드는 거짓말들과 과장들. 사실들은 위협들이 실제보다 과장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노동자들에 의존적이며 우리들의 잠재적 힘에 무력한지 밝혀줄 수 있다. 우리는 세계화가 사용자들에게 가져다 준 신화들에 도전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폐쇄에 관한 유언비어에 도전해서 이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희망

 

노동조합 조직활동가들이 누군가를 행동하도록 이끄는 단계들은 분노, 희망,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분노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들은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성공의 전망으로 행동의 과정을 바라보아야 한다.

 

개혁주의자의 의식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거부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는 받아들인다. 전후 경제 부흥기에 이 의식은 케인즈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다양한 혼합물들과 연관 있었다. 1970년대에 양자 모두 폐기되었고 개혁주의자 조직들은 점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에 굴복해갔다: “시장메커니즘 이외에 다른 어떤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도 그들을 이 정통원리부터 흔들지 못했다. - 그들은 긴축재정과 민영화의 심화에 직면해 후퇴했다.

 

주류 정치질서에서 시장에 대한 이념적 대안 부재는 노동현장에 그 영향을 끼쳤다. 노동자들은 국유화에 대한 요구가 노동당 및 심지어 보수당에서 조차 반향이 있던 시절에 일터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덜 느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좌파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은 노동계급은 역사에 있어 특별한 역할을 부여 받은 계급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전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다. 한줌의 이기적인 소수 지배계급만이 이 길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배자들의 위대한 성과들 중 하나는 이 관점을 뒤바꿔서 널리 퍼트렸다는 점이다. “사업”. “경제”. “시장다른 말로 사장들 - 이 사회의 이해를 대표하게 되었다.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지키려 싸우는 노동자들은 (심지어 더 나빠진, 몇 푼 안 되는 급료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위험에 빠트리는 이기적인 자들로 위치가 바뀌어버렸다. 죄의식이 희망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측면이 정치적 노동조합주의- 모든 현장의 싸움을 묶어내어 더 광범위한 사회적 아젠다로 바꾸어가는 -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천명의 확인 가능한 부(은행계좌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작년에 15% 늘어서 5200억 파운드에 달한다. 시장은 초자연적 힘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행동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용자들과 정부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은행에 구제자금을 투입해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그들은 전쟁에 수십억 파운드를 지출할 수도 있다. 그들은 외교정책목표를 위해 혹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자산을 동결하거나 압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집한칸, 직장, 사회서비스, 그리고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행동들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듣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장에 대한 굴종에 도전하는 생각들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 우리는 시장의 특정 결과들을 거부하거나 어느 한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가두어 둘 수 없다. 이것은 혁명을 기다리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선전선동을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사회주의자의 생각이 더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노동자들이 싸워서 이기기가 더 쉬워진다.

 

결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현장 조직의 건설과 강화에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두려움을 무너트리며 희망에 불을 붙이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우리가 이 과업을 수행한다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 우리는 노동현장 사이에 그리고 노동자와 노동에서 배제된 자들 사이의 연대를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는 저항을 독려하고 이기는 싸움을 계획하며 승리를 선전할 수 있다.

 

두려움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는 두려움의 근원에 맞서 캠페인을 앞세우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생각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징벌적 성과관리와 결근관리를 분쇄하고 감시와 억압에 반대하며 임시직화에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과장하는 생각들에 또한 도전해야 한다.

 

우리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 밑에 깔려있고 어떤 대안에 대한 희망도 부정하는 시장만능주의의 교리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사상은 종종 투쟁에 있어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큰 공헌일 것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그 중요성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은 인간의 요구를 먼저 앞세운 사회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다시 일으켜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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